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트레킹)/걷기 정보

부안 변산 ‘마실 길’ 걷기

박연서원 2009. 10. 21. 22:38

부안 변산 ‘마실 길’ 걷기
새만금전시관∼격포해수욕장

《채석강에는 시간이 층층으로 쌓여있다. 몇 길 높이로 쌓아놓은 헌책()같은 바위 틈새에서 옛이야기를 찾아 읽으며 바다는 흐느끼다 낄낄거린다. 그 소리가 바다 위에 물거품으로 하얗게 깔린다. 바닷가 모래알들은 그 책장에서 떨어져 나온 글자들이다. 바람은 그들을 짜 맞추느라고 부산하게 뛰어다닌다. 하루 두 번씩 생각난 듯 다시 와서 그 책장에 숨겨놓았던 지난날들을 들추던 바닷물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주춤주춤 수평선에게 끌려간다. 넘어가는 해는 황금빛 긴 꼬리로 바다 바닥을 번쩍번쩍 쓸고 있다. <김정희의 ‘격포에서’ 부분>》

전북 부안 변산은 바다와 들판 사이에 있다. 누에처럼 낮고 길게 엎드려 있다. 양쪽 옆구리가 모두 열고 닫힌다. 전동차 자동문 같다. 때론 왼쪽 문이 스르르 열리고, 때론 오른쪽 문이 덜커덩 열린다. 바깥쪽이 바다이고(외변산), 안쪽이 들(내변산)이다. 한쪽에선 파도가 어미 젖을 빠는 강아지들처럼 구물구물 달려들고, 그 반대편에선 곡식들이 우우우 자란다.

해안 절벽 바위는 잘게 썬 무채다. 시루떡이 켜켜이 겹쳐 있다. 수만 권의 책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바다는 떡을 먹으러, 혹은 책을 읽으러 우르르 몰려왔다가, 스르르 물러간다. 바닷물은 칙칙하다. 멸치 젓국물 같다. 쪽빛이나 푸른 물은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있다. 더 이상 하늘을 담지 못한다. 개펄은 쪼글쪼글하다. 늙은 어머니 젖가슴이다. ‘폐경기 맞은 여인처럼(최광임 시인)’ 붉은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게나 바지락들은 뻘 속에서 꼼지락거린다. 석기시대 사람들은 그곳의 조개들을 잡아먹고 살았다(대항리 패총). 소금밭을 일궜다. 거무튀튀한 밭에서 하얀 소금을 얻었다. 소금은 개펄이 육탈되어 남긴 사리다.

변산 안쪽 들판엔 기름진 논밭과 내소사 개암사가 있다. 절은 화장기 하나 없이 곱게 늙었다. 무명옷 차림의 농부들처럼 수수하다. 내소사 대웅전 단청은 무채색이다. 연꽃 창살무늬도 맨얼굴이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그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받침돌이 있는 남방식 고인돌 밑에선 돌칼 돌화살이 나왔다. 도대체 그 엄청난 바위(길이 6.4m 너비 5.12m 두께 0.69m)는 어디서 가져왔을까.

변산은 높지 않다. 기껏해야 해발 300∼500m대에서 머문다. 하지만 그 품에 바다와 들을 모두 품는다. 이 세상 온갖 어린 것들을 감싸 안는다. 바다와 들의 경계에서 꽃을 피운다. 산자락 밑에 생명을 키운다. 변산은 미륵보살이다.

전북 부안 변산 해안 따라 마실 길이 열렸다. 부안군과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모임’(이사장 신정일)은 21일 변산 ‘마실 길(약 100km 예상)’중 제1코스 개통에 맞춰 걷기축제를 갖는다. 길은 새만금전시관에서 격포해수욕장까지 이르는 18km. 해안백사장 길과 호젓한 숲길이 수시로 번갈아 나타난다. 모래바닥은 말랑말랑하다. 나뭇잎 숲길은 푹신하다. 모래밭은 맨발로 걷고, 참나무 숲길은 콧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마치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을 반반씩 섞어놓은 것 같다. 올레길보다 그늘숲이 많고, 둘레길에 없는 파도소리가 들린다. 짭조름한 바다냄새와 ‘쎄에∼’한 나뭇잎 냄새가 버무려져 콧속이 구수하다. 오르막이나 내리막도 심하지 않다.

