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ra 'Manon Lescaut'
푸치니 / 오페라 '마농 레스코'
Giacomo Puccini 1858∼1924
"Manon Lescaut" 1954 Full Opera
Manon Lescaut : Renata Tebaldi
Lescaut : Mario Borriello
Des Grieux : Mario Del Monaco
Geronte : Fernando Corena
Edmondo : Piero De Palma
Una voce sola : Luisa Ribacchi
L'oste : Antonio Sacchetti
Il maestro di ballo : Adelio Zagonora
Un sergente degli arcieri : Antonio Sacchetti
Lampionaio : Angelo Mercuriali
Un comandante di Marina : Dario Caselli
Coro dell Accademia Nationale de Santa Cecilia
Francesco Molinari-Pradelli, cond.
Orchestra dell Accademia Nationale de Santa Cecilia
Des Grieux : Jonas Kaufmann, tenor
Antonio Pappano, cond.
Santa Cecilia Academy Rome Orchestra
Opera 'Manon Lescaut' (Act 1) Des Grieux's Aria
'Donna non vidi mai (일찌기 본 적이 없는 미인)'
Donna non vidi mai '는 1막 중 Manon Lescaut의 아름다운 모습에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는 Des Grieux의 아리아이다.
Donna non vidi mai simile a questa!
A dirle "io t'amo" a nuova vita l'alma mia si desta.
"Manon Lescaut mi chiamo...
Come queste parole profumate mi vagan nello spirto
e ascose fibre vanno a carezzare.
O sussurro gentil, deh, non cessare!
피사에서 베르디의 [아이다] 공연을 처음 본 열일곱 살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는 감격해 잠을 설쳐가며, "내 갈 길은 오페라 작곡뿐"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가난과 싸워가며 밀라노 음악원을 졸업한 뒤 오페라 [빌리](1884)와 [에드가](1888)를 초연했지만 젊은 푸치니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893년 토리노 레조(Regio) 극장에서 초연한 [마농 레스코]로 드디어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라는 극찬을 얻은 푸치니는 마침내 가난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프레보의 성장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
먼저 [마농 레스코]의 토대가 된 프랑스 작가 앙투안 프랑수아 프레보(Antoine François Prévost, 1697-1763)의 원작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L'histoire du chevalier des Grieux et de Manon Lescaut](1731년)를 말하자면 ‘성직자’라는 의미에서 흔히 ‘아베(Abbé) 프레보’로 불리는 이 작가는 군인으로 인생을 출발했다가 베네딕트회 수사(修士)가 되었지만, 20대에 수도원을 떠난 그는 영국과 네덜란드 등지를 떠돌며 자신의 체험을 기록해 8권에 이르는 대작 [어느 귀인(貴人)의 회상]을 펴냈다. 그 가운데 7권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 이야기]이다. 오랜 모험과 편력을 마치고 귀향한 프레보는 다시 사제직으로 복귀해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미국으로 죄수들을 호송하는 호송선에 붙잡혀 실려가는 마농 레스코
원작 안토니 프랑소와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와 기사 데 그뤼의 이이기>
대본 여러 사람(6명으로 추정)에 의해 대본화되었는데 최종적으로는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자.
