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Mozart, Wolfgang Amadeus (1756.1.27~1791.12.5) 오스트리아
◆생애와 작품세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에서 슐라텐바흐 대주교의 궁정 음악가인 레오폴트 모차르트(Johann Georg Leopold Mozart)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이 발견되어 아버지 레오폴트는 4세 때부터 그에게 클라비어를 가르치고 연주도 시켰다. 6세 때에는 이미 뛰어난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되어 있었고, 오르간과 바이올린의 연주에도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그는 공식적인 교육은 받지 않고 아버지에게서 음악교육만을 받았다. 1762년에 레오폴트는 아마데우스와 그의 누이 마리아 안나 모차르트(Maria Anna Mozart)를 데리고 뮌헨(Munchen)으로 첫 번째 연주여행을 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연주여행을 계속하는 가운데 아마데우스는 유럽 여러 지역의 많은 작곡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빈에서는 전고전주의의 거장 바겐자일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1763년 파리에서는 쇼베르트(Johann Schobert)의 클라비어 양식을 익힐 수 있었으며 글룩의 오페라도 알게 되었다. 1764년, 런던에서는 J. C. 바흐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오페라와 교향곡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밖에도 만하임에서는 교향곡의 창작기법을 공부할 수 있었고, 네덜란드에서는 건반악기 음악을,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의 창작기법을 익힐 기회를 얻었다.
1766년 11월에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서 최초의 오라토리오(1767)를 작곡하고, 1768년에는 빈으로 가서 또 다른 오라토리오를 위촉받아 작곡하였다. 1769년에 다시 부친을 따라 이탈리아로 연주여행을 하면서 즉흥연주와 암보로써 천재적인 재능을 소개하였다. 1771년에 잘츠부르크를 돌아왔다가 다시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여행을 한 뒤 고향으로 와서 작곡과 연주활동을 하였으나 대우는 충분치 않았다.
모친과 함께 다시 외국에서 활동하기 위하여 독일의 여러 지역과 파리 등지로 갔으나 환영을 받지 못하였고, 모친도 이 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1779년에 잘츠부르크로 돌아와서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잠시 일하였고, 1781년에 궁정음악가직을 사임하고 독립된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귀족과 왕실 가족 앞에서 연주를 하거나 피아노 교습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1782년에는 콘스탄체 베버(Constanze Weber)와 결혼하면서 창작활동은 더욱 활발해졌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가정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1784년 프리메이슨(Freemason)단원이 되어 이 운동을 위한 작품도 썼으며 1786년에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이듬해에는 <돈 조반니>를 작곡하였고, 실내악 작품과 교향곡의 걸작품들도 이 때에 나왔다. 그러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여 1791년 마지막 오페라 <마적>을 작곡할 무렵에는 극도로 쇠약하여졌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레퀴엠>작곡을 의뢰받고 작업을 하던 도중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은 1791년 12월 6일에 행하여졌다.
하이든과 함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모차르트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이미 6세 때에 미뉴에트를 작곡했고, 9세에 교향곡을, 11세에는 오라토리오, 그리고 12세에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음악 장르도 다양해서 교향곡이나 오페라와 같은 대규모의 기악곡과 성악곡에서부터 가벼운 소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작곡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서 받은 음악교육과 많은 연주여행을 통해 얻은 자연적인 체험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600여곡이 넘는 작품들에는 작품번호가 붙어 있지 않았는데 편집자 쾨헬(Ludwig von Köchel, 1800~1877)이 이 주제별로 분류하여 K.(Köchel)번호를 붙였다. 그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작품은 모두 626곡으로 알려져 있다.
짧은 생애에 비추어 많은 작품을 남긴 모차르트는 그의 생애에서 볼 수 있듯이 오스트리아라는 한 지역에서만 정착하지 않고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활동한 국제적인 작곡가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음악이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음악보다 더욱 다양한 소재를 선택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입증이 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느 한 국가나 민족의 음악만을 반영하지 않고 세계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전주의 음악의 사상과도 일치하며 '절대음악(absolute music')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겠다.