길은 부안쪽 새만금방조제가 있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그곳에서 물막이 댐을 따라 33km를 거슬러 올라가면, 끝 지점에 군산이 있다. 새만금방조제는 올 12월에 전면 개방된다. 그때는 군산쪽 물막이 댐 33km를 거쳐 변산 마실 길까지 쭉 이어 걸을 수 있다. 바다를 지운 물막이 댐에서, 또 다른 길이 열리는 것이다.

모래사장이나 바닷가를 걷는 길은 약 25%. 나머지는 젊은 군경이 오가던 해안초소 길이다. 그곳을 지키던 군경들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모두 철수하고 지금은 잡초만 무성하다. 아직도 초소와 초소를 연결하는 삐삐선이 곳곳에 남아 있다. 벙커와 초소엔 거미줄이 어지럽다. 얼룩무늬 시멘트벽도 군데군데 무너져 내렸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철조망은 녹슨 채로 그대로 있다.

초소 길은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을 따라 이어졌다. 경치가 빼어난 곳엔 어김없이 초소나 벙커가 나타난다. 변산해수욕장-고사포해수욕장 해안초소 숲길은 발밑에 파도소리가 간지럽게 밟힌다. 인동초가 덩굴손으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 하얀 꽃을 피웠다. 소나무 참나무 숲이 무성하다. 한낮에도 그늘을 이뤄 제법 어둑하다. 산뽕나무의 까만 오디가 새콤달콤하다. 농가 재배 오디보다 작지만 맛은 강하다.

해안가 뾰족 바위 위에 묘 하나가 누워 있다. 도대체 저 바위 위엔 어떻게 올라가 산소를 썼을까. 망자는 말동무 하나 없이 얼마나 외로울까.

길섶엔 명아주 바랭이 미국산자리공 개망초가 지천이다. 보랏빛 엉겅퀴 꽃도 피었다. 피가 날 때 엉겅퀴 꽃을 짓이겨 바르면 금세 피가 ‘엉기면서’ 그친다. 그래서 이름도 엉겅퀴다. 푸른 꿀풀 꽃잎을 따서 혀끝에 대니 달콤하다. 벌들이 잉잉거리며 화를 낸다.

김보국 박사(41·전북발전연구원)는 “해안초소 길에 남아 있는 군 시설은 앞으로 국방부와 협의를 해야 하겠지만, 철거하기보다는 리모델링을 통해서 얼마든지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 길손들의 휴식처로 쓸 수 있고, 안내소나 전망대로도 안성맞춤이다. 커피나 음료를 공급하는 간이 휴게소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사포해수욕장을 지나면 해안사구가 나온다. 해안사구는 말 그대로 모래언덕.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그 밑엔 지하수를 담아둔다. 사구의 붉은 해당화 꽃이 거의 지고 있다. 붉은 입술 같다. 그 대신 연분홍 갯메꽃이 하나 둘 피고 있다. 순비기나무 갯완두 수송나물 갯쇠보리도 보인다. 한 달에 한 번 그믐날엔 고사포해수욕장∼하섬의 바닷길이 갈라진다.

적벽강 해안절벽은 수사자를 닮았다. 언뜻 보면 수사자가 엎드려 있는 것 같다. 붉은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수사자. 또 한 절벽은 수사자가 고개를 들고, 먼 곳을 한가롭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큰, 붉은 혓바닥을 가진 짐승(박미라 시인)’ 같기도 하다.

마실 길은 적벽강 아래 모래밭을 지나 격포까지 1.5km가 이어진다. 적벽강은 중국의 소동파(1036∼1101)가 노닐던 적벽강의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그 다음 닿는 곳이 1코스 끝 지점인 채석강이다. 채석강 역시 중국의 시선 이백(701∼762)이 강물 속의 달을 따려다가 빠져죽은 채석강과 닮은 곳. 바위가 뒤란 땔감처럼 켜켜로 쌓여 있다. 책으로 말하면 미국국회도서관 장서보다 많다.

‘또 한 페이지 철썩, 거대한 수평선 넘어오는/책 찍어내는 소리가 여전히 광활하다, 바다책/바다책, 바다책,/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작은 각다귀들’ <문인수의 ‘바다책, 채석강’ 부분>

서해 바다는 짠하다. 젓갈 냄새 가득하다. 그 해안 길은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뱃살이다. 늙은 아버지의 밭이랑 이맛살이다. 개펄은 주름지고 석탄 반죽처럼 질펀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서편제 가락이다. 바다는 아득하다. 바람은 축축하다.

