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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가봐야 할 "정감록" 십승지 마을

박연서원 2017. 8. 8. 07:29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정감록" 십승지 마을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 이래 민간에 널리 유포되어 내려온 대표적인 예언서 '정감록'이 있다. 

이 예언서는  40~60권에 이를 정도로 많은 것이 특징인데, 저자나 성립시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 뿐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고, 반 왕조적인 내용이 많아 조선시대에는 주로 금서에 속했다. 하지만 이런 예언서는 민간에 은밀히 전승되어 조선시대 민간 사회를 평가하는데 꼭 필요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렇게 전해 내려오는 ‘정감록’에는 '십승지'라고 하는 땅이 기록되어 있는데, 십승지는 전쟁이나 천재가 일어나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열 곳의 피난처를 의미한다.

당시 왜구나 오랑캐의 잦은 침략으로 지쳐있던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십승지의 존재는 살고 싶은 명소였고, 실제로 십승지를 찾아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근래에는 6. 25 전쟁 때 북쪽에 살던 이들이 십승지를 찾아와 정감록촌을 이루고 살기 시작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이들도 있다. 현재 이 십승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지로 꼽히고 있다. '길지지'에 나타난 십승지를 만나보자.




1.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마을)


"풍기 차암 금계촌으로, 소백산 두 물길 사이다"


경북 영주의 풍기는 십승지 중 1번지라고 불린다. 그 중에서도 금계(금이 박힌 닭 모습)바위가  있는 금계리는 안좋은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살기(殺氣)가 없어서 사람 살기에 가장 좋다'고 한 소백산의 줄기에 위치한 이 금계마을은 유난히 정감록촌이 잘 형성되어 있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 장승을 세워 '정감록 십승지 마을'임을 알리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는 한국전쟁 중에 정감록 책 하나만 믿고 이북에서 피란온 이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이제 노인이 된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인민군이 소백산 죽령을 넘지 못해 풍기 주민들은 전쟁통에도 평온하게 지냈다고 한다. 

경북 영주 근방에 함께 다녀오면 좋을 곳으로 우선 소백산이 있다. 충북 단양, 강원 영월, 봉화 등에 걸쳐 위치한 소백산 국립공원은 사시사철 언제 찾아도 좋은 산이다.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인 무량수전이 있는 부석사도 있다. 그 외에도 죽령 옛길, 희방사, 소수서원과 선비촌, 무섬마을 등은 영주 풍기와 함께 다녀가면 좋은 곳이다. 특산물로는 풍기인삼과 영주사과가 유명하며 영주한우도 부드러운 육질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외부에서 정착한 이들이 생업을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 풍기 인견(천연 섬유)도 유명하다.

2.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화산 소령 고기로 청양현이 있는데, 봉화 동쪽 마을로 넘어 들어간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일가가 은둔했던 땅으로 유명한 경북 봉화 춘양에 위치한 도심촌은 이순신 장군이 은둔했다는 설도 있는 곳이다.
임란 당시 선조에 의해 극형을 당할 뻔하기도 했던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승리한 후 정치적 역풍을 우려해 전사한 것으로 위장한 다음 이 곳에 은둔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설일 뿐이고, 실제로는 서애 류성용 선생의 친형인 겸암 류운용 선생이 난리 중에 어머님을 모시고 은둔한 곳이라고 한다. 태백산 아래에 자리잡은 도심촌 주위로는 청량산 도립공원, 청옥산 자연휴양림이 자리 잡고 있어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2015년 동양 최대의 국립 백두대간 수목원이 준공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통 한옥 탐방을 할 수 있는 닭실마을, 계서당도 근처에 위치해 있다.

3. 충청남도 보은 속리산


"보은 속리산 사증항 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속리산에는 은신처로 숨을만한 자리가 많다.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도망왔다가 홍건적 소탕 뒤에 연이어 일어난 반란 때문에 환도하지 못하고 보은에 몸을 숨겼다고 한다. 