◆ 오페라 모차르트는 1768년에 빈에서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 <La finta semplice(가장한 바보)>와 독일의 징슈필 <Bastien und Bastienne>를 작곡하였다. 이들 오페라는 J. C. 바흐의 오페라와 연주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 이탈리아의 오페라에서 감동을 받아 작곡되었다. 이 작품들은 어린 시절에 작곡된 것이어서 구성이나 내용이 미흡하여 모차르트 오페라의 계열에 올리지는 못하지만 이미 이 때부터 모차르트는 오페라에 대한 관심과 창작 열의를 가지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오페라 부파(opera buffa), 그리고 징슈필(Singspiel)로 나눌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도 모차르트가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독일 오페라 모두에 능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7편의 오페라 세리아는 성공적인 오페라들은 아니다. 이 오페라들은 전시대의 바로크 오페라를 답습하고 있으며 오페라의 종합성과 음악의 진행 면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보여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1781년에 작곡한 오페라 세리아 <Idomeneo (이도메네오)>는 극적인 합창, 아리아와 중창, 발레, 그리고 오페스트라가 적절하게 조합된 우수한 오페라이다. <이도메네오> 이후 작곡된 오페라 세리아오는 <La clemenza di Tito (티토의 자비)> 밖에 없다. 이 작품은 1791년 프라하에서 보헤미아의 왕 레오폴드 2세의 대관식을 위해서 위촉받아 작곡된 것이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부파에서 더욱 큰 업적을 이루었다. 모차르트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조잡한 형태의 오페라 부파를 예술적 수준의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고 나아가 고전 시대의 가장 인기있는 레퍼토리로 자리잡게 하였다. 모차르트의 희극 오페라는 단순한 희극적 오락성을 넘어서서 인간의 내면까지 표현하고 있다. 오페라에 대한 모차르트의 철학은 글룩과는 달랐다. 그는 바로크 시대 오페라의 문제점이나 개혁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듯하며 오페라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극의 내용을 충실하게 표현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에게는 글룩의 주장처럼 음악이 대본의 시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태어난 오페라들이 <Le nozze di Figaro (피가로의 결혼, 1786)>, <Don Giovanni (돈 조반니, 1787)>, <Cosi fan tutte (여자란 다 그런 것, 1790)> 등이다. 폰테(Lorenzo da Ponte)의 대본을 4막으로 구성한 <파가로의 결혼>은 18세기 이탈리아 양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등장 인물의 성격 묘사를 위하여 독창 아리아 뿐만 아니라 중창을 이용하여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 있어서 중창은 성격 묘사 뿐 아니라 극의 진행과 통일성을 가져오게 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경쾌한 서곡에 이어서 등장하는 알마비아 백작(바리톤), 그의 하인 피가로(베이스), 피가로의 애인 수잔자(소프라노), 가정부 마르첼리나(메조 소프라노), 의사 바르톨로(바리톤)가 벌이는 사랑 행각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음악으로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 모차르트의 통찰력과 천재적인 창작기법은 이 작품을 단순한 희극 오페라에만 머무르게 하지는 않는다. 프라하에서 대성공을 거둔 <피가로의 결혼> 덕분으로 다른 오페라를 위촉 받았는데 이 작품이 <돈 조반니>이다. 이 오페라는 무절제하게 엽색 행각을 벌이다 결국 지은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돈 후안(Don Juan)'의 이야기를 대본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타락한 인물이지만 대본가 폰테는 주인공을 낭만적인 인물로 다루면서 권위에 대한 거부와 형식적인 윤리에 대한 냉소를 보내고 자유주의오 개인저의적인 사상을 은밀하게 그리고 있다. <돈 조반니>도 등장 인물의 성격 묘사가 세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희극적인 장면과 비극적인 사건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오페라 부파로 분류되지만 희극과 비극의 혼합이라는 면에서 드라마 지오코조(drama giocoso)라고 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희극 오페라 <여자란 다 그런 것>은 대표적인 오페라 부파이다. 