서해 노을은 먹먹하다. 바다는 짐승처럼 운다. 붉은 노을을 치마폭에 싸안고 소리죽여 흐느낀다. 바위에 지악스럽게 달라붙은 따개비들도 밤에는 손을 놓고 엉엉 운다.

변산은 바다를 안는다. 자꾸만 머리를 부비며 달려드는 바다를 쓰다듬는다. 들판의 곡식들은 바다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 흐느낌을 들으며 익는다.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채석강의 책 읽는 소리를 듣고 깨우친다. 적벽강 수사자의 기개를 배운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변산 우반동, 허균-유형원 발자취 서린 곳▼

허균(1569∼1618)은 20여 년 관직생활 동안 유배 3번, 파직 6번을 당했다. 사명당 등 당시 스님들과 허물없이 지내는가 하면, 서자 출신들의 뒷바라지를 거리낌 없이 해줬다. 남녀 관계도 자유분방했다. 그는 부안을 좋아했다. 1601년 7월 부안 기생 매창(1573∼1610)을 처음 만난 게 결정적이었다. 1608년 가을 공주목사에서 파직된 뒤에도 곧 바로 변산 우반동에 내려와 매창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혁명을 꿈꿨다. 소설 ‘홍길동전’의 이상향 율도국 모델은 바로 변산 앞바다에 있는 섬 ‘위도’였다. 그는 매창에게 편지를 보내 ‘변산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도 했다.

허균이 죽은 35년 후인 1653년, 서울에 있던 반계 유형원(1622∼1673)이 우반동에 내려왔다. 그의 나이 서른하나. 그는 그곳에서 책 1만 권을 쌓아놓고, 죽을 때까지 오로지 글만 썼다. 실학사상의 금자탑 반계수록은 그렇게 태어났다.

1780년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소설 양반전에서 반계 유형원을 언급한다. 주인공 허생에게 누군가 ‘왜 벼슬을 하지 않느냐’고 묻자 허생은 대답한다. “군량을 조달할 만한 역량을 지닌 반계 유형원이라는 이도 산야에 들어가 초연하게 사는데…”

우반동(현 우동마을)은 변산 동남쪽의 유천도요지(고려자기 터) 인근이다. 산으로 빙 둘러싸였고 가운데가 들판이다. 앞은 곰소만 바다이다.

변산 마실 길은 우반동을 지난다. 전나무 숲길의 내소사, 백제부흥운동의 근거지 개암사와 울금산성도 거친다. 꽝꽝 소리 내며 타는 꽝꽝나무 군락지와 미선나무, 후박나무군락지, 고인돌군도 지난다. 부안군은 마실 길 100km 전 코스를 연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트래킹 정보|

▼교통

▲승용차=서해안고속도로→부안 나들목이나 줄포 나들목→30번 국도→부안→새만금전시관, 호남고속도로→장성 분기점→고창 분기점→줄포 나들목→30번 국도→부안→새만금전시관

▲고속버스=서울강남터미널 부안행

▼먹을거리


▲백합죽=계화회관(063-584-3075)

▲한식=당산마루(063-581-1626),옛맛촌가든(063-583-9941)

▲꽃게장백반=수풍회관(063-583-9966), 칠산꽃게장(063-581-3470)

▲바지락죽=원조바지락죽 (063-583-9763),

   풍차백합바지락큰집(063-583-3883)

▲젓갈백반=곰소궁(063-584-1588)

 

 

 

 

홍길동의 율도국이 보일락말락

 

서해 갯가 따라 걷는 변산시누대(해장죽) 길. 저 멀리 수평선에는 는개가 번져 아슴아슴하다.

바다는 반짝반짝 물비늘에 눈이 시리다. 짭조름한 바람이 살갗을 어루만진다. 사람들은

파도 소리를 즈려밟으며 걷는다. 발바닥이 간지럽다. 하늘은 바다에 잠겨 누워 있다.

부안=서영수 전문기자

 

조금만 더 가면 훌륭한 게 나올 거라는
믿기 싫지만, 그래도 던져버릴 수 없는 희망이
여기까지 우리를 데리고 온 것처럼
모항도 그렇게 가는 거야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너는 물어오겠지
아니, 몸에다 마음을 비벼 넣어 섞는 그런 것을
꼭 누가 시시콜콜 가르쳐 줘야 아나?