초연 1893년 2월 1일 토리노 레지오 극장
배경 18세기 후반 프랑스의 아미앵(1막), 파리(2막), 르 아브르(3막), 미국 뉴올리언스 부근(4막)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리카르도 무티 지휘 / 릴리아나 카바니 연출
마농 레스코...............10대 후반의 아가씨.............마리아 굴레기나(소프라노)
레스코......................마농의 오빠. 친위대 중사.....루치오 갈라(바리톤)
레나토 데 그뤼...........기사.................................호세 쿠라(테너)
제론테 드 라부아르.....재무대신. 나이 많은 부자.....루이지 로니(베이스)
에드몬도...................학생.................................마르코 베르티(테너)
음악 하이라이트 : 미뉴에트, 마드리갈, 2막에서 마농의 아리아, 1막에서 데 그류와 마농의 사랑의 테마 음악, 2막에서 마농의 사랑의 테마 음악(데 그류와의 듀엣)
베스트 아리아 : In quelle trine morbide[지루한 나날](S), Donna non vidi mai[그같은 여인은 처음](T), Tra voi, belle[모든 사람들중에 어여쁜 그대](T), Tu! tu amore, Tu?[그대, 내 사랑 그대?](S+T), Ah, Manon, mi tradisce il tuo folle pensier[아, 마농, 그대의 어리석은 생각이 나를 배반하네](T), Sola, perduta, abbandonata[홀로 외롭게 버려지다](S)
줄거리
프랑스 시골의 처녀 마농은 부모님의 결정으로 수녀원에 들어가기 위해 역마차를 탄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는 여러 남성의 관심을 사고, 그녀는 그 중 젊은 귀족 청년인 기사 데 그뤼와 함께 파리로 달아난다. 마농은 데 그뤼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녀의 성격은 이내 그런 생활에 싫증을 낸다. 결국, 마농은 역마차에서 관심을 보였던 늙은 부자의 애인이 되어 화려한 상류 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그녀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여 다시 데 그뤼를 찾는다. 결국 마농은 매춘부로 체포되어, 미국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미국까지 간 마농은 사막에서 데 그뤼가 지켜보는 가운데 짧은 삶을 끝낸다.
◐ 제1막 (아미앵의 여관집 앞 광장)
막이 열리면 학생들과 아가씨들이 모여 도박하고 술을 마시면서 흥청대고 있다. 학생 에드몬도는 젊음과 사랑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노래하는 아리아 “Ave, sera gentile (사랑스러운 밤이여)”를 부른다. 거기에 나타난 젊은 귀족이자 학생인 데그뤼가 그들과 어울리지 않자, 모두들 그가 사랑의 성취를 하지 못해 우울해 한다고 빈정댄다. 데그뤼는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사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아리아 “Tra voi, belle, brune e blonde (모든 사람들중에 어여쁜 그대)”를 부른다.
모두들 계속 떠들고 있는데 마차가 도착하고 레스코와 그의 누이동생 마농, 재무대신 제론테가 내린다. 마농을 본 데그뤼는 운명인듯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레스코와 제론테가 예약을 하기 위해 짐을 들고 여관으로 들어간 사이, 마농이 혼자 있는 것을 보자 데그뤼가 가까이가 말을 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마농이며 젊은 나이에 수녀원에 가야 하는 몸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혼자 남은 데그뤼는 몽롱한 기분으로 갑자기 찾아온 사랑에 설레며 아리아 “Donna non vidi mai simile a questa! (일찌기 본 적이 없는 미인/그같은 여인은 처음)”를 부른다.
여관에서 제론테와 레스코가 나와 대화를 한다. 레스코는 동생이 수녀원에 들어가게 된 것을 아쉬워 하지만, 자신은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으며 또한 충실한 군인이라고 말한다. 레스코에 이어서 마농이 제론테의 초대를 받아 식사를 하러 나온다. 마농을 사랑하고 있던 제론테는 밤에 몰래 마농을 파리로 납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는 여관주인에게 마차를 준비하라는 등 이것저것 지시하느라 분주하다. 에드몬도가 우연히 그 계획을 엿듣게 되고 데그뤼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준다.
분노한 데그뤼는 자신이 선수를 치겠다고 다짐하고, 에드몬도 또한 제론테의 음흉한 계략을 방해하기 위해 그를 돕겠다고 약속한다. 학생들이 레스코에게 자꾸만 억지로 술을 권한다. 그 사이 마농에게 다가간 데그뤼는 정열적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오늘 밤 제론테의 유괴 계획을 알려 주면서 차라리 둘이서 도망치자고 설득한다. 에드몬도가 마차가 준비되었다고 알리자 마차를 타고 둘은 달아나 버린다.