이 작품은 고전주의의 단순하고 명료한 형식감을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음악 요소들로 표현하고 있다. 모차르트만이 가질 수 있는 뛰어난 선율적 감각이 이 오페라에서도 시종 일관된다. 모차르트의 독일 오페라에서 볼 수 있는 음악적 특징은 음악적 감각이나 재치보다 음악이 함유한 예술성이나 내면성이라 하겠다. 징슈필은 독일의 희극 오페라로 분류되나 모차르트의 징슈필은 희극 오페라의 단순함이나 경박함을 넘어서서 내면적인 예술성을 창조하였다. 징슈필의 주요한 작품으로는 <Die Entfuhrung aus dem Serail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1782)>와 <Die Zauberflote (마적, 1791)>을 들 수 있다. <후궁으로부터의 유괴>는 작곡가들이 자주 사용한 대본인데 모차르트는 이를 가지고 낭만적이고 희극적인 오페라로 구성하였다. 이 작품을 통해 징슈필은 예술성이 있는 오페라로 새롭게 인식되었다. <마적>은 최초의 독일 근대 오페라이자 고전주의 오페라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마적>은 당시 빈의 극장 감독이었던 쉬카네더(Johann Emmanuel Schikaneder)의 대본을 음악화한 것이다.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줄거리로 대중적인 희극을 구성하였는데 음악에는 재치와 유머가 있는가 하면 심오함과 아름다움이 넘치기도 한다. 희극적인 극의 진행 속에서도 엄숙한 내면성이 항상 자리하고 있다. 이것은 1723년에 런던에서 창설된 프리메이슨 운동에 모차르트가 참여한 사실을 반영해 주기도 한다. 프리메이슨 운동은 성실, 신의, 형제애를 이념으로 하는 세계주의 운동을 위한 단체이다. 모차르트는 <마적>에서 많은 박해와 어려움을 이기고 사랑의 승리를 얻는 주인공 타미노와 파미나의 이야기를 프리메이슨 운동의 사상적 배경과 일치시키고 있다. <마적>에는 18세기의 모든 오페라들이 갖고 있는 음악적 특징들이 전부 융합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풍부한 선율적 아리아, 독일적인 레치타티보, 효과적인 중창, 심오한 합창들과 그밖에도 민요풍의 가곡, 바로크적인 코랄 프렐류드 기법, 색채감이 있는 관현악 편성 등으로 오페라가 구성되어 있다. <마적>은 독일 낭만 오페라의 효시적인 작품으로 일컫는 베토벤의 <피델리오>나 베버의 <마탄의 사수>를 예견할 수 있을 만큼 고전주의 시대에 낭만성을 구가한 작품이다. ◆ 교향곡 9세 때부터 작곡하기 시작한 교향곡은 그 수가 50여 곡에 달한다. 작품 목록에 정식으로 자리잡은 41곡의 교향곡을 살펴보면 초기의 교향곡은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 서곡이나 전고전 시대의 J. C. 바흐의 교향곡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점차 만하임 악파와 빈 고전파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빈에 정착하기 이전인 1773년 말부터 1774년 초에 작곡된 G단조(K.183)와 A장조(K.201)에는 질풍노도 양식의 강한 감정표현이 나타난다. 주제의 통일과 형식의 확장은 이미 고전양식에 숙달되었음을 보여 준다. <파리>교향곡(K.297)과 잘츠부르크에서 쓴 C장조(K.338)는 잦은 여행을 통해 얻은 성과로 보여지며 이후 빈에 정착하면서 작곡한 6개의 교향곡은 고전 교향곡의 걸작품들이다. 세레나데로 작곡된 곡을 교향곡으로 전용(轉用)한 <하프너>교향곡(K.385), 느린 서주부가 1악장에 삽입되어 하이든적(的)이라는 평을 받는 <린츠>교향곡(K.425), 서주부가 있는 3악장의 <프라하>교향곡(K.504), 그리고 모차르트 최후의 3대 교향곡 Eb장조(K.543), G단조(K.550), C장조(주피터, K.551) 등이 이 6개의 교향곡에 해당된다. 1788년, 불과 40여일 만에 작곡된 마지막 3대 교향곡은 모차르트를 대표하는 교향곡일 뿐만 아니라 고전 시대 교향곡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백조의 노래'라는 별명이 붙은 제39번 Eb장조(K.543)는 전형적인 고전주의 형식으로 하이든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우아하면서도 경쾌함이 있는 이 작품의 미뉴에트 악장은 특히 유명하다. 제40번 G단조(K.550)는 우울한 서정성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개된다. 비극적 우아함으로 표현되는 페이소스(pathos)적인 감동은 낭만주의 음악을 예견케 한다. 제41번 C장조(K.551)는 <주피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교향곡이다. <주피터>라는 제목처럼 스케일이 크고 장려하다. 제1악장에 나타나는 목관악기의 대위선율과 제4악장의 푸가 기법은 이 작품을 화성 양식과 대위법 양식의 융합으로 이끌어 가는 모차르트의 독창적인 창작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 협주곡 모차르트는 협주곡 분야에서도 고전주의를 대표하고 있다. 특히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고전 협주곡 형식의 확립에 기여했고, 음악적으로도 뛰어나서 오늘날까지 인기있는 연주 곡목으로 무대에 오른다. 25개의 피아노 협주곡 이외에도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그리고 플루트 협주곡, 오보에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 바순 협주곡 등 목관악기를 위한 다양한 협주곡들이 있다.
