Johann Sebastian Bach
Viola Concerto in C minor
바흐 / 비올라 협주곡 C단조
J.C. Bach / Henri Casadesus Viola Concerto in C minor (full concert)
[J. C. Bach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나 Henri Casadesus{1879 - 1947}의 작품임]
Artist : Unknown
J.C. Bach / Henri Casadesus Viola Concerto in C minor (full concert)
[J. C. Bach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나 Henri Casadesus{1879 - 1947}의 작품임]
1 Allegro molto ma maestoso: 0:00
2.Adagio molto espressivo: 03:44
3.Allegro molto energico: 10:08
Michel Michalakakos, viola
Sang-Jin Kim, viola
Mateusz Molęda, cond.
Deutsches Kammerorchester Berlin
전악장 연속듣기
1악장 (Allegro moderato)
2악장 (Adagio)
3악장 (Allegro molto)
American Bach Soloists
비올라(viola)
바이올린을 밝고 화려한 소프라노에 비유한다면, 비올라는 어두우면서도 따뜻하고 질감이 풍성한 알토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딱히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 음색은 달콤한 매력을 지닌다. 비올라는 바이올린보다 10/7정도 더 크며 무게도 약간 무겁다. 바이올린의 경우 제작자가 달라도 그 크기가 표준화되어 있는 것에 비해 비올라는 명기로 꼽히는 악기도 몸통의 길이가 4~5cm 정도 다르고 울림부분도 거기에 비례하여 다르게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점에서 바이올린은 진화를 거의 끝낸 반면, 비올라는 아직도 진화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올라의 활은 바이올린의 활보다 약간 굵고 무거운데, 바로 이 점이 비올라가 매력적인 소리를 내는 요인 중의 하나가 된다.
비올라가 바이올린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음역이 낮기 때문에 악기의 크기가 더 커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크기의 차이가 음역의 차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비올라의 음역이 바이올린보다 5도 낮기 때문에, 음향학적으로 5도에 해당하는 비율인 3:2에 의해서 비올라의 크기가 바이올린의 1.5배가 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음향학적 비율과 관계없이 ‘단순히 조금 클 뿐’이다. 여기에 비올라 특유의 음색이 나는 두번째 요인이 숨어 있다. 비올라의 제1, 2, 3현은 바이올린의 제2, 3, 4현과 같게 조율된다. 4개의 현 중에서 3개가 일치하다 보니 비올라의 음을 바이올린의 낮은 음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는 음색이 아주 다르기 때문에 그런 오해를 낳지는 않는다.
비올라의 음향은 바이올린에 비해 비교적 덜 강렬하고 관통력도 적으며 실제로 똑같은 높이에서 더 어두운 음색을 띤다. 이 특수한 비올라 음색의 열쇠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비올라가 바이올린에 비해 음역이 5도 낮기 때문에 전체 크기가 이론적인 비율만큼 커야 하는데, 실제 크기가 이론적인 크기보다 훨씬 작게 되어 있다는 데 있다.
비올라가 현악기 그룹에 당당하게 끼어들 수 있게 된 것은 바흐시대가 끝나가는 다성음악시대부터였다. 그때부터 비올라는 선율부분을 맡아 연주하게 되었다. 작곡가의 예를 들자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초기 시대가 된다. 그러는 한편 반주와 선율 사이에서 두 기능을 매개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령 콘트라베이스와 첼로가 같은 음으로 베이스를 연주할 때 풉? 취급 방식을 능가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 악단의 정설이다.
내부구조와 외형, 그리고 연주기법의 측면에서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매우 유사하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비올라가 바이올린과 다른 점은 크기와 음역과 음색 정도이며, 음역이 다른 만큼 조율을 다르게(5도 아래) 한다. 비올라는 1535년을 전후로 하여 북이탈리아 지방에서 나타나는데, 바이올린족에 속하는 다른 악기들, 예를 들면 첼로나 콘트라베이스 등이 같은 시기에 출현한다. 악기 연구로 정평이 나 있는 호른 보스텔과 쿠르트 작스의 분류 시스템에 의하면 비올라는 활을 쓰는 류트(혹은 피델)로 분류된다.
