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뼈속까지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의 딸 입니다."
Chloe Kim
(클로이 킴/ 미국팀 은메달리스트/ 한인2세 26세/롱비치 켈리포니아)
2026 밀라노-담페쵸 동계올림픽 은메달
2022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8 평창 올림픽 금메달
슈퍼파이프/ 8개의 금메달과 최초 기록 갱신 보유자


클로이킴


최가은
방금 믹스트존을 빠져나오는데, 기자 한 명이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클로이, 우리 냉정하게 따져봅시다. 방금 최가온 선수가 목에 건 저 금메달, 솔직히 우린 이걸 충격적인 이변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아까 그 잔혹한 추락 봤잖아요? 의학적으로 보면 거기서 끝이었어야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금메달이냐고요. 이건 그저 운이 좋았던 거 아닙니까?”
그 기자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1차 시기에서 실려 나갈 뻔했던 선수가 갑자기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건, 서구의 합리적인 데이터로는 오류이거나 요행일 뿐이니까요.
저는 그 기자의 말을 끊었습니다. 아주 차분하게, 하지만 뼈가 있는 한 마디를 던졌죠.
“이봐요. 당신들의 슈퍼컴퓨터는 중력과 회전수는 계산할 줄 알지 몰라도, 한국 사람 핏속에 흐르는 오기와 독기는 계산 못 하잖아요.”
그 기자가 무슨 말인지 몰라 멍하니 있길래, 제가 웃으며 쐐기를 박았습니다.
“최가온 선수가 금메달을 딸 수밖에 없었던 이유요? 간단합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잔혹한 추락이 최가온 선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선수를 각성시켰으니까요. 보통 사람은 넘어지면 아파서 뒤로 물러납니다. 그게 데이터가 말하는 상식이죠.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은 다릅니다. 벼랑 끝에 몰리고, 피가 나고, 뼈가 아파야 비로소 진짜 힘이 나옵니다.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간다는 그 오기. 최가온 선수는 오늘 무릎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 덕분에 두려움을 잊었고, 그 덕분에 전 세계를 발 아래 꿇린 겁니다.”
여러분, 하프파이프가 아름다워 보이시나요? 저희끼리는 이걸 이렇게 부릅니다. 설원 위의 격투기. 7미터 얼음벽 위에서 떨어지면 바닥은 콘크리트보다 단단합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수많은 동료가 목이 꺾이고 들것에 실려 나갔죠.
오늘 1차 시기, 최가온 선수가 파이프 턱에 걸려 둔탁한 소리를 내며 곤두박질쳤을 때 경기장에 흘렀던 그 숨 막히는 모습을 기억하시나요? 저조차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들것이 들어오고 의료진이 달려갈 때, 모두가 생각했습니다. 최가온 선수의 올림픽은 끝났다. 그건 부상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생존의 문제였으니까요.
하지만 최가온 선수는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순간 저는 최가온 선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데, 그 아이의 눈빛만은 오히려 1차 시기 전보다 더 또렷하고 날카로웠거든요. 보통 크게 다친 선수의 눈에는 공포가 서립니다. 그런데 최가온 선수의 눈에는 분노에 가까운 집중력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걸 본 순간, 저는 직감했어요. 이 아이가 무언가를 해낼 거라고.
3차 시기 출발 대기 중, 제가 최가온 선수에게 물었죠. “무섭지 않니?” 그러자 17살 소녀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무 세게 넘어지니까, 두려움보다는 빨리 아픈 게 나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그 순간,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공포를 씹어먹고 통증과 맞서 싸우겠다는 그 눈빛. 그리고 최가온 선수가 한 번 깊게 숨을 내쉬더니 파이프 안으로 드롭인했습니다. 그 순간, 경기장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코치석에서 숨을 멈췄습니다. 그 부상당한 다리로 어떻게 저런 높이를 찍는 건지, 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중에서의 축이 완벽했습니다. 흔들림이 없었어요. 보통 컨디션이 최상인 선수도 저 정도 안정감을 보여주기 어렵거든요. 그런데 무릎이 찢어진 소녀가 하늘 위에서 정확하게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파이프 반대편으로 넘어갈 때마다 높이는 점점 더 올라갔습니다.
마지막 히트, 최가온 선수가 파이프 림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순간, 경기장 전체가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그 엄청난 높이는 이번 대회 전체 출전 선수 중 가장 높은 위치였습니다.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어요. 착지가 내려오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보드가 설면에 완벽하게 박혔습니다. 흔들림 없이, 바늘 하나 꽂듯이. 착지 충격이 부상당한 무릎을 관통했을 텐데, 최가온 선수는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표정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순간 경기장이 폭발했습니다. 관중석에서 비명에 가까운 환호가 터져 나왔고, 다른 나라 선수들조차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미국 대표팀 코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저도 동의합니다. 저건 기술이 아니었어요. 영혼을 갈아 넣은 한 편의 예술이었습니다.
결국 최가온 선수는 90.25점이라는 기적의 점수를 찍으며 저를 제치고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습니다. 점수가 전광판에 뜨는 순간, 최가온 선수 본인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어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온몸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90점 대라는 건 심판 전원이 사실상 흠잡을 곳이 없다고 인정한 겁니다. 부상 직후의 런에서 나온 점수라는 걸 생각하면, 이건 올림픽 하프파이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단일 런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최가온 선수는 제가 평창에서 세웠던 최연소 금메달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제 기록이 깨져서 속상하냐고요? 천만에요. 같은 조국의 피가 흐르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선수가 제 기록을 넘어서 전 세계의 역사를 새로 쓴 건데, 이보다 더 짜릿하고 감격스러운 엔딩이 어디 있겠습니까.
최가온 선수가 금메달을 확정 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허공을 향해 “엄마” 하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셨죠? 그동안 아빠와 코치님과 흘린 땀방울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더군요. 그 눈물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제 부모님 생각이 났습니다. 저 역시 4살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처음 보드를 탔습니다. 아빠는 저의 재능을 믿고 산으로 이끌어 주신 첫 번째 스승이셨고, 엄마는 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저에게 올림픽은 개인의 도전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키운 꿈을 꽃피우는 무대였습니다.
최가온 선수의 저 눈물은 자신을 믿어준 부모님께 바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훈장입니다.
비록 저는 오늘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제 부모님은 아쉬워하기보다 “장하다, 한국에서 대형 스타가 탄생했구나!” 하며 누구보다 기뻐하고 계실 겁니다. 왜냐고요? 저는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네 뿌리는 한국이다. 한국 사람이 잘되는 것을 네 일처럼 기뻐해라.” 저는 뼈속까지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의 딸입니다.
기자는 이걸 이변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건 위기에서 더 빛나는, 한국인의 필연이었다고.
마지막으로 최가온 선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오늘 최가온 선수는 모두에게 꿈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TV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을 수많은 어린 선수들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게 최가온 선수가 오늘 세상에 남긴 가장 큰 선물입니다.
아픈 무릎 얼른 회복하길 바라며, 그리고 저의 고향과 같은 대한민국을 사랑하며 저에게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신 한국 팬 여러분께 깊은 감사함을 전합니다.
사진/최가온. 클로이 킴 - 한국의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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