걱정하지 마, 모항이 보이는 길 위에 서기만 하면
이미 모항이 네 몸속에 들어와 있을 테니까

-안도현의 ‘모항 가는 길’에서

모항은 전북 부안 변산에 있다. 한자로 ‘茅項(모항)’은 ‘무성한띠 풀로 덮인 목덜미 모양의 마을’이란 뜻이다. 그만큼 한적하고 외진 어촌이었다. 오죽하면 ‘모항을 아는 것은 변산의 똥구멍까지 속속들이 다 안다는 뜻’(안도현 시인)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요즘 모항은 제법 커졌다. 관광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래도 아직은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모항이 봄비처럼 몸속에 촉촉이 젖어온다.

변산(邊山)은 ‘갓뫼’다. ‘갯가에 있는 산줄기’이다. 서해안을 따라 누에처럼 웅크리고 있다. 높이도 기껏해야 해발 300∼508m(의상봉)에서 머문다. 길쭉하고 야트막한 누에잔등이 편안하게 남북으로 엎드려 있다. 변산은 가르마처럼 서해바다와 부안들판을 가른다. 바다 쪽 변산이 외변산이고, 들 쪽 변산이 내변산이다.

햇살은 바다변산에서 소금을 일구고, 들판변산에서 나락을 키운다. 바다변산은 바로 칠산 앞바다를 말한다. 한때 조기 울음소리가 가득했던 곳이다. 바다여신 계양할미가 버선발로 돌아다녀도 물젖는 일이 없었다. 들판변산은 호남평야의 끝자락이다. 고인돌이 누워있고 고려청자를 구웠다. 저마다 고단한 하루의 일을 끝낸 뒤 당산나무 앞에서 천지신령께 제사를 지냈다.

부안의 신석정 시인(1907∼1974)은 산등성이에 올라 서해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오면 시가 흘러나왔다. 그의 시는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나갈 때 얻은 꿈 조각들’이었다. 그는 ‘무덤에 태산목을 심어 달라’고 유언했다. 태산목은 꽃과 잎이 큰 목련꽃 계통이다. 키가 훤칠한 시인을 닮았다.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나의 거룩한 일과이러니…’ -신석정의 ‘들길에서’ 부분

 

위로부터 내소사 대웅전, 모래사장 마실길, 시누대터널 마실길.

변산마실길 2∼4구간(41.9km)이 열렸다. 지난해 1구간(새만금전시관∼격포 18km)에 이어 계속 이어진다. 서해 갯가를 따라 걷는 짭조름한 길이다. 물이 들어오면 갯가 길로 걷고, 물이 빠지면 모래갯벌을 걷는다. 서해 중부 갯벌은 모래사장이 대부분이다. 전남 갯벌이 진흙 바닥인 것과 다르다. 변산마실길 2구간은 격포 채석강이 출발점이다.

채석강(彩石江)은 강이 아니다. 반질반질 영롱한 돌이 켜켜로 쌓여있는 해안절벽(1.5km)이다. 닭이봉(86m) 아랫도리를 감아 돈다. 서해 바닷물이 억만 년 어루만져 다져놓은 단단한 돌이다. 전 세계 70억 인구가 다 먹고도 남을 시루떡이다. 미국 의회도서관보다 훨씬 더 많은 수천만 권의 책이 쌓여있다.

채석강 절벽 아래 바윗돌은 칠흑처럼 검은색이다. 바닷물이 들락거리며 멸치젓갈의 잿빛으로 만들었다. 출렁이는 물결무늬도 뚜렷하다. 검은 돌은 흑진주처럼 반들반들하다. 먹을 너무 갈아 납작해진 벼룻돌 같다. 바닷물이 닿지 않는 윗부분은 바람에 삭아 회갈색이다. 겨우내 뒤란에 매달려 물기가 빠진 시래기 같다.