오늘날 비올라라는 악기의 이름은 여러 바이올린족 악기 중에서 알토(정확히는 알토-테너)에 해당되는 뜻을 갖지만 과거, 즉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에는 활을 사용하는 현악기를 총칭하는 말로 쓰였다. 당시의 비올라는 비올라 다 감바와 비올라 다 브라치오로 대별되었다. 명칭에서 보듯이 비올라 다 감바는 무릎 위에 올려놓고, 비올라 다 브라치오는 팔로 받치고 연주하도록 되어 있었다. 후에 비올라 다 감바는 베이스 비올, 비올라 다 브라치오는 테노 비올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A. 하이데키의 주장으로는 비올라 다 브라치오는 비올라를 말하며, 바이올린의 전신이라고 하는 16세기 이탈리아의 리라 다 브라치오에서 먼저 비올라가 태어났다. 그후에 축소명사인 비올레타 다 브라치오가 태어나게 된다. 이 비올레타 다 브라치오가 바이올린족 중 가장 작은 악기인 바이올린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1560년경부터 이탈리아어로 비올리노(바이올린)라는 현재의 명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1528년 M. 아그리콜라는 테너 역할을 하는 3줄짜리의 악기를 만들었다. 최초의 4줄짜리 비올라는 1535년에 나타난다. 1556년에는 프랑스의 페르가 만든 4줄짜리 비올라가 타이유 또는 오트콩트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1636년에는 메르센느가 C, G, D, A 음으로 조율하는 알토 악기를 만들게 된다. 이 조율법이 지금의 비올라 조율법에 해당한다. 그 이후 아마티, 베르토로티, 다 살로, 막지니, 스트라디바리 등이 몸통 길이가 약 43~47.8 cm 정도의 테너 악기를 제작했는데, 특히 스트라디바리가 1690년에 만든 악기는 비올라 메디치아라고 불렸다.
한편 이보다 조금 작은 41cm 정도의 알토 악기가 아마티, 과르네리, 스트라디바리 등의 명장들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이것들도 모두 C, G, D, A음으로 조율되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비올라의 모형과 크기가 정해지게 된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1876년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호를라인이 제작한 비올라 알타라는 악기가 48cm로 제작됨으로써 오늘날의 크기로 정해지게 되었다.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의 음역을 담당하는 화음 악기로 사용되기도 하며, 높지도 낮지도 않은 선율을 맡는 독주 악기로 쓰인다. 화음 악기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 크기로 제작되어야만 음향학적인 완전도를 얻을 수가 있는데, 실제로는 바이올린보다 조금 큰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화성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얻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이 오히려 비올라라는 악기의 독특한 음세계를 가능하게 해 준다.
Cello Concerto in C minor
바흐 / 첼로 협주곡 C단조
전악장 연속듣기
00:00 Allegro molto maestoso
03:59 Adagio molto espressivo
10:54 Allegro molto energico
Daniil Shafran, cello
Gennady Rozhdestvensky, cond.
USSR State Symphony Orchestra
1. Allegro molto ma maestoso
2. Adagio molto espressivo
3. Allegro molto energico
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
전기 고전주의 시대에 명성을 떨친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와 안나 마크달레나 바흐의 사이에 태어난 막내아들로, '영국의 바흐'로 불렸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는 아버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로부터 어려서 음악교육을 받았고, 아버지의 사촌인 요한 엘리아스 바흐로부터도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가 1750년에 죽자 베를린에게서 이복형제 C. P. E. 바흐와 함께 일했다. 20세에 이탈리아로 갔고, 1756년 볼로냐에서 파드레 마르티니의 제자가 되었다. 아버지 세대의 구양식적인 잔재를 현저히 없애고 우아함과 세련됨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의 곡을 작곡하여, 한 귀족 후원자의 열성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곡들은 아직 채 고전주의 양식으로 성숙하지는 않았지만 진지한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대체로 예배가사를 가지고 만든 종교곡이 많았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1760년 밀라노 대성당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그의 개종은 대대로 루터교를 믿어온 그의 가문에 의해 심각하게 받아들여졌고, 가족들은 그를 멀리했다. 그가 다음으로 관심을 기울인 장르는 오페라로, 오르간 연주자로서의 의무를 소홀히 할 정도였다.
1762년 런던의 킹스 시어터 소속 작곡가가 되었고, 이곳에서 성공적인 이탈리아 오페라들을 여러 편 작곡했다. 관현악곡·실내악·건반음악도 여러 편 작곡했고, 칸타타도 몇 곡 작곡했다. 2년 뒤 비올라 다 감바주자인 카를 프리드리히 아벨과 함께 일련의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샤를로테 여왕과 자식들의 개인 음악 선생으로 임명되어 좋은 보수를 받았을 뿐 아니라 사회적인 명사가 되었다. 1772년 독일 만하임의 선제후로부터 오페라를 위촉받았다. 그의 음악은 우아한 선율 등 갈랑 양식(혹은 로코코 양식)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의 음악이 나타내는 이탈리아적 우아함은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들, 특히 모차르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모차르트는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을 뿐 아니라 그를 존경했다. 하이든과 동시대에 작곡된 그의 교향곡들은 고전주의 시대 초기 교향곡의 모습을 형성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의 소나타와 건반악기 협주곡들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그는 너무 일찍 성공을 해서 나이 들어 그 이상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심오한 깊이를 지닌 작곡가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음악은 감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Henri Casadesus, 1879-1947
헨리 카사데수스.
20세기 전반, 프랑스의 비올리스트 작곡가, 지휘자이자, 음악문헌가. 프랑스의 명망있는 음악가정에 태어났다.
그는 비올리스트로서의 활동 뿐만 아니라, 크라이슬러와 마찬가지로 18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을 비올 연주곡으로 개작하거나 편곡하였는데. 특히 헨델의 영향하에 헨델 스타일로 작곡된 곡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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