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tasie Norvégienne (for Violin and Piano)
랄로 / 노르웨이 환상곡
Édouard Victor Antoine Lalo 1823∼1892
1. Allegro Non Troppo & 2. Andante
Jacques Thibaud, Violin / Tasso Janopoulo, Piano
Elli Choi, Violin
MusicaNova Orchestra
Warren Cohen Cond.
Performed at Scottsdale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November 18 2012. Elli Choi, 11 years old, is a student in the Juilliard Pre-College Division where she studies with Hyo Kang.
랄로의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4곡의 협주곡 가운데 제3번으로 1880년에 작곡되었다.
랄로의 작품은 일반적으로 이국적인 정서와 대담한 악상, 그리고 거의 원색에 가까운 화려한 색채감을 띠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경향을 엿볼수 있다.
* 덴마크 코펜하겐출신의 세계적인 리코더주자인 미칼라 페트리와 기타의 라르스 한니발은 부부연주가이다.
랄로 (Edouard Victor Antoine Lalo 1823∼1892)
스페인 계통의 프랑스 직곡가 랄로는 바이올린, 비오라, 첼로에도 능했다.
북부 프랑스의 라일에서 태어난 랄로는 그 지방의 음악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839년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하였다. 24세 때 로마 대상에서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22세부터 작곡가로 나섰는데 1872년 2월에 무용 모음곡 <디베르티멘토>를 초연하면서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874년에는 <바이오린 협주곡> F장조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에 의해 초연되었고 다음 해에 그의 대표작이 된 <스페인 교향곡>이 사라사테에 의해 초연되었다. 이로서 그는 일약 프랑스 일류의 작곡가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1877년에는 <교향적 알레그로>와 오페라 <이스의 왕> 등 여러 유명한 작품을 계속 발표하였다. 그의 음악에는 깊은 맛이 부족할지 모르지만 매우 개성적이며 교묘하게 구사한 관현악법은 신선감을 준다. 자유로운 표현에 색채적이며 남국적인 정서를 지닌 작품을 많이 작곡하였다.
〈스페인 교향곡 Symphonie espagnole〉과 명료한 관현악법으로 유명하다.
스페인계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1839년 무일푼으로 파리로 가서 파리 음악원에서 프랑수아 아브네크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J. 쉴로프와 크레브쾨르에게 작곡 개인교수를 받았다. 1848년 첫 작품을 출판했고, 1855년에는 아르맹고(Armingaud) 현악 4중주단에 비올라 연주자로 들어갔다.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스페인 교향곡〉을 사라사테가 1875년 초연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1876년에는 첼로 협주곡, 1882년에는 발레곡 〈나무나 Namouna〉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 곡은 안무 솜씨보다는 수준 높은 음악이 더 돋보인다는 점에서 디아길레프의 발레 작품들을 예시했다. 뒤이어 1887년 〈교향곡 G단조 Symphony in G Minor〉를, 1888년에는 오페라 〈이스의 임금님 Le Roi d'Ys〉의 결정판을 발표했다.
역시 후대에 영향을 준 바 있는 실내악으로는 현악 4중주, 3개의 3중주,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가 있고, 바이올린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도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슈만, 베버와 유사한 점이 있기는 하나 매우 독창적인 재능의 산물이다.
티보 (Jacques Thibaud, 1880-1953)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가로서 뿐만 아니라, 교수이며 고전 악보의 편찬자로 또 모짜르트 연주가이며 바이올린 교과서의 뛰어난 저자로서도 유명한 헝가리의 칼 훌레쉬 (Karl Flech 1873-1944)는 "어떤 예술가의 예술을 이해함에 있어서 매스터 키를 제공하는 것은 언제나 그 예술가의 성격이다."라고 확인했지만, 티보의 경우 그러한 성격은 타고난 것이었다. 그는 프랑스인이며 인생을 사랑하고 여인을 사랑했다. 그의 연주에서는 "관능적 쾌락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흐르고 그 세련미에는 한층 더 매력을 더해주는 부정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 (M. 캠벨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들").
그러나 티보는 야비하다든가 감정 표현이 지나치다는 따위의 비난을 들은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연주는 언제나 남성적 매력으로 넘치고 있었다. 티보 특유의 애무하는듯한 느낌의 선율은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고 하는 의견에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에 그가 끼친 영향은 표정 있는 음이나 지속음의 평탄한 인토네이션의 수준을 향상시킨 것이 있다. 그의 바이올린은 섬세하고 우아한 음색에 특색이 있었다. 그 꺼져들어가는 듯한 미묘한 음 속에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개성적인 빛이 깃들어있었다. 에스프리로 가득찬 세련된 스타일을 지니면서도 그저 멋진 연주라고 말해 버릴 수만은 없는 기품이 넘치며 가눌길 없는 야릇한 매력이 있었다. 그 우아하고 관능적인 음색의 아름다움 때문에 수많은 음악 애호가가 지금도 그의 레코드에 귀기울이며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다.
