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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백운봉 '상원계곡'

박연서원 2014. 8. 18. 10:19

용문산 백운봉 아래 '상원계곡' 아름답다.


 

경강국도를 타고 양평쯤을 지나다보면 왼쪽으로 칼처럼 뾰족 솟아난 봉우리 하나가 눈에 띈다. 남한강 물을 굽어보면서 우람하게 솟아오른 봉우리의 형세가 당당하기 그지없다. 용문산(1157m)의 남쪽능선이 내려오면서 남한강을 만나기 전 마지막으로 용틀임 하듯 솟아오른 백운봉(940m)이다.용문산은 주변의 유명산과 중원산, 도일산이 능선으로 이어져있어 산세가 자못 웅장하다. 그러나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어 등산객들은 정상에 오를 수 없어 인근의 산과 연계해 올라야 용문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용문산을 오르는 가장 보편적인 등산로는 용문사를 지나 곧바로 정상쪽으로 치고 올라갔다가, 마당바위쪽으로 돌아 하산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 등산로를 새로 정비해 위험한 곳은 별로 없지만, 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등산로가 많아 체력을 잘 안배해야 한다. 용문산을 제대로 즐기려면 양평의 백운봉을 거쳐 함왕봉, 장군봉을 넘어 용문산 정상의 군부대 철망을 타고 돌아 마당바위로 내려오는 길이 가장 추천할 만하다. 출발점은 양평 새수골의 삼림욕장이다. 총 산행시간은 7~8시간을 잡아야 한다.

새수골에서 백운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최근에 정비해 잘 닦여있다. 새로 세워놓은 표지판도 친절하다. 삼림욕장으로 활용되는 만큼 가파르거나 위험한 코스는 없다. 출발한지 1시간30분정도면 백운봉 정상에 닿는다.용문산을 통틀어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바로 이곳 백운봉이다. 남한강이 양평을 지나며 굽이쳐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구불구불 이어지는 강물이 햇볕에 반사돼 반짝인다. 동북쪽으로는 멀리 레이더기지가 있는 용문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백운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위험한 편이다. 겨울철에는 음지라 곳곳에 얼음이 얼어있어 한겨울에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용문산 정상쪽으로 접근하려면 함왕봉(947m)과 장군봉(1165m)을 거쳐야 한다. 함왕봉과 장군봉은 정상부근에 나무들이 빼곡해 전망은 그리 기대할 것이 없다. 장군봉에서 용문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과거엔 출입금지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장군봉에서 용문산 정상쪽으로 연결된 등산로는 군부대의 동쪽사면에 닿는다. 이쪽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압권이다. 군부대와 만나면 철조망을 따라 반대편 서쪽사면까지 9분능선을 돌아서 간다. 이곳은 길은 희미하지만, 등산로를 따라 길게 줄을 매어 놓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군부대의 서쪽사면 끝은 등산객들이 접근할 수 있는 용문산의 최고높이로 평상을 만들어놓아 등산객들이 쉴 수 있도록 해놓았다. 평상에서 20m정도 떨어진 곳에 우뚝 솟은 신선바위가 있는데, 조심조심 바위에 올라서면 건너편의 중원봉이 손에 잡힐 듯 눈앞으로 다가온다.하산길은 서둘러야 한다. 워낙 길이 가파른데다 곳곳에 매어진 줄을 타고 내려가야 하는 탓에 시간이 만만치 않게 소요된다.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위험한 곳마다 줄을 매어놓고 계단을 만들어놓았지만, 내려가는 길이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용문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보다는 마당바위쪽으로 내려오는 편이 훨씬 더 운치가 있다. 큼지막한 바위들이 울퉁불퉁 서 있어서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용문사로 내려서면 유명한 은행나무를 둘러보고 내려가면 좋다. 양평까지는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1시간정도의 간격으로 시외버스가 다닌다. 양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등산의 기점인 새수골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요금은 7000원정도. 용문사쪽으로 내려오면 용문사 입구에서 버스를 타고 용문이나 양평으로 나온 뒤 시외버스나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용문산 백운봉 아래 상원계곡에는 상원사가 소재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에 속해 있다. 창건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유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1330년대에 보우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했고, 1398년(태조 7)에 조안이 중창했으며, 무학이 왕사를 그만둔 뒤 잠시 머물렀다.