속리산 깊이 자리 잡은 법주사에는 고려 공민왕 뿐 아니라 세조도 거쳐간 사찰로 유명하다. 경북 영주가 사람 살기에 좋다고 했던 이중환의 택리지는 속리산 일대도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쓰고 있는데, 실제로 이곳에도 십승지를 찾아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구병산에는 6.25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내려온 주민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 보은에는 세조가 벼슬을 내린 소나무로 유명한 정이품송이 600년 넘게 살고 있다. 속리산, 구병산, 법주사와 함께 꼭 들려봐야 할 곳이다. 

4. 전라북도 남원 운봉


"남원 운봉 동점촌 부근 100여리이다."


남원 운봉 지역은 일대가 고산 분지로 이루어져 있어서 피신처로 삼기에 적합하다. 한국지명총람에는 한 여인이 이성계를 운봉의 황산으로 안내해 왜장 아지발도를 죽이고 왜적을 물리치게 했다고 한다. 
이성계는 그 여인을 산신령이라 생각해 여상(女像)을 새겼고, 그 고개를 산신령이 사는 고개라 하여 '여원치(女院峙)'라 부르고 있다. 

이성계가 적장 아지발도를 무찌른 전투가 바로 고려사에 길이 남은 '황산대첩'인데, 이를 기념하여 황산대첩비를 세웠다. 또, 남원은 판소리의 양대 산맥인 동편제의 태자리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의 하나인 흥부전의 배경이 된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이 있다. 이 곳은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발복지(發福地)라 한다.
춘향전의 주인공인 춘향과 이도령이 처음 만난 광한루원도 남원에 있다. 이러한 판소리 소재의 발원지가 된 것은 십승지로 알려져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 살았다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원에는 앞서 말한 광한루와 춘향테마파크, 황산대첩비, 지리산 일대와 지리산 허브밸리 등을 방문해 보면 좋다. 가왕 송흥록 선생의 생가, 최명하 작가의 소설 '혼불'을 기념하기 위한 혼불문학관 등도 있다. 

5. 경상북도 예천 금당실


"예천 금당실에는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병란이 미치지 않지만 임금의 수레가 다다르면 그렇지 못하다."


조선말기 이유인은 명성황후의 단골무당으로 신임을 받았던 신령군의 치맛바람으로 벼락출세를 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한제국 법부대신이었던 이유인은 어느날 갑자기 금당실에 찾아와 99칸 행궁을 지었다. 금당실 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이유인 대감이 명성황후의 도피처로 금당실로 결정하고 행궁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정감록에 의하면 십승지의 조건으로 '임금의 수레가 닿으면 안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그 금기가 어겨질 뻔한 것이다. 금당실은 실제로는 별다른 전란의 화를 입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은 이를 십승지 마을로써의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조선의 도읍 후보지로 거론됐을 만큼 명당으로 알려진 금당실 마을이 금당(金塘)인 것은 마을 지형이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택들에 대한 복원공사가 잘 되어 있어서 생활문화체험마을로 선정된 금당실 전통마을은 한옥탐방 여행을 하기에 적격이다. 주위에는 학가산 자연휴양림, 예천 용문사, 예천 온천, 회룡포 등 가볼 만한 명소가 많다.

6. 공주 계룡산


"유구와 마곡의 두 물길 사이 둘레가 200리나 되므로 피란할 만 하다"


마곡사는 주변 산세가 겹겹이 에워싸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로 꼽혔다.
백범 김구 선생과 매월당 김시습이 이 곳에 은신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격분하여 일본 장교를 죽이고 이곳 마곡사까지 내려와 은신했다. 약 3년간 숨어지내던 김구는 이후 조국 광복 운동을 하게 된다. 또, 김시습은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자 이곳에 은신했다. 세조는 김시습에게 벼슬을 내리고자 이 곳 마곡사까지 찾아왔지만 그를 찾지 못했다. 마곡사 영산전의 현판은 이 때 세조가 남긴 것이라고 한다. 다른 십승지처럼 이 곳도 나라의 난리가 있을 때마다 십승지를 찾아온 사람들로 정감록촌을 이루었다. 1800년대 이후에는 전국의 유생들이 이 곳으로 몰려와 자손을 보존하려 했다. 한국전쟁 때는 이북 주민들도 많이 모여들었다

