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Anything That's Part Of You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 Elvis Presley 외

박연서원 2012. 10. 25. 19:19

Anything That's Part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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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emorize the note you sent
Go all the places that we went 

   당신이 보낸 글들을 전부 외우고 있어요
    우리가 함께 갔던 곳들을 돌아다녔어요

 

I seem to search the whole day through
For anything that's part of you 

    당신과 관련된 사소한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온 종일 찾아다닌 것만 같네요

 

I kept a ribbon from your hair
A breath of perfume lingers there  
    당신의 머리 리본을 간직하고 있어요
    아직 당신의 향수 내음이 남아 있어요

 

It helps to cheer me when I'm blue
Anything that's part of you
    내가 우울할 때면 내게 기운을 북돋아 줘요
    당신이 남긴 작은 흔적일지라도

 

Oh, how it hurts to miss you so
When I know you don't love me anymore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당신이 그리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요

 

To go on needing you
Knowing you don't need me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당신을 계속 원하게 돼요

 

No reason left for me to live
What can I take, what can I give
    이젠 내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졌어요
    무엇을 갖고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When I'd give all of someone new
For anything that's part of you
    내가 새 사람에게 모든 것을 준다 해도
    당신의 흔적들 뿐일텐데요

 

 

Elvis Presley

 

Elvis Presley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aron Presley,
1935년 1월 8일 ~ 1977년 8월 16일)는 20세기 가장 잘 알려진
미국 가수 중 한 명이었다.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주로 엘비스로 많이 알려져있다. 엘비스의 음악들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로큰롤의 제왕" 또는 단순히 "왕"으로 불리곤한다.

엘비스는 미국 미시시피 주의 투펄로에서 태어나
13살때 테네시 주 멤피스로 이사를 갔다.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사운드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던 선 레코드의 사장
샘 필립스의 협력에 의해 1954년부터 음악 경력을 시작했다.
엘비스는 초기 기타리스트 스코티 무어와 베이시스트 빌 블랙과 함께
음악을 했다. 나중에는 RCA 빅터로 레이블을 옮겼고 커널 톰 파커가
20년동안 매니저를 하기로 계약했다. 1956년 1월, 엘비스는 RCA에서
발매한 첫 싱글 "Heartbreak Hotel"을 발표했고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하며
히트를 쳤다. 엘비스는 텔레비전 출연과 차트를 휩쓸며 인기를 얻었고
로큰롤을 새로운 인기있는 장르로 유행시켰다.
1956년 11월에는 《러브 미 텐더》에 출연하며 영화 데뷔도 했다.

프레슬리는 20세기 대중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있다.
엘비스는 다양한 목소리와 컨트리, 팝 발라드, 가스펠, 블루스 등의 장르를
포괄하며 이례적인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엘비스는 팝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 판매고를 올린 솔로 가수이다.
또한 14번의 그래미 후보로 지명받았고, 3번의 수상을 했으며 36살에는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또한 엘비스는 많은 음악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Vielleicht Kannst Du Mich Jetz Versteh (독어)

 

Du fragst, warum ich von dir geh',
du sagst, der Abschied tut so weh.
Ich sah dich mit dem Ander'n geh'n,
vielleicht kannst du mich jetzt versteh'n.

Du sagst, es war ja nichts dabei,
es war nur eine Liebelei.
Ich aber konn' es nicht mehr seh'n,
vielleicht kannst du mich jetzt versteh'n.

Die Liebe kommt, die Liebe geht
und du bist allein.
Denn er ging von dir fort,
ohne ein Abschiedswort,
es ist aus und vorbei.

D'rum frag' mich nicht, warum ich geh',
sag nicht, der Abschied tut so weh.
Wir können uns nicht wiederseh'n,
vielleicht kannst du mich jetzt versteh'n.

Bobby Solo

 

Bobby Solo의 본명은 Roberto Satti이며 1945년 3월 18일 로마에서 출생.

이탈리아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자주 불려질 정도로 록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아티스트들 중의 한 명으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 스타일을 이탈리아 음악과 잘 어우러지게 한 아티스트이다.

 

Un Soir Sans Toi (불어)

 

Je sais par c?ur ces mots d'adieu
Je reviens souvent à l'endroit
Où nous chantions des airs joyeux
Je vais mourir ce soir sans toi

J'ai gardé le jonc d'amitié
que tu avais mis à mon doigt
Quand tu m'appelais ta moitié
Reviens chérie ce soir vers moi
Pourquoi crier, pourquoi pleurer
c'qui nous unit, c'est le destin
Peut-être bien qu'un jour prochain
Les amants seront rapprochés

Sans ton retour, je meurs d'ennui
Je ne peux vivre un jour sans toi
Je rêve à toi toutes les nuits
Reviens chérie ce soir vers moi

Pourquoi crier, pourquoi pleurer
C'qui nous unit, c'est le destin
Peut-être bien qu'un jour prochain
Les amants seront rapprochés

Sans ton retour, je meurs d'ennui
Je ne peux vivre un jour sans toi
Je rêve à toi toutes les nuits
Reviens chérie ce soir vers moi

Johnny Farago

Elvis Presley 노래를 전문으로 부르는 프랑스 샹송가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 뺨이
몹시도 그리웁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을
고이 간직 하렸더니

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 하오 어찌 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아~ 그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라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
가는 줄 왜 몰랐던가
사랑하는 이 마음을
어찌 하오 어찌 하오
너와 나의 사랑의 꿈
낙엽따라 가버렸으니

차중락

 

코리안 엘비스라 불리우던 차중락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Anything thats part of you' 멜로디에 강찬호 가사로 부른 노래다.

1966년 12월 키보이스 시절 발표한 이 노래를 계기로 솔로로 전향한 차중락은 이 노래를 녹음한지 정확히 2년 뒤인 스물 여덟의 나이로 타계했다.

다음 해부터 가수 차중락을 기리는 낙엽상이 제정되어 

그 해 가장 뛰어난 신인들에게 이 상이 주어졌다. 
낙엽상 제정 첫해 수상자는 나훈아와 이영숙, 그리고 1972년 제4회때는 김세환, 이수미가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