티보는 1880년 9월 27일, 프랑스의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운 뒤, 13세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마르탱 마르쉬크로부터 철저한 바이올린 주법을 배워 1896년에 1등상을 받고 졸업했지만, 생활이 곧 궁하여 한때 카훼 루쥐의 전속 악사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카훼에서 지휘자인 에두아르 콜론느에게 발탁되어 콜론느 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주자로 있다가, 이윽고 솔로이스트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01년에 베를린에서 데뷔하고, 이어 1903년에는미국 무대에 화려하게 등단했다.
1905년에 코르토 (Alfred Cortot,1877-1962)와 2중주를 하게 되고 이어 카잘스 (Pablo Casals,1876-1973)까지 합세하여 3중주단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음악사에 길이 빛날 카잘스 3중주단 (Casals Trio)으로서 1920년대 후반부터 실내악 연주의 빛나는 금자탑을 이룩하게 된다. 이 3중주단의 역사적 명연주는 모두 EMI에서 LP 및 CD로 복각되어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티보는 반 나치 운동에 가담하여 독일에서의 연주를 거부했다. 1943년 유명한 롱-티보 국제 콩쿠르를 창시하여 세계의 유능한 연주자들의 등용문을 만들기도 했던 그는 1953년, 일본으로 향하는 연주 여행 도중 알프스 상공에서의 비행기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 때 그의 나이 72세였다. 당시 추락한 비행기에는 생존자란 하나도 없었다.
티보가 맨 처음 레코드에 녹음한 것은 1905년이며 은사 마르쉬크의 "스케르짠도"와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 등 전 6곡이었다. 잡음이 요란하지만 그 속에서 싱싱한 열기가 분출됨을 느낄 수 있다. 티보의 레코드 녹음 제2기는 1907년부터 1919년까지 발매된 생-생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기타 소품이 수록된 프랑스 파테 (Pathe)반 11매 (SP)였다. 이 중 드보르자크의 "유모레스크"가 LP화되어 있지만 음의 상태가 열악하여 감상하기보다는 하나의 귀중한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 후 그는 1922년부터 영국 그래모폰사 (Gramophone: 지금의 EMI)와 전속 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녹음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한동안은 아직 어쿠스틱 (나팔 취업)시대였다. 그러나 1925년에 녹음된 바하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은 그의 최초의 대곡이며, 관현악 반주가 조잡하지만 티보의 음은 요기마저 감도는 듯한 재치와 유려함으로 넘치고 있다. 마이크로폰을 사용하는 전기 녹음 시대가 열린 뒤의 데뷔 레코드는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6번 (M. 서전트 지휘)이었다. 이것은 티보의 절정기라고 평가되는 시기의 녹음으로서 음질은 좋지 않지만, 티보의 마음과 기교가 혼연일체를 이루며 멀리 비상하는 지극히 높고 순수한 음악의 세계에 압도된다.
1927년부터는 코르토와의 2중주곡 녹음이 시작되었다. 그 첫 레코드가 포레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이었다. 이 연주는 그지없이 화려하고 청초한 에스프리가 넘치는 연주로서, 지금 들어도 청춘의 싱싱한 노래로 넘쳐 흐름을 가슴 뜨겁게 느낄 수 있다. 2년 후에 이들이 녹음한 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역시 후세에 길이 남을 향기 짙은 명연주이다. 그 후 1932년에는 코르토, 카잘스와 함께 결성한 3중주단의 제1작,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곡" 제1번이 파리에서 녹음되었다. 절정기의 세 거장이 천의무봉이라고 해야할 당당한 명연기를 펼쳐 주고 있다. 카잘스 3중주단은 이어 멘델스존과 슈만의 "피아노 3중주곡", 베토벤의 "피아노 3중주단" (대공)과 "카카두 변주곡", 하이든의 "피아노 3중주곡" 등을 계속 녹음했다.
1929년에 이르러 티보 특유의 개성이 가장 돋보이는 주옥 같은 바이올린 소품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의 원숙기의 명연주가 이 한 장의 "자크 티보 리사이틀"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열연이며 음질도 나무랄 데가 없는 걸작이 비탈리의 "샤콘느" (1936년 녹음)이다. 티보의 그 오묘한 아름다운 음색, 기교를 초월한 품격, 영감을 가슴에서 전해 주는 높은 경지는 당대의 크라이슬러도 미치지 못한 고고함을 지닌다.
그리고 코르토 반주에 의한 드뷔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음유시인" (전주곡 제1권, 제12번)을 비롯하여 생-생스의 "하바네라", 마리쉬크의 "스케르짠도" (1933년 재녹음)같은 걸작이 있다. 그 밖의 수록곡을 좀더 살펴보면, 포레의 "자장가", 라벨의 "하바네라", 베라치니의 "소나타", 활랴의 "무곡", 그라나도스의 "스페인 무고", 바하의 "가보트", 알베니스의 "말라게냐", "탱고" 등 티보의 종횡무진의 신기를 엿볼 수 있는 명작들이 눈부시게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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