잠시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제론테가 화가 나서 레스코에게 따지러 간다. 재무대신의 의중을 꿰뚫고 있던 레스코는 여동생의 허영심을 상기시키며 가난한 학생과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말해 그를 안심시킨다. 레스코와 여러 학생들이 제론테의 꿍꿍이 속을 비아냥거리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Des Grieux : Luciano Pavarotti, tenor
Aria 'Tra voi, belle (모든 사람들중에 어여쁜 그대)'
Des Grieux : Luciano Pavarotti, tenor
Des Grieux : Beniamino Gigli, tenor
Aria 'Donna Non Vidi Mai (일찌기 본 적이 없는 미인)'
◐ 제2막(마농이 머무는 제론테의 별채)
데그뤼와 헤어져서 제론테의 애인이 된 마농이 미용사와 시종의 도움으로 꽃단장을 하고 있다. 거기에 레스코가 와서 그녀의 호화로운 생활을 보고 기뻐한다. 그러나 이미 그러한 생활에 실증이 난 그녀는 예전의 데그뤼와 보냈던 생활이 가난했지만 그립다는 뜻의 아리아 "In quelle trine morbide (이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 싸여/지루한 나날"를 부른다.
악사들이 와서 제론테가 만든 마드리갈을 노래하고, 이어서 무도교사가 와서 마농에게 미뉴에트를 가르쳐 준다. 제론테도 와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두 사람은 미뉴엣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때 마농은 매력적인 가보트를 노래한다. 동생이 부르는 노래에서 그녀의 진심을 알아차린 레스코는 데그뤼를 찾으러 나간다.
마농이 아름답게 다듬어진 자신의 모습을 쓸쓸하게 거울에 비춰보고 있는데, 돌연 데그뤼가 나타난다. 다가온 옛 연인에게 과거를 뉘우치며 안기는 마농의 자태에 데그뤼의 노여움은 사라지고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한다. 그런데 거기에 갑자기 제론테가 나타난다.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들킨 마농은 오히려 제론테에게 보란듯이 야유를 보낸다. 제론테는 화가 나서 나가버린다.
데그뤼는 빨리 도망치자고 말하나 그녀는 보석을 이것저것 챙기느라 시간을 끈다. 데그뤼는 아리아 “Ah! Manon, mi tradisce il tuo folle pensier (아, 마농, 그대의 어리석은 생각이 나를 배반하네)”를 부르며 그녀를 설득한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제론테의 안내로 근위대 병사들이 들이닥치고 도둑 및 창녀로 몰린 마농은 그들에게 연행되어 간다.
Manon Lescaut : Maria Callas, soprano
Tullio Serafin, cond.
Philharmonia Orchestra
Manon Lescaut : Eva Marton, soprano
Manon Lescaut : Renée Fleming, soprano
Marco Armiliato, cond.
Aria 'In Quelle Trine Morbide (이 부드러운 레이스 속에 싸여/이 부드러운 커튼 속에는)'
Manon Lescaut : Anna Netrebko, soprano
Des Grieux : Roberto Alagna, tenor
Bertrand de Billy, cond.
Andrei Serban, stage director
Wiener Staatsoper (2007)
Jules Massenet's Manon (Act 2 beginning)
Manon Lescaut : Renata Scotto, soprano
Des Grieux : Plácido Domingo, tenor
James Levine, cond.
Love duet 'Vedete? Io son fedele (나는 약속을 잘 지켜요)'
James Levine, cond.
Live at Metropolitan Opera House, 2008
Mark Laycock, cond.
Princeton Symphony Orchestra
Francesco Molinari-Pradelli, cond.
Orchestra dell´Accademina di Santa Cecilia, Roma
Intermezzo (2막과 3막 사이 간주곡)
◐ 제3막(르아브르 항구)
간주곡이 흐른 뒤 막이 열리면 멀리 군함이 보이는 항구다. 감옥으로부터 마농을 풀어내려는 데그뤼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매춘부로서 미국으로 추방당하게 된 마농을 뒤쫓아 지구 끝까지라도 가리라고 결심한 데그뤼가 레스코와 함께 등장한다.