25개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초기의 작품들과 후기의 작품들이 양식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양식적으로 성숙된 협주곡은 1781년 이후인 빈 시절의 작품에서부터 나타난다. K.375를 시작으로 작곡된 초기의 작품들은 전고전주의와 바로크적인 양식의 협주곡들이다. 독주와 관현악은 뚜렷한 대조를 이루지 못하고 콘티누오도 그대로 남아 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4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1773~1779년 사이에 잘츠부르크에서 작곡한 K.175, 238, 246, 271과 3개의 협주곡 K.242, 2개의 협주곡 K.365
1782~1783년 사이에 빈에서 작곡한 K.413, 414, 415
1784년 빈에서 작곡한 K.449, 450, 451, 453, 456, 459
1785~1791년 사이에 빈에서 작곡한 K.446, 467, 482, 488, 491, 503, 537, 595
1782년부터 빈에 정착하면서 작곡한 17곡의 피아노 협주곡들 중 14곡은 초연 때에 모차르트 자신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고전형식으로 작곡된 빈 시대의 협주곡들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의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25곡 모두가 연주되고 있으나 그 중에서도 빈 후기의 작품들이 자주 무대에 올려지며 <대관식 협주곡>이라고 불리는 D장조 (K.467)와 베토벤이 1, 2악장에 카덴차를 붙인 D단조 (K.466)가 특히 유명하다.
실제로 고전 협주곡 형식은 1780년대에 작곡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고전 협주곡도 바로크의 독주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빠름-느림-빠름의 3악장 구조이지만 미뉴에트는 생략되어 있다. 고전 협주곡은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두 개의 제시부로 시작되는 수정된 소나타 형식이다. 첫 번째 제시부에서는 독주가 관계조로 앞의 주제 소재을 화려하게 연주한다. 제2악장은 느린악장으로 서정적이다. 모차르트 협주곡의 2악장은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으로 안단테(Andante)나 라르게토(Larghetto)의 서정적인 아리아를 딸림조나 관계단조로 연주한다. 제3악장은 론도나 론도소나타 형식으로서 활기찬 악장이다. 독주와 투티의 기교가 넘치는 화려한 악장으로 한 개 이상의 카덴차가 나타난다.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은 독주와 투티의 경쟁과 균형이 지속되고, 관현악과 독주의 음악적 색채감이 뛰어나다.
바이올린 협주곡은 1775년에 작곡된 K.216, 218, 219와 1777년에 작곡된 K.271, 그리고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심포니 콘체르탄테(K.364)>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중에서 군악(軍樂)과 같은 힘찬 리듬이 나타나는 제4번 D장조(K.218)와 스타카토를 동반한 분산화음으로 시작하는 제5번 A장조(K.219)가 특히 유명하다.
◆ 소나타
모차르트의 현존하는 독주 간반악기 작품으로는 18개의 소나타와 17세트의 변주곡 그리고 몇 편의 환상곡이 있다. 이들 작품들은 3악장 구성으로서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 제2악장은 서정적인 아다지오(Adagio)나 안단테(Andante), 제3악장은 카덴차가 있는 경쾌한 론도 악장으로 이루어진다.