1458년 해인사의 대장경을 보관하기도 하였다. 1462년(세조 8)에는 세조가 이곳에 들러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어명을 내려 크게 중수했다고 하는데, 최항이 그때의 모습을 기록한 《관음현상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1463년(세조 8)에는 왕이 직접 거동하였으며 효령대군의 원찰이 되었다.그 후 끊임없이 중수되어 왔으나 1907년 의병 봉기 때 일본군이 불을 질러 겨우 법당만 남게 되었다. 1918년 화송이 큰방을 복원하고 1934년에는 경언이 객실을 신축했으나 6·25전쟁 때 용문산 전투를 겪으면서 또다시 불에 타 없어졌다.

1969년에 덕송이 복원에 착수했으며 용문사의 암자에서 독립시켰다. 1970년 경한니가 요사를 복원하고 1972년에는 삼성각을, 1975년에는 대웅전을 각각 복원했으며 1977년에는 용화전과 청학당을 지었다.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 사이에 있는 용문산(1157m)은 주봉인 가섭봉을 비롯하여 동북쪽으로 도일봉(864m), 동쪽 중원산(800m), 남서쪽 백운봉(940m) 등으로 연봉을 이루는데, 서울에서 42㎞정도이고, 양평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약8km 떨어져서 사시사철 수많은 등산객이 찾는 서울 근교의 명산이다.

북쪽은 완만한 경사이지만, 남쪽은 급경사여서 첩첩이 쌓인 암괴들과 깊은 계곡과 폭포가 있는데, 남쪽 계곡에는 아름다운 숲 속에 천년고찰 용문사가 있다. 특히 수령 1100년을 자랑하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빼놓을 수 없는 양평의 자랑이지만(천연기념물 제30호), 용문산 정상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암반과 깊은 계곡, 자연의 웅장함도 빼놓을 수 없는 양평의 자랑이다.

 

양평군에서는 용문사 일대를 용문산관광단지로 만들어서 많은 놀이시설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매표소에서 용문사 일주문까지 가는 길 양쪽에는 온갖 조형물들을 마치 어린이공원처럼 꾸며놓고, 한쪽에는 친환경농업박물관이라는 전통기와로 지은 큼지막한 건물도 용문사와 지자체 사이의 윈윈 전략 같은데, 용문사 입구 주변의 음식점, 민박과 숙박업소 등은 경건한 부처의 절집이 아니라 하나의 관광단지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의 용문사를 찾아가는 길은 서울 동서울터미널과 상봉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용문까지 시외버스가 운행하고, 또 청량리역에서 중앙선 용문역까지 매시간 기차가 출발한다. 용문역에서 하차하여 길 건너 파출소 앞을 왼편으로 조금 걸어가면 시내버스 터미널인데, 이곳에서 양평~용문사행 시내버스를 타고 20분정도 가면 된다. 자동차로 갈 경우에는 망우리고개나 팔당대교를 건너 6번 국도를 이용해서 양평~용문으로 갈 수 있고, 중부고속도로 하남나들목을 빠져나가 하남 시내 우회도로를 달려 팔당대교를 건넌 뒤 양평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6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주차비 3000원 이외에 사찰 입장료 2000원씩을 내야하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운데,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약1㎞쯤 올라가는 약간 가파른 비탈길은 울창한 숲과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시원해서 마치 심산계곡을 찾은 느낌을 안겨준다. 사실 용문사는 서울 근교에서 산사가 가파르지 않고 숲길이 아름다워서 젊은 주부들이 으뜸가는 태교여행 코스로 꼽히는 곳으로서 오른쪽 계곡에는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고, 왼편에는 작은 시내처럼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것이 운치 있다. 가을철이면 짙붉은 아기 단풍나무 숲과 곱게 물든 단풍나무가 용문사의 자랑이지만, 여름철에도 그 짙푸르름은 풍성한 가을을 예고하는 듯했다.

용문사는 통일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 대사 여엄(862∼930)이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재위 927~ 935)이 친히 행차하여 창사했다고도 한다. 나말 여초에 활약한 대경 대사는 9세에 출가하여 처음에는 교종을 배웠으나 나중에는 선을 연구했는데, 당에서 유학했다가 귀국 후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다.