레스코가 임시수용소의 간수에게 뇌물을 주어 말미를 얻게 되자, 데그뤼는 쇠창살 속에 갇힌 마농에게 어떻게 하든 구출하겠다고 말한다. 데그뤼가 마농을 탈출시키려 시도하지만 갑자기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온다. 레스코가 나타나서 경비가 삼엄해서 탈옥시키는 것은 실패했다고 말한다.
수용소의 철문이 열리고 매춘부들이 한 사람 한 사람씩 호명되어 나와 군함 앞에 늘어선다.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조소하고, 매춘부들은 슬프고 음울한 흐느낌 소리로 슬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장엄한 콘체르타토가 연출된다.
"Ah! Fuyez, douce image (아! 달콤한 추억이여, 사라져다오)"
매춘부들 사이에 마농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데그뤼는 사령관 앞에 뛰어가서 마농과 헤어질 수 없다며 사환이 되어도 좋으니 함께 가게 태워달라고 간청하는 아리아 "No! Pazzo son! Guardate (아니, 난 미쳤어!)"를 부른다. 그를 측은하게 여긴 사령관은 그의 청을 들어준다. 데그뤼는 사령관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고 마농에게 달려간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레스코는 황망해 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Des Grieux : Plácido Domingo, tenor
Aria 'No! Pazzo son! Guardate (아니, 난 미쳤어!)'
◐ 제4막(뉴올리언즈의 황야)
데그뤼는 마농을 유혹하던 프랑스 식민지 총독의 조카와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자신이 그를 죽인 것으로 판단하고 마농과 함께 황야로 도주하게 된다. 황야로 쫓겨난 마농은 너무 지쳐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다. 데그뤼는 물을 찾으러 여기저기 둘러보지만 허탕이다.
열이 나는 마농을 남겨 둔 채 인가를 찾으러 나선다. 홀로 남은 마농은 자신이 죽을 때가 임박했음을 깨닫고 조용히 옛날을 회상하며 자신의 저주스런 미모를 한탄하는 아리아 "Sola perduta abbandonata (나홀로 버림받아/홀로 외롭게 버려지다)"를 부른다.
데그뤼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절망적인 표정으로 돌아온다. 마농이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자, 두 사람은 잠시 추억에 젖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중창을 부른다. 마농은 마지막 힘을 내어 작별 인사를 하자 데그뤼는 자결을 해서라도 그녀의 뒤를 따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절대 그러지 말라며 만류하다가 끝내 숨을 거두고 만다. 데그뤼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의 몸에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 오페라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Manon Lescaut : Daniela Dessi, soprano
Des Grieux : Placido Domingo
Manon Lescaut : Renata Scotto
Manon Lescaut : Maria Callas, soprano
Tullio Serafin, cond.
Philharmonia Orchestra
Aria 'Sola, perduta, abbandonata'
시대의 희생자이자 개인 영웅으로서 그려낸 마농
<마농 레스코>는 푸치니의 오페라 중에서 <나비부인>, <라 보엠>, <토스카> 그리고 <투란도트> 등에 비해서 분명히 인기가 떨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만을 놓고 볼 때에 그 수준은 대단하며 청중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느끼는 감동과 인식의 깊이도 적지 않은 명작임이 분명하다.