마실길은 젊은 군경이 오가던 해안초소길이 상당 부분 차지한다. 그곳을 지키던 군경들은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대부분 철수했다. 아직도 빈 벙커와 초소가 군데군데 남아있다. 얼룩무늬 시멘트벽이 빛이 바래 벗겨졌다. 초소길은 바다가 잘 보이는 곳을 따라 이어진다. 경치가 빼어난 곳엔 어김없이 초소나 벙커가 있다. 발밑에선 파도 소리가 간지럽게 밟힌다. 봄 햇살이 자글자글 기름이 자르르하다. 붉은 황토흙에 찰기가 넘쳐흐른다.

한낮, 저 멀리 수평선에 는개가 번져 아슴아슴하다. 어디가 바다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분명하게 금이 그어지지 않는다. 반짝반짝 물비늘에 눈이 시리다. 바람은 고슬고슬하다. 파도는 도담도담 해변 조약돌을 토닥인다. “싸락싸락” 사람들의 백사장 밟는 소리가 간지럽다. 낚싯배 한 척이 잔물결 장단에 어찔어찔 졸고 있다.

곰소만은 ‘만(灣)’이 아니라 ‘강(江)’ 같다. 강처럼 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언뜻 보면 영락없는 ‘벙벙한 강 하류’다. 마주보는 저쪽은 선운사가 있는 고창이다. 이쪽은 모항, 곰소, 줄포가 차례로 자리 잡고 있다. 곰소항은 곰처럼 생긴 두 개의 섬과 그 섬 앞바다 깊은 ‘소(沼)’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다. 속 깊은 사람을 ‘곰소 둠벙 속같이 깊다’고 하는 이유다. 곰소만에서 골짜기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우반동이다. 혁명아 허균(1569∼1618)이 즐겨 찾은 곳이다. 1601년 7월, 부안기생 매창(1573∼1610)은 허균과 처음 만나 시와 인생을 논했다. 허균은 이곳에서 홍길동전을 썼다. 소설 홍길동전의 이상향 율도국 모델은 바로 변산 앞바다에 있는 섬 ‘위도’였다. 1653년, 서울에 있던 반계 유형원(1622∼1673)도 이곳에 내려와 책 1만 권을 쌓아놓고, 죽을 때까지 오로지 글만 썼다.

서해바다는 일몰이 장관이다. 적벽강 채석강 봉수대 솔섬이 안성맞춤이다. 붉은 홍시가 바닷물에 후루룩 잠긴다. 바다도 붉고, 하늘도 붉고, 산도 붉고, 나도 붉다. 연분홍 진달래꽃이 발그레 달아오른다. 산벚꽃 하얀 머리가 살짝 물든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 왕벚꽃-겹매화 흐드러진 내소사

 

 

내소사는 내변산 꽃심에 자리 잡고 있다. 맨얼굴 절집이다. 수수하지만 정갈하다. 화장기 하나 없이 곱게 늙었다. 내소사 대웅전 단청은 무채색이다. 연꽃 창살무늬(사진)가 화려하면서도 소박하다. 세월의 더께가 새록새록 우러난다. 색깔이 지워져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났다. 연꽃 국화꽃 문양 하나하나가 가슴에 그대로 새겨진다.

꽃살 문짝은 정면 3칸에 모두 8개가 있다. 정면에서볼 때 오른쪽에서3, 6번째 문짝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문짝 아래는 입을 다문 봉오리 모양이지만, 문짝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점점 꽃이 벌어진다. 문짝 맨 위쪽 연꽃은 활짝 꽃잎을 열었다. 문짝 아래 주춧돌은 울퉁불퉁 자연석이다. 검은 연뿌리를 닮았다.

역시 비구니스님이 지은 절집답다. 도대체 633년 백제무왕 때 이 절집을 지은 혜구두타 스님은 어떤 분일까. 현재의 대웅전은 1633년(인조 11년)에 다시 지은 것이지만 혜구두타 스님의 안목은 그대로 배어있다.

내소사 대웅전은 쇠냄새가 나지 않는다. 못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나무를 하나하나 깎고 짜맞췄다. 법당 안은 그대로 극락세상이다. 빛바랜 단청이 그윽하고 웅숭깊다. 관음보살 화신인 관음조가 붓을 입에 물고 그렸다던가. 용과 봉황이 날고, 온갖 악기가 연주를 하고 있다. 용이 입에 물고기와 여의주를 물고 막 하늘에 오르고 있다. 극락조도 보인다.