고려 태조는 그를 보리사 주지로 임명하고 69세에 입적하자, 시호를 ‘대경’, 탑 이름을 ‘현기’라고 했는데, 보리사 터에 있던 그의 탑비는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아무튼 용문사는 고려 우왕 4년(1378) 정지국사 지천( 1324~1395)이 황해도 개풍에 있던 경천사의 대장경을 이곳으로 옮겨서 봉안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경천사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로비 층에 전시하고 있는 7층 석탑이 있던 절집이다.

조선 태조 4년(1395) 조안화상이 중창한 용문사는 세종 29년(1447) 수양대군이 세종의 왕비이자 자신의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를 위한 원찰로 삼아 크게 중창했는데, 임금이 된 세조 3년(1457) 다시 크게 중수했다. 이렇게 조선 초까지 왕실의 보호를 받던 용문사는 절집이 304칸이나 되고 300명이 넘는 승려들이 모일 만큼 번성했으나, 1907년 일제가 의병의 근거지라며 사찰을 불태워버렸다. 1909년 취운 스님이 작은 절집을 짓고 유지하다가 1938년 태욱 스님이 대웅전, 칠성각, 요사 등을 중건했지만,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고 일부 절집만 남은 것을 1982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범종각, 지장전, 관음전, 요사채, 일주문, 다원 등을 새로 중건했다. 현재 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로 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금세 부처의 세계를 지켜주는 사천왕이 거처하는 사천왕문을 만나기 마련이지만, 오랜 기간 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된 사천왕문을 복원하지 못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관음전과 불탑이 있는 수미산인데, 그 돌계단 아래 왼쪽에 있는 천년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를 사천왕목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령 1100~1500년으로 추정되는 한 그루의 암컷 은행나무는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심었다고 하고,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란 것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그만큼 고승이나 왕자의 이름을 의존하고 싶은 전설이라고 믿고 싶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생명력이 강해서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하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높이가 142m에 이르고 둘레가 14m나 되어서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라 하고, 수많은 전쟁과 화재를 겪으면서도 용케 살아남아서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면 소리를 내어 우는 신령한 나무로도 알려져 있는데, 선초 자신의 어머니 원찰로 삼은 세조로부터 정삼품 당상직첩을 받기도 했다.

대웅전에 이르기 전 오른쪽 계곡을 건너는 좁은 흔들다리를 건너면, 정지국사 지천 스님의 부도와 정지국사탑비가 있다(보물 제531호). 고려 충숙왕 11년(1324년) 황해도 재령에서 아버지 김연과 어머니 윤씨 사이에서 태어난 스님은 출가 후 공민왕 2년(1353년) 무학 대사와 함께 원으로 건너가서 지공대사로부터 불법을 배웠는데, 이때 먼저 유학 온 나옹은 이미 유명한 스님이었다. 공민왕 5년(1356) 귀국한 뒤 전국을 순례하다가 조선 태조 4년(1395년) 천마산 적멸암에서 입적했는데, 다비식 때 수많은 사리가 나와 제자 조안 등이 태조 7년(1398년) 용문사에 부도와 비를 세우고, 정지국사로 추존되었다. 탑비의 글은 선초 제1차 왕자의 난 때 처형된 정도전의 뒤를 이어 조선 정치체제를 확립하는데 큰 공을 세운 양촌 권근(1352~1409)이 지은 것으로서 대웅전에서 동쪽으로 약300m쯤 떨어진 이곳을 거쳐 대웅전으로도 올라갈 수도 있다.

또, 일중 김충현(1921~2006)이 편액을 쓴 관음전에는 고려시대인 14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금동관음보살좌상(보물 제1790호)이 있는데, 속세와 떨어진 심산유곡의 절집도 대중을 향해서 감춰두었던 옷고름을 푼 것처럼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아래 왼쪽에 있는 전통찻집은 절집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치부하더라도 은행나무 앞에는 아예 포토 존을 설치했고, 바로 곁에는 산사음악회 상설무대가 만들어져 있다. 은행나무에서 채취한 은행 알을 몇 개씩 담아서 판매하기도 하고, 크리스털 목걸이 등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파는 것도 조금은 마땅치가 않다. 템플스테이는 휴식 형은 연중무휴이고, 산사체험 형은 주말에만 운영하고 있다. 참고로 자전거로 상원계곡 상원사와 용문계곡 용문사를 방문하려면 중앙선 용문역에서 출발하는 방법이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