특히 <마농 레스코>는 여주인공인 마농이란 여인에 대한 섬세하고도 깊은 이해와 동정이 필요하다. 일면 천박하거나 충동적이고 이상하거나 이해하기 어렵게 보일 수도 있는 그녀이다. 그러나 그녀의 판단과 행동들을 연출가가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하여 관객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는 참으로 중요한 연출의 포인트이다. 만일 이 점이 제대로 성공한다면 이 오페라는 가장 감동적이며 동시에 당시의 부패하고 부조리한 사회상을 보여주는 사회 고발적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 부분에서 실패해버린다면 한 특이하고 성격 파탄적인 여성의 일탈과 낙엽 같은 삶을 그린 천박한 작품으로 치부되고 말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라 스칼라 극장의 프로덕션에서 연출을 맡은 릴리아나 카바니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릴리아나 카바니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여성 연출가로서, 그녀는 평생 여성의 심리묘사에 일생을 바쳤다고 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이다.
카바니는 원래 영화감독이다. 그녀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피에로 파올로 파졸리니 그리고 마르코 벨로키오 등 이탈리아의 뛰어난 젊은 감독들과 함께 이탈리아의 문제 영화들을 만들었던 유명 감독이다. 그녀는 건축가를 아버지로 둔 예술적인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그녀는 볼로냐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 등을 공부하였으며,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하여 젊은 시절에는 공산주의 사상으로 사회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 시절의 대표작들로는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손님>, <갈릴레오>, <문 너머>, <베를린 이야기> 등이 있으며, 장년 이후에는 많은 국제적인 영화제들의 심사위원을 역임해왔다.
그녀는 오페라 연출에도 관심이 있어서 적지 않은 프로덕션들을 남겨왔다. 베르디의 <맥베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등은 여전히 이탈리아 오페라계에서 중요한 무대로 여겨지고 있으며, 지금도 여러 극장에서 올려지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대표작은 라 스칼라 극장에서 마리아 칼라스 이후 거의 한 세대 만에 다시 상연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연출일 것이다. 이 오페라에서 그녀는 코르티잔으로서 몸을 팔았던 여성의 비극적인 일생을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심리 묘사를 통하여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었으며, 이 연출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상 대부분의 오페라는 모두 여주인공의 심리 표현이 아주 중요한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바니는 같은 여성으로서 이 명작들 속의 여성들을 남성 위주 사회의, 부조리하고 권위적이고 이기적인 사회의 희생자들로서 묘사하고 있다. 이런 해석에서 여주인공들은 진정한 무대 속의 인물로서 재탄생하였다.
이러한 카바니의 일련의 작업들을 살펴볼 때 우리는 <마농 레스코>에서도 그녀가 어떤 연출을 펼칠지 예견해낼 수 있다, 그녀는 비올레타와 같은 코르티잔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마농을 시대의 희생자이며 자신의 자유의지를 외치는 소영웅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연출과 화려한 무대미술, 그리고 색채적인 푸치니의 음악들은, 3자가 한데 어울려서 새로운 <마농 레스코>를 이루어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이 연출은 1998년에 완성된 것으로서 카바니가 일흔 살을 넘기고 만든 그녀의 만년의 대표작이자 노작이다. 평생을 여성을 그려온 여성 연출가가 바라본 10대 소녀 마농의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삶, 이것은 분명 역사적인 <마농 레스코>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마농 레스코 Manon Lescaut
운명을 책임지기에는 너무 어렸던 여자
우리나라에서 푸치니의 인기는 매우 높은 편이다. 짧은 국내 오페라 공연의 역사에서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은 항상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들이었으며, 2000년을 넘어서면서 <투란도트>가 그 대열에 합류하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푸치니의 또 하나의 중요한 명작인 <마농 레스코>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퍽 작은 편이다.
하지만 <마농 레스코>는 여러 가지 점에서 푸치니에게 중요한 작품이며, 오늘날의 인기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의 명성을 처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즉 <마농 레스코>는 그때까지 대중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던 이전의 두 개의 오페라 즉 <요정 빌리>(1884)와 <에드가>(1889) 정도의 작품만을 내놓았던 푸치니가 최초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며, 오페라 작곡가 - 단순한 작곡가가 아니라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탈리아 최초의 근대적인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푸치니란 이름을 확고하게 해준 작품이다.