1774~1775년에 잘츠부르크와 뮌헨에서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 K.279~284는 하이든과 C. P. E 바흐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갈랑 양식이 뚜렷이 나타난다. 1777~1778년에 만하임에서 작곡된 K.309와 K.311은 기교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곡으로 화려한 알레그로와 우아한 안단테 악장으로 되어 있다. 1778년에 파리에서 작곡된 K.310과 K330~333에는 널리 알려진 곡들이 많다. 특히 K.331은 유명한 <터키 행진곡>이 포함된 인기있는 곡이다. <작은 별>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동요 <Ah, Vous diraise-je maman>에 의한 변주곡인 K.265를 포함한 피아노 변주곡들도 1778년에 파리에서 작곡되었다. 연주곡들은 대부분이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 작곡되었다. 1788년에 빈에서 출판된 C단조 소나타 K.457과 K.475의 첫머리에는 '환상곡(Fantasia)'이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 작품들은 연속적으로 연주된 것 같고 이러한 작품의 예는 C. P. E 바흐에게서도 발견된다. K.457은 베토벤의 <비창>소나타에 영향은 미쳤다. 1789년에 작곡된 마지막 소나타 D장조(K.576)는 알베르티 베이스 대신에 다른 종류의 분산화음을 사용하고 있으며 1악장에는 대위법이, 3악장에는 장식적인 음형이 들어 있어 연주하기에 대단히 난해한 작품이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35곡에 이른다. 초기의 작품은 피아노가 중심이었고 바이올린은 임의로 삽입되는 형태였다. 이러한 작품들을 보면 바이올린은 반주의 기능에 머물렀으므로 피아노 소나타로 불리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했다. 그러나 1777~1778년 사이에 만하임과 파리에서 작곡된 E단조(K.304)와 빈 시대에 작곡된 Bb장조(K.454), Eb장조(K.481), A장조(K.526) 등에서는 바이올린이 피아노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면서 고전주의 바이올린 소나타의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 실내악
고전 시대의 실내악은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잇지만 작품의 형식들은 아직도 체계를 갖추지 못해서 여러 형태의 음악들을 실내악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디베르티멘토, 세레나데, 카사치오네(cassazione) 등도 일정한 구분없이 사용되었고, 현악 3~5중주 이외에도 다른 악기들을 하나씩 삽입하여 만든 3~5중주가 있었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시대에 사교적인 모임이나 축제, 오락 등을 위해서 또는 귀족들에게 위촉을 받아서 13곡의 세레나데, 20곡의 디베르티멘토, 2곡의 카사치오네를 작곡하였다. 이들 음악의 악기 편성은 다양해서 현악 합주에 관악기를 추가한 것, 관악기만으로 구성된 것, 교향곡이나 협주곡과 유사한 것 등이 있다. 특히 유명한 세레나데는 1776년에 작곡된 <하프너(Haffner)> 세레나데 D장조(K.250)이다. 이 작품은 잘츠부르크의 시장이었던 하프너의 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하여 작곡한 곡이며 <하프너> 교향곡(1782)은 이 작품을 확대 변형한 것이다. 빈에서 1787년에 작곡된 <Eine kleine Nachtmusik, K525>는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세레나데로 분류되어 있지만 악기 편성은 현악 5중주와 같다. 이들 작품 이외에 실내악으로 분류할 수 있는 디베르티멘토는 현악기와 호른으로 구성된 K.247, 287, 334와 7중주 K.251이 있고 관악기만으로 구성된 K.252도 있다. 뮌헨과 빈에서 작곡된 세레나데 C단조 K.388과 디베르티멘토 Eb장조(K.563)도 유명하다. 현악 5중주 곡으로는 K.515, 516, 593이 유명하고, 관악기를 포함한 5중주로는 클라리넷 5중주 A장조(K.581)가 널리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는 하이든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하이든 4중주'라고 알려지는 6곡의 작품은 모차르트가 빈 시절에 하이든에게 헌정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하이든의 영향을 받아서 작곡되었지만 각 곡마다 모차라트의 독창성에 의한 새로운 기법들이 나타난다. 제1곡 G장조 (K.387)에서는 마지막 악장에 푸가가 사용되고, 제2곡 (K.421)은 D단조로 우울한 분위기를 표현한다. <사냥>이라는 표제가 붙은 제4곡 Bb장조 (K.458)은 아다지오 악장에서 낭만적 화성감이 넘치며 <불협화음>이라고 불리는 제6곡 C장조 (K.465)는 대담한 화성이 나타난다. 또다른 유명한 현악 4중주로는 프러시아 왕에게 바친 <프로이센왕 4중주 (K.575, 589, 590)>가 있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혼합된 4중주로는 플루트와 오보에를 위한 곡들과 피아노 4중주 G단조(K.478)와 Eb장조(K.493), 피아노 3중주 Bb장조(K.502)와 E장조(K.542), 그리고 현악 3중주 K.563이 있다.