내소사 뒤엔 관음봉(433m)이 솟아있다. 그 관음봉을 그대로 본떠 지은 것이 설선당이다. 설선당 앞마당에서보면, 두 귀가 봉긋이 솟은 것이 영락없는 관음봉이다. 설선당과 관음봉이 그대로 오버랩된다. 설선당의 편액 글씨도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쓴 것이다. 역시 관음봉처럼 날아갈 듯하다. 내소사 뒤 언덕배기엔 청련암이 있다. 인촌 김성수 선생(1891∼1955)과 고하 송진우 선생(1889∼1945)이 밤새워 나라를 걱정하던 곳이다.

내소사(來蘇寺)의 ‘내소’는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다음 세상은 곧 ‘미륵세상’이다. 고통 없이 누구나 평화롭게 잘사는 세상. 내소사 대웅전이 바로 그런 곳인 셈이다. 요즘 내소사는 왕벚꽃이 한창이다. 대웅전 앞 홍매화꽃은 시들었지만 아직 기품이 살아있다. 함박눈 같은 흰 벚꽃과 붉디붉은 겹매화꽃이 황홀하다. 천년 가까운 느티나무도 연초록 싹을 뒤늦게 내밀고 있다.


■ 천연기념물 호랑가시나무 군락

 

 

‘급하기도 하셔라/누가 그리 재촉했나요/반겨줄 임도 없고/차가운 눈, 비, 바람 저리 거세거늘/행여/그 고운 자태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살가운 봄바람은, 아직/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어쩌자고 이리 불쑥 오셨는지요’

―이승철의 ‘변산 바람꽃’에서

변산은 식물의 보물섬이다. 호랑가시나무(천연기념물 제122호·사진), 후박나무(천연기념물 123호), 꽝꽝나무(천연기념물 124호), 미선나무(천연기념물 370호) 군락지가 있다. 난대성 호랑가시나무, 후박나무, 꽝꽝나무는 변산이 북방한계선이고, 미선나무는 변산이 남방한계선이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자생하는 토종이다.

호랑가시나무 군락지는 마실길 도중인 모항 뒷자락 갓길 옆에 있다. 후박나무는 적벽강 바닷가에 있다. 꽝꽝나무는 불에 탈 때 꽝꽝 소리 내며 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호랑가시나무와 사촌쯤 된다. 같은 감탕나뭇과인 것이다. 군락지가 미선나무와 같은 지역이다. 변산면 중계리에 200여 그루가 있다. 마실길 3구간에서 가깝다. ‘미선(尾扇)’은 열매가 둥근 부채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개나리처럼 이른 봄에 잎보다 흰 꽃이 먼저 핀다. 양지바른 기슭에 요즘 한창이다.

변산 호랑가시나무 군락지엔 약 700그루가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수가 따로 있다. 군락지엔 수나무가 대부분이다. 붉은 열매를 맺는 암나무는 드물다. 가을에 어쩌다 달린 열매도 새들이 득달같이 먹어 치운다. 호랑가시나무 잎은 타원형의 육각형이다. 매끈하고 윤이 난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발톱을 닮았다. 잎 가장자리에 억센 가시가 달려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나 카드 장식물로 쓰인다. 잎과 줄기를 둥글게 엮은 것은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상징한다. 붉은 열매는 예수의 붉은 핏방울이다. 나무껍질의 쓴맛은 예수의 고난을 뜻한다. 티티새(지빠귀) 로빈은 부리로 예수 가시면류관의 가시를 파먹었다. 이마를 파고드는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티티새는 그 가시에 찔려 죽는다. 그래서일까. 요즘도 개똥지빠귀가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가장 좋아한다.


Travel Info

▽승용차
해안고속도로→부안나들목이나 줄포나들목→국도 30호선→부안→새만금전시관·호남고속도로→ 장성분기점→고창분기점→줄포나들목→국도 30호선→부안→새만금전시관

▽버스
서울강남터미널 부안행

▼주변 먹을거리
갑오징어 먹물죽(오죽) 격포 해변촌(063-581-5740)

횟집 격포 현대횟집(063-583-9944)
백합죽 계화회관(063-584-3075)

한식 당산마루(063-581-1626), 옛맛촌가든(063-583-9941)
꽃게장백반 수풍회관(063-583-9966), 칠산꽃게장(063-581-3470)
바지락죽 원조바지락죽(063-583-9763), 풍차백합바지락큰집(063-583-3883)

젓갈백반 곰소궁(063-584-1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