이 오페라는 1893년 토리노의 레지오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10여 년 만에 유럽은 물론이고 세계 유수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다투어 올려졌다. 또한, 1923년에는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 30년 기념 공연이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작곡가 자신의 눈앞에서 성대하게 올려진, 푸치니 자신으로서는 잊지 못할 첫사랑과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푸치니가 불과 35세 때 완성한 작품이지만, 사실 그의 나중의 성공작들 즉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에서 나타나는 푸치니 오페라의 매력의 비밀들이 모두 나타나고 있다. 즉 첫째 반음계적인 화성을 구사하여 그때까지 이태리 오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근대적 화성의 칼라를 부여했으며, 둘째 바그너의 영향으로 다분히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타 풍의 장면을 많이 구사하였고, 셋째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더욱 커졌으며 동시에 오케스트라 작법도 세련되었다. 그리고 넷째로는 그러면서도 역시 베르디가 완성한 이태리 오페라의 전통도 계승하여, 무척 선율적이고 인상적인 아리아들도 나온다는 것이다. 이렇듯 <마농 레스코>를 유심히 감상해 보면, 이미 그의 다른 걸작들에서 우리가 즐기고 있는 푸치니 오페라의 재미를 다 느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인 것이다.
밀라노의 권위 있는 악보 출판사인 리코르타 사의 권유로 푸치니가 프레보의 연애 소설 <마농 레스코와 기사 데 그뤼의 이이갸>를 오페라로 쓰기로 하였을 때, 이미 이 유명한 소설은 프랑스의 작곡가들에 의해 몇 차례나 오페라화되어 있었다. 즉 이미 오베르가 쓴 <마농 레스코>(1856)는 당대에 큰 성공을 거두었고, 오베르가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또한, 프랑스 오페라 최대의 작곡가인 마스네는 <마농>(1884)이란 제목으로 오페라를 만들어 이미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푸치니가 원작을 한 번 더 오페라로 만들려고 계획하였을 때 마스네의 <마농>이 아직 이태리에서는 공연되지 않았던 시점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분명 놀라운 도전이었으며 성공을 열망하는 젊은이의 무모한 욕심으로 비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쟁을 좋아했던 푸치니는 이 작품에 집착하였으며, 자신이 마스네라는 대작곡가와 비교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도 계산하였던 것 같다. 어쨌든 푸치니가 마스네의 작품을 크게 의식하였음이 분명한 것은 <마농 레스코>를 의도적으로 <마농>과는 다르게 만들기 위해서 원작에서 마스네가 골랐던 대목과는 다른 대목을 가급적으로 골랐으며, 여주인공 역시 원작의 캐릭터보다는 푸치니가 좋아하던 자신의 이상적인 여성상(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많이 보이는)을 그려내고 말았다.
즉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여러 면에서 마스네의 <마농>과는 다르다. 첫째는 마농의 캐릭터이다. 프레보의 원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변덕 잘하고 믿을 수 없는 여성인 마농의 성격은 많이 완화되어 푸치니의 다른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처럼 어리고 귀엽고 단순하며 또한 사랑에 대해서도 보다 순정적인 여자로 그려 놓았다. 이것은 푸치니가 고의로 의도했다기보다는 작곡 과정에서 작곡가의 여성관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마농을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변화이다. 늙은 부호이자 고관인 제론테는 원작에서는 권력과 욕심을 쥔 늙은 색마로 그려지고 있다. 그러나 푸치니의 오페라에서는 늙은 부자가 젊은 처녀에게 빠진 것 정도로만 표현된다. 레스코 역시 <마농>에서는 도박에 빠져 있는 믿을 수 없는 사촌 오빠이며 동생을 이용해 성공하려는 점이 뚜렷이 부각되는데 반하여, <마농 레스코>에서는 그녀의 친오빠로서 도박꾼도 아니고 그녀에 대해 다른 계략을 획책하지도 않는, 여동생을 생각하는 평범한 오빠로 그려지고 있다.
