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의 &joy]13km 8시간 북한산성 일주
성은 ‘닫힘’이고 성문은 ‘숨구멍’이다. 농민들은 ‘성 밖으로 나가면 죽고, 성 안에 있으면 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목민들은 ‘성을 쌓고 성 안에 안주하는 순간 죽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삶과 죽음은 능선 하나 차이다. 대남문(663m) 일대의 북한산성. 이곳에선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영수 기자 |
얼음처럼 빛나고,/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山頂은/얼음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빛을 받들고 있다. <조정권 ‘산정(산정)묘지1’> 》
겨울 문턱. 북한산은 뼈만 남았다. 우뚝우뚝 바위만 남았다. 서울은 북한산과 한강 사이에 있는 거대한 돔구장이다. 본부석은 바로 북한산. 그곳에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3개 돌기둥이 북쪽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북한산을 삼각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왕궁인 경복궁은 본부석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산은 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한국의 5대 명산. 종로나 광화문에서 북한산을 바라보면 본부석 쪽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이 보이고, 그 뒤로 뾰족하게 삼각머리를 내밀고 있는 보현봉(714m)이 눈에 들어온다. 보현봉은 목을 앞으로 쭉 빼고 북악산 너머로 서울 시내를 넌지시 엿보고 있다. 그래서 엿볼 ‘규(窺)’자를 써서 ‘규봉(窺峰)’이라고도 한다. 보현봉은 만경대의 정남향.
산행 코스 대서문∼대남문 대남문∼위문 북문∼대서문 3부분으로 나뉘어
돔구장엔 반드시 보조경기장이 있다. 서울 안에서도 ‘숨겨놓은 장안’이 있다. 본부석 뒤쪽에 있는 ‘북한산성’이 그것이다. 유사시 도성이 함락되면 왕은 경복궁을 버리고 이곳에서 비상집무를 하게 된다. 성안 넓이도 약 200만 평(6.6km²)으로 여의도(89만 평)의 2.25배나 된다. 4대문으로 둘러싸인 한양도성 약 232만 평(7.66km²)에 비해서도 결코 좁지 않다.
북한산성 한 바퀴는 총 12.7km. 하지만 등산 코스는 산성을 우회하는 곳도 있으므로 13km가 넘는다. 산행 시간은 8시간 안팎. 산성은 약간 찌그러진 왕관 형태다. 크라운 관전면 삼각뿔이 바로 북쪽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다. 보통 북한산성 산행은 북한산성 입구(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704번 간선버스∼산성입구 하차)에서 시작한다. 방향은 시계 반대 방향. 왼쪽에 심장이 있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심장 안쪽으로 돌게 마련. 육상 트랙이 그 좋은 예다. 코스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대서문∼대남문의 의상능선과 대남문∼위문의 산성주능선, 그리고 북문∼대서문의 원효능선.
의상능선이 가장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작은 공룡능선’이라고도 할 정도로 바위길이 많다. 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시루봉)∼나월봉∼나한봉∼문수봉 등 7개의 암벽 봉우리를 차례로 넘는 맛이 쏠쏠하다. 초겨울 약간 차가워진 바위를 잡는 손맛도 짜릿하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의상-원효봉이 정겹다. 의상은 원효 보고 웃고, 원효는 의상 보고 웃는다. 출발지점인 대서문에선 왼쪽부터 원효봉 염초봉(영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용암봉이 차례로 보이다가, 의상봉 쪽으로 갈수록 인수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노적봉의 육중한 암벽이 발군이다.
위문∼북문 너무 위험해 출입통제깵 계곡방향 대동사로 돌아가야
산성 주능선은 호젓한 데이트 코스. 가끔 낙엽 깔린 숲길도 있다. 용암문∼위문 코스가 압권이다. 우뚝 솟은 노적봉이 갑자기 나타나고, 오른쪽엔 만경대가 서 있다. 두 돌기둥을 잇는 바위길이 우렁우렁하다. 노적봉의 뒤통수를 지나 오른쪽 만경대의 허리를 쇠 난간에 의지하여 돌아나간다. 왼쪽 밑은 천길만길 수직 암벽. 아슬아슬하고 발바닥이 간질간질하다. 위문∼북문 코스는 북한산성 계곡 쪽으로 방향을 틀어 ‘약수암∼대동사∼북문’으로 가야 한다. ‘위문∼백운대∼영취봉∼북문 코스’는 너무 위험해 통제구간이다. 인명사고도 잦다. 백운대까지 올랐을 땐(왕복 30분) 다시 위문으로 돌아 나와 약수암 쪽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북한산 바위들은 ‘단호한 침묵’으로 묵언정진을 하고 있다. 뼈만 남은 몸으로 눈을 감고 있다. 바람이 간질여도 꿈적 않는다. 새들이 똥을 누고 가도 말이 없다. 북한산은 미륵부처다. 미륵보살이다.
▼1711년 병자호란 직후 완공… 한양도성의 축소판▼
북한산성엔 15개 성문이 있다. 대서문, 대남문, 대동문, 북문, 대성문 등 5개의 큰 문과 가사당암문,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 보국문(동암문), 용암문, 위문(백운동암문), 서암문(시구문) 등 7개의 암문(暗門)이 있다.
암문은 ‘그늘 문’ 즉 비상출입문. 큰 문은 누각이 있고 출입구도 아치형이지만 암문은 누각이 없고 모양도 사각형이다. 큰 문 중에서도 대성문이 가장 크다. 그것은 경복궁에서 임금이 지름길로 산성에 오르는 문이기 때문.
대서문과 서암문 사이를 흐르는 북한산 계곡에는 수문을 쌓아 적이 못 들어오게 했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행궁을 이중으로 방어하기 위해 대서문 훨씬 안쪽에 내성과 중성문도 쌓았다. 그 옆 협곡에는 수문을 하나 더 만들었는데 흔적만 있다.
현재의 북한산성은 정묘 병자 두 호란 직후인 숙종 37년(1711년) 4월에 공사를 시작해 그해 10월에 완공했다. 성 안의 시설까지 완공하는 데는 2년이 더 걸려 1713년 가을에 비로소 끝났다.
북한산성은 한양도성의 축소판. 임금이 묵을 행궁과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터가 있고 지휘본부 장대(將臺)도 있었다. 남장대 북장대는 터만 있고 동장대는 최근에 복원했다. 당시 산성 안엔 사찰 12개, 우물 99곳, 저수지 26곳이 있었다. 이 중 터만 남은 중흥사는 김시습이 청년 시절 묵으며 백운대를 오르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태조 이성계는 산성 밖에 있는 진관사를 자주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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