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천 복더위 극복에 민어를 따라올 자 그 누구냐?
평소 아재개그랍시고 아주 추운 날에는 “날씨가 많이 시원하다!”고 하고 그 반대일 경우엔 “날씨가 참 따뜻하다!”라며 농을 하면 친구들은 피식 웃으면서도 잠시나마 추위나 더위를 잊곤 합니다.
올해 같은 유난한 무더위도 분명 이 달 말이면 꺾일 것이고, 그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 제목에 빗대어 ‘그해 여름은 따뜻했네’ 하는 추억거리가 되겠지요.
숨쉬기도 버거운 복날 염천에 저만의 여름나기 비법을 굳이 말한다면, 여름 생선 3종 세트 정복입니다.
대형 병어(덕자)를 시작으로 갯장어(하모) 그리고 민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세 생선은 가격이 좀 비쌉니다. 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어종이 아닌 것이지요.
고약하게도 민어는 백성 민(民)에 물고기 어(魚)를 씁니다.
원래는 면어(鮸魚)라 불렀다는데 면어의 중국 발음이 민어와 유사하여 그리 바뀌었다는 설도 있군요. 하지만 듣는 백성(서민)들에겐 자존심 상하는 말입니다.
일반 백성들은 아예 접근도 하지 말라는 반어법일 수도 있고, 먹지는 말고 이름만 즐기라는 말도 되겠고요.
옛 양반들의 글에도 심심치 않게 민어가 등장합니다.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는 ‘큰 것은 길이가 4, 5자이다. 비늘과 입이 크고 맛이 담담하고 좋다.
날 것이나 익힌 것이나 모두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부레로는 아교를 만든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나옵니다. ‘남해에서 나는데 맛이 좋고 독이 없다. 부레로는 풀을 만들 수 있다. 파상풍을 치료한다.’
압권은 추사 김정희 선생입니다. 팔불식(八不食)을 외치며 섭생에 철저했던 공자님을 흠모해서일까요?
유배 중에도 음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합니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민어를 연하고 무름한 것으로 가려 사서 보내게 하십시오. 내려온 것은 살이 썩어 먹을 길이 없습니다.’하면서, 진장도 보내고 아울러 좋은 겨자와 어란까지 부탁을 합니다, 이 정도면 유배라기보다 조금 애로사항이 있는 휴양에 가깝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민어가 역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때는 고려 말인 1388년 여름, 조정의 명을 받아 요동을 정벌하러 가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합니다.
하지만 날이 날인지라 활을 만드는데 쓰인 민어부레 풀인 아교가 더위에 녹아 전투에 사용하기가 어렵게 되자 승산이 없음을 판단한 이성계가 회군을 결정하지요.
만약 민어부레 풀 성능이 좋았더라면 혹은 계절이 여름만 아니었다면 조선의 개국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예로부터 여름 보양식으로 ‘민어찜이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삼품’이라 하였으나 최근엔 보신탕 열풍이 많이 사그라진 듯 하고, 도미요리를 먹는 경우도 흔치 않습니다.
그 자리를 삼계탕이나 백숙이 차지한 느낌이고, 덕자 병어와 갯장어 요리도 끼어들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여름 생선 3종 세트에는 필자 나름의 순서가 있습니다.
6월이 시작되어 에어컨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병어를 찾기 시작하는데, 이즈음의 병어에는 고소한 버터 맛을 느낄 수 있지요.
초복 전후부터는 갯장어 회와 샤브샤브로 시나브로 옮겨 가고, 말복이 다가오면 민어를 찾기 시작하지만 이때부터 민어 값이 다락처럼 오릅니다.
차라리 말복이 지난 뒤부터 8월말까지 민어를 찾는다면 일반 백성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호사가 됩니다.
말 그대로 민어(民魚)가 되는 시기인데, 경매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는 식당을 찾아야 하니 발품이 좀 필요하겠지요.
마침 며칠 전, 민어탕을 먹으러 갔는데 마침 옆자리에 머리는 짧고 팔뚝엔 무늬가 요란한 손님들이 앉았습니다.
탕은 냄비가 넘치도록 팔팔 끓는데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등 자락엔 식은땀이 흐릅니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복날 더위 이기는 데 민어를 따라올 음식이 없어 보입니다.
산하복집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만석로 203
031-242-9748
민어회 (중) 60,000원
노들강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14길 21
02-517-6044
민어회 (중) 80,000원
경남횟집
인천 중구 우현로49번길 25
032-766-2388
민어회 (소) 8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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