◆ 미사
모차르트의 미사는 교향곡이나 오페라처럼 대규모의 관현악을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인 음악구성은 고전 시대의 호모포니를 기초로 하나 부분적으로는 바로크 시대의 대위법 양식도 자주 나타난다. 대표적인 미사곡으로는 1779년에 잘츠부르크에서 작곡된 <대관식>미사 C장조(K.317)와 C단조(K.427),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곡한 미완성인 <레퀴엠(requiem)> 미사D 단조(K.626)를 꼽을 수 있다. <대관식>미사는 잘츠부르크에 있는 교회으 성모마리아상의 대관을 기념하기 위하여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오페라적인 세속적 요소가 많아서 종교적인 경건함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으나 예술성이 뛰어나서 자주 연주되고 있다. 1782년 결혼 서양을 위하여 작곡된 미사 C단조(K.427)는 미완성이지만 바흐의 <B단조 미사>와 견줄만큼 뛰어난 작품이며, <레퀴엠>의 마지막 부분은 그의 제자가 완성시켰지만 이 작품은 모차르트 최고의 교회음악이다. 이 작품 역시 빈 고전악파의 창작기법에 기초하고 있으나 바로크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 Kyrie에 나오는 2중 푸가는 바흐와 헨델의 대위법 양식을 반영하며 'Dies irae'부분의 극적인 합창은 낭만파 시대의 미사나 극음악에서 볼 수 있는 합창기법을 예견케 한다. <레퀴엠>은 알지 못하는 어떤 귀족의 위촉으로 작곡하게 되었는데 모차르트는 이미 죽음을 예감하여 이 작품을 자신의 죽음에 대한 조곡으로 생각하고 썼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얻은 모든 창작기법과 종교적 체험을 동원하여 이 작품을 고전주의 최고의 교회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짧은 생을 마쳤다.
모차르트의 또다른 교회음악으로는 모테트<춤추라, 기뻐하라 (Exultate jubilate, K.165)>가 있다. 이 작품은 소프라노 독창과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의 형태이다. 2악장에는 유명한 독창곡 '알렐루야(Alleluia)'가 나온다. 이밖에도 성체를 찬미하는 라틴어 기도문을 가사로 한 모테트 <귀하신 몸(Ave verum corpus, K.618)>이 널리 알려져 있다.
◆ 성악곡
모차르트의 세속 성악음악으로는 60여 곡의 연주회용 아리아, 20여 곡의 중창과 합창곡, 30여 곡의 가곡이 있다. 연주회용 아리아는 뛰어난 독창자들을 위해 작곡되었으므로 기교적으로 어려운 작품들이 많다. 모차르트의 가곡은 그의 다른 음악에 비하여 중요시되지는 않으나 괴테의 시를 가사로 한 <Das Veilchen(제비꽃)>을 비롯한 몇 곡은 고전 시대의 어떤 가곡보다 널리 애창되고 있다.
01. 아마데우스 02. 쥬피테 교향곡 41번 03. 플릇 협주곡 제1악장 04. 피아노 협주곡 21번 05. 피가로의 결혼 06. 아이네 클라이네 07. 터키행진곡 08. 세레나데 09. 디베르트멘토 10.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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