세번 째의 다른 점은 장면에 관한 것들이다. 푸치니는 의도적으로 마스네의 <마농>과 작별하기 위하여, 원작 중에서 <마농>에 나오지 않는 대목들을 주로 그리려고 하였다. 즉 <마농>에서 유명한 마농과 데 그뤼가 동거를 하는 장면이나, 제론테 등이 그들을 찾아내는 장면, 데 그뤼가 신학교에 있는 대목 그리고 도박으로 살아가는 대목 등은 극에서 중요한 대목임에도 마스네 오페라의 핵심이라는 이유로 모두 생략시켰다. 대신에 푸치니는 <마농>에는 없는 장면들, 즉 마농이 제론테의 집에서 상류 생활을 하는 대목을 자세히 묘사했으며, 마농이 프랑스를 떠나는 르 아브르 항구의 장면, 그리고 4막에서는 무대를 미국에까지 옮겨 사막에서의 장면으로 막 전체를 꾸몄다. 그러므로 이런 점들이 <마농>과 차별화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드라마의 흐름에 억지스러운 면을 없애지 못하고 있으며 각 막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해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것들은 <마농 레스코>의 결정적인 단점들로서, 처음 이 오페라를 접할 때 드라마에 관객들이 쉽게 녹아드는 것을 방해하고 있으며, 또한 만일 마스네의 <마농>을 미리 본 사람이라면 이 오페라에 호감을 갖기 어렵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농 레스코>가 명작으로 취급받는 것은 오직 푸치니의 뒤어난 음악, 바로 그것에 있는 것이다. 그만큼 <마농 레스코>는 당시 젊은 푸치니의 음악 세계의 모든 것이 다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토스카니니의 편곡으로 더욱 빛을 발한 <마농 레스코>
미국 초연은 1894년 8월 29일 필라델피아에 순회 공연 중이던 이탈리아의 한 오페라단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1907년 1월 18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초연 이후부터 미국인들로부터 사랑받는 레퍼토리로 정착했다. 뉴욕 초연에서 엔리코 카루소, 리나 카발리에리, 스코티 등이 출연했다.
1910년의 파리 초연을 이끈 것도 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었다. 당시 푸치니도 공연장에 참석했으며, 마농 역을 맡은 보리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다. 빈 초연은 1908년에 이루어졌지만, 1923년에 가서야 히트를 치기 시작했다.
1922년 12월 25일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스칼라 극장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갈라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이때 토스카니니는 몇 군데 관현악 편곡을 가볍게 처리하여 악기군 간의 균형을 가져왔으며, 출연 가수들의 노래가 좀더 잘 들리도록 했다. 오늘날에 공연되고 있는 <마농 레스코>는 토스카니니의 편곡으로 굳어져 있다. 이날 공연에서 푸치니 자신도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토스카니니와 푸치니 사이에 남아 있던 감정의 앙금도 말끔히 가시게 되었다. 이튿날 푸치니는 토스카니니에게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의 심심한 감사'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빈 국립 오페라단에서도 '푸치니 페스티발'의 일환으로 <마농 레스코> 초연 30주년을 기념하여 그해 5월에 특별공연을 가졌다. 당시 로테 레만과 알프레드 피카베르가 주역을 맡았다. 그러나 테너 가수가 갑자기 병석에 드러눕게 되어 공연이 몇 차례 연기되었고, 10월 5일에 가서야 무대에 올려졌다. 푸치니는 아들과 친구와 함께 빈에 가서 새로 구입한 란치아 승용차를 타고 빈 시내를 누볐다. 그가 마치 빈의 황제가 된 기분을 느꼈다고 술회하고 있다. 10월 공연 때에도 푸치니는 빈을 방문했다.
무려 30년 동안이나 <마농 레스코>가 제작되어 상연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던 푸치니. 그리하여 30년 동안 계속적인 수정이 가해진 오페라. 이것은 오페라 역사상 매우 드문 진기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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