7. 강원도 영월 정동상류


"영월 정동쪽 상류는 난리를 피해 몸을 감출만하나, 수염이 없는 자가 먼저 들어가면 그렇지 못하다"


영월의 십승지 역시도 한국전쟁 때 이북 주민들이 많이 몰려왔다. 기묘사화 때 중종에게 숙청을 당한 조광조의 후손들도 영월의 미사리에 숨어들었다고 한다. 영월은 또 김삿갓면으로 유명하다. 방랑시인 김삿갓의 할아버지가 홍경래의 난에 휩쓸리면서 멸문지화를 당한 김삿갓은 어머니와 함께 간신히 이 곳 영월땅으로 숨어들었다. 방랑을 하던 김삿갓은 죽어서 다시 고향 땅에 묻혔다고 한다. 영월에는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어린 단종이 유배왔던 청령포와 단종의 능 장릉이 있고, 한반도면 옹정리의 한반도지형이 있다. 

8.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


"무주 무봉산 북쪽 동방 상동으로 피란 못할 곳이 없다"


오지의 대명사로 불렸던 '무주구천동' 이웃에 있는 무풍은 덕유산 직전에 있는 대덕산이 감싸 안고 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무풍을 복지(福地)'라고 했다. 또, 택리지에 '충청, 전라, 경상 3도가 마주친 곳'에 있는 덕유산이 가까이에 있다. 그 중 '나제통문은 신라와 백제가 치열한 영토다툼을 벌이던 곳'으로 '신라 사람이자 전라도 사람'으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전라도 사람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지리적인 요인으로 무풍에는 고종과 명성황후가 피신할 곳으로 99칸짜리 별궁 '명례궁'을 지었었고 지금은 터가 남아있다. 
을미사변으로 갑작스럽게 명성황후가 시해되어 이 곳으로 피신하지는 못했다.

9.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부안 변산은 허균이 은거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거처한 곳은 부안 변산 우반동 골짜기에 있는 정사암이었다. 이 곳에서 허균은 '홍길동전'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조선 최고의 여류문인으로 꼽히는 이매창을 만나게 되는데 둘은 시를 통해 정신적인 교감을 하며 각별한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매창이 죽은 후 그는 그녀를 위해 시를 남기기도 했다. 

10.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


"합천 가야산 만수봉으로 그 둘레가 200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 
동북쪽 정선현 상원산 계룡봉 역시 난을 피할 만하다."


만수봉은 '장수하는 마을'에 붙는 지명이다. 정감록에는 합천 가야 만수동이라고 쓰고 있지만 현재는 없는 지명이다. 유추해서 그 지역을 찾아내야 하는데 풍수지리학적으로 볼 때 해인사에서 바라보이는 맞은편 돼지골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가야산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있다. 반란을 일으킨 황소를 글로써 격퇴한 '토황소격문'으로 당나라에서 더 유명해진 인물이다. 후에 벼슬을 버리고 해인사 근처 홍류동 계곡으로 들어왔다. 해인사는 가야산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피신처다. 한국전쟁의 위기도 무사히 넘긴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에 있는 빨치산을 몰아낼 때 폭탄을 쓰지 않고 기관총을 사용해 대장경의 파괴를 막았다고 한다.

21세기에 십승지는 '역사를 느끼며 쉬어갈 수 있는 곳'

정감록에서 말하고 있는 십승지는 하나 같이 깊은 산 속에 자리잡아 쉽게 접근할 수 없고,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자급자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들이다. 이제 21세기에 십승지는 더 이상 은신이나 도피처로써의 장소보다는 역사의 장소를 보며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울산타임즈 편집인 정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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