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꿈꾸는 샹송인형) - France Gall

박연서원 2012. 11. 5. 09:24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꿈꾸는 샹송인형)
Sung by France Gall


 

Je suis une poupee de cire
Une poupee de son
Mon coeur est grave dans mes chansons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Suis-je meilleure suis-je pire
Qu'une poupee de salon
Je vois la vie en rose bonbon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Mes disques sont un miroir
Dans lequel chacun peut me voir
Je suis partout a la fois
Brisee en mille eclats de voix

Autour de moi j'entends rire
Les poupees de chiffon
Celles qui dansent sur mes chansons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Elles se laissent seduire
Pour un oui pour un nom
L'amour n'est pas que dans les chansons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Mes disques ont un miroir
Dans lequel chacun peut me voir
Je suis partout a la fois
Brisee en mille eclats de voix

Seule parfois je soupire
Je me dis a quoi bon
Chanter ainsi l'amour sans raison
Sans rien connaitre des garcons

Je n'suis qu'une poupee de cire
Qu'une poupee de son
Sous le soleil de mes cheveux blonds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Mais un jour je vivrai mes chansons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Sans craindre la chaleur des garcons
Poupee de cire poupee de son.

 

나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내 마음은 샹송에 새겨져 있어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나는 좋건 나쁘건 살롱의 인형에 지나지 않아요.
내게는 인생이 장미빛의 봉봉 과자로 보여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나의 레코드는 누구나 거기서
나를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
나는 한 번에 수천 개나 되는
목소리의 파편으로 부서져 어디든 가지요.

내 주위에는 헝겊 인형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요.
그것들은 내 샹송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어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좋든 싫든 그녀들은 유혹당하는 대로에요.
샹송 속에는 사랑 밖에는 아무 것도 없죠.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나의 레코드는 누구나 거기서
나를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것.

나는 한번에 수천 개나 되는
목소리의 파편으로 부서져 어디든 가지요.
까닭도 없이 이렇게 사랑을 노래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혼잣말을 하는 거예요.

나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에 지나지 않아요.
태양 아래의 금발머리 인형이에요.
밀랍 인형, 노래하는 인형.
그러나 언젠가 사내 아이들의 정열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는 자신의 샹송을 살릴 수 있게 되겠지요.

 

 

 

France Gall  

 

1947년10월9일 프랑스 파리 출생.

1963년 16살때 EP 앨범 'Ne Sois pas Si Bete'로 데뷔.

1965년 3월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렸던 제10회 유러비젼 송 콘테스트에서

18세의 어린 나이에 룩셈부르크 대표로 참가해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전세계 매스컴을 통해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65년의 제10회 유러비전 콘테스트의 우승곡이며, 재주꾼 세르주 겡즈부르(Serge Gainsbourg)가 작사·작곡했다.
겡즈부르의 본명은 뤼시앙 겡즈부르라고 하며, 1928년 4월 2일 파리 태생이다. 아버지는 백(白)러시아인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그 피를 이어받아 5세 무렵부터 피아노를 배워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품행이 나쁘다는 이유로 리세에서 퇴학당했다.
다시 미술학교에 들어가 건축학을 전공했고, 또한 그림을 전공하여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 한편 피아노 솜씨도 닦아 바의 피아니스트가 되었고, 1954년부터 4년간 프랑시스 클로드가 경영하는 카바레 ‘미롤 랄수유’에서 클로드 부인의 여성 가수 미셀 아르노의 반주를 맡았다.
클로드에게 권유를 받고 아르노를 위해 <La Recette De L’amour Fou>라는 샹송을 썼는데, 이 것이 상당한 호평을 얻었다. 이어 <Le Poinconneur Des Lilas>를 레 프레르 자크에게 주었고, 이 곡이 크게 히트해 샹송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그 자신도 1958년에 ‘미롤 랄수유’에서 가수로 노래하기 시작하여, ‘트로와 보데’ 등에 출연함과 동시에 이들 자작을 LP 레코드에 녹음했는데, 그 데뷔 앨범이 59년에 ACC 디스크 대상을 수상하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같은 해에 브리지트 바르도 주연의 「기운을 내어 다시 한번」에서 영화에 첫 출연했고, 이어지는 「입술의 침」에서는 주제가를 작사·작곡하여 노래를 사운드 트랙에 취입했다. 이후, 때로는 스캔들이 넘치는 화제를 제공하면서 다채로운 활약성을 보여주며 독특한 경지를 확립했다.
이 <꿈꾸는 샹송 인형>은 겡즈부르가 <라 맘마> 등의 작사가 로베르 갈의 부탁을 받고 그 딸 프랑스 갈을 위해 만든 사랑스러운 샹송이다. 원래 제목의 뜻은 ‘납인형, 소리 인형’인데, 사랑도 모르고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우상 가수를 주인공으로 한, 조금 빈정대는 가사를 갖고 있다.
1965년의 유러비전 콘테스트에서 이 곡을 훌륭하게 불러 그랑프리를 획득한 프랑스 갈은 1947년 10월 9일 파리 태생이며, 앞에서 설명했듯이 아버지는 작사가인 로베르 갈이다. 63년 말에 학교를 중퇴하고 가수가 되어 레코드에 데뷔, 이윽고 이 곡으로 일약 세계에 알려졌다.
66년에는 동양에 와서 사랑스러운 무대를 선보였고, 그후에도 틴 에이저를 대상으로 히트를 기록했다. 한때는 제1선에서 멀어져 있었으나, 1974년에 새로운 감각을 지닌 미셀 베르제를 프로듀서로 해서 스타일을 일신, 또다시 컴백하여 히트 차트를 장식하면서 인기를 되찾았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프랑스 갈의 노래가 너무도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