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oresque in Gb major, Op.101, No.7
드보르작 / 유모레스크
Antonín Leopold Dvořák 1841~1904
Arthur Grumiaux, violin
Istvan Hajdu, piano
유모레스크(Humoreque)란 19세기 기악곡에 붙여진 명칭으로서 일반적으로 비음악적 개념의모호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피아노곡을 말한다. 가볍게 뛰는듯한 리듬적인 가락에서 노래와 같은 부드러운 선율로 이어지다가 다시 처음의 선율이 나와서 끝을 맺는다.
유모레스크(Humoreque)는 슈만, 루빈시타인, 차이코프스키 등에 의해서 이미 만들어진 바 있지만 그 중에서 드보르작의 피아노를 위한〈8개의 유모레스크 Eight Humoresques> Op.101(1894)과 로베르트 슈만의 Op.20이 가장 잘 알려진 유모레스크이다.
특히 드보르작의 것은 가장 유명해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드보르작의 음악을 음악사적 의미로 보자면 스메타나의 뒤를 이은 체코 민족주의 음악의 대표자이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정치적인 신념이 강했던 스메타나 보다는 소박하고감수성이 예민한 작곡가였음을 우리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느낄 수 있다. 예술가의 삶은 대부분 고단하고 험난하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예술가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평온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도 마땅히 훌륭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 드보르작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드보르작은 평탄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한 작곡가이다.
<유모레스크>는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으로 더 많이 연주되고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하는 가족들 앞에서 이 곡을 연주하게 될 날을 손꼽으며 연습에 정진한다. 아빠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선율에 맞춰 춤을 추는 딸아이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그림을 선사한다.
유모레스크(Humoresque, 프랑스어: Humoresque 위모레스크, 독일어: Humoreske 후모레스케)는 비음악적 개념의 모호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피아노 곡을 말한다. 유모레스크 가운데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가 매우 유명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유모레스크를 특정 곡의 제목으로 알고 있기도 한다.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는 모두 9곡인데, 한 곡은 번호가 붙어있지 않다. 그중 7번째 곡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바이올린으로 편곡해서 자주 연주된다. 드보르작의 곡 말고도 로베르트 슈만의 유머레스크도 잘 알려진 편이다. 이 외에도 차이콥스키, 루빈스타인 등 여러 사람에 의해 작곡된 바 있다.
Yo Yo Ma, cello (중국계 미국인, 프랑스 태생)
Itzak Perlman, violin (이스라엘 태생 유대계 미국인)
Seiji Ozawa, cond.
David Garrett, violin
at the J.Carreras Gala, 17.12.2009
Rachel Barton Pine, violin
Matthew Hagle, piano
April 27, 2007
Classikan Ensemble
at SAC 2012 (Seoul Art Center IBK hall)
Guilherme Amaral, piano
BBC Concert Orchestra
orchestrated by Henry Wood
conducted by Paul Daniel
Antonín Dvořák's 1841~1904
드보르작 (Dvorak, Antonin, 1841~1904)은 체코 프라하 근교 넬라호제베스에서 태어났다.
16세 때에 여관과 정육점을 경영하는 아버지가 가업을 물려주려는 것을 거역하고 프라하의 오르간학교에 입학하여 2년간 공부했다. 이 시기에 극장과 음악회를 다니며 베를리오즈와 리스트, 바그너의 음악을 배운다.
졸업후 레스토랑 등에서 비올라 주자로 생활하다가, 1862년부터 체코슬로바키아 가설극장 관현악단에 입
단하여 10년동안 비올라 연주자로 활동했다. 1866년 이곳에 부임한 스메타나의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으면서, 스메타나 이후 체코가 낳은 위대한 작곡가가 됐다.
1861년부터 실내악을 작곡하기도 하였으며, 1865년에는 교향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1873년 그가 30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민족적 애국시 '빌라 호라의 후계자들'을 초연, 대성공을 거두었다.
1874년 성 아다르베르트교회의 오르간주자가 되어 단막극 '완고한 자들'로 가설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1875~77년까지 1남 2녀를 차례로 잃는 슬픔을 안게 되었다.
이 무렵 오스트리아 국가장학금을 받기 위해 해마다 작품을 출품하였고 1877년 심사위원인 브람스로부터 작품을 높게 평가받아 베를린출판사에서 작품이 출판되어 국내외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1884년 빈 궁정 오페라 총감독 제의를 받았으나 단념하고 조국에 머물렀고, 1884년부터 수회에 걸쳐 영국을 방문하여 대환영을 받았다.
1891년 프라하 음악원 교수에 취임하고 1892년 뉴욕내셔널음악원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음악원장 및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세계 교향곡》 등 많은 걸작을 작곡하였다.
1895년 귀국하여 1901년 프라하음악원장으로 취임하고 같은 해 오스트리아 종신 상원의원으로 추대되는 등 만년에 영예를 얻었으나 1904년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초기작품은 베토벤, 슈베르트의 음악구성에 입각한 작품을 썼으며 다음으로 바그너와 브람스의 수법을 사용하였으나 후기까지 영향을 준 작곡가는 바그너였다. 드보르작은 슈베르트와 비견될 만큼 다작으로, 샘솟듯 악상을 거침없이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음악은 19세기 낭만 음악을 대표하며 국민주의적 성향을 가지기도 하는데 즉 건전한 이념, 미래에 대한 희망, 신에 대한 경건, 자연과 조국에 대한 정열 등이 그의 작품에 기반을 이루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은 다양한 레파토리를 구사하고 체코 지방의 정서를 되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작으로 '신세계교향곡' '현악4중주곡' '아메리카' '첼로 협주곡' 등의 명작을 남겼으며, 그 밖의 작품에 오페라 '루살카', 관현악곡 '슬라브춤 무곡', 피아노 3중주곡 '둠키', 교회음악 '스타바트 마테르' 등과 교향곡 9곡이 있다.
△드보르작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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