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in Concerto No.1 & No.2
프로코피에프 / 바이올린 협주곡 1번 & 2번
Sergei Prokofiev, 1891∼1953
Violin Concerto No.1 in D major, Op.19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1. Andantino
2. Scherzo-Vivacissimo
3. Moderato
Hilary Hahn, violin
RTVE Symphony Orchestra(스페인방송교향악단)
Live recording. Madrid
1. Andantino 00:00
2. Scherzo-Vivacissimo 10:09
3. Moderato 14:06
Sarah Chang, violin
Simon Rattle, cond.
Berliner Philharmoniker
1악장 Andantino-Andante Assai
Vadim Repin, violin
Valeriy Gergiev,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2악장 Scherzo-Vivacissimo
Vadim Repin, violin
Valeriy Gergiev,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3악장 Moderato-Andante
Vadim Repin, violin
Valeriy Gergiev,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제1번 라장조 작품19는 1917년(26세)에 페테르그라드 음악원의 바이얼리니스트 파울 호찬스키(Paul Kochansky)교수의 협조를 받으면서 작곡되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18년에 조국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기 때문에 초연은 6년이나 늦추어 1923년 파리에서 비로소 이루어졌다.
'고전적 교향곡' 으로 불려지는 교향곡 제1번과 비슷한 시기에 작곡된 이 협주곡 역시 전형적인 고전적 양식에 의해서 작곡되었다. 따라서 대중적 친화력이라는 측면에서 이 협주곡은 아주 유리한 작품이고, 역시 연주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독주자에게는 거의 모험적일 만큼 뛰어난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바이올린으로 표현이 가능한 거의 모든 기교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뛰어난 선율성을 유지하고 있다.
네 개의 기본선을 주축으로 한 균형적인 작품
바이올린 협주곡 제 1번 D장조는 그가 20대 청년이었을 때 쓴 곡으로 ‘무서운 아이’라 불리던 젊은 작곡가답게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당시 ‘그로테스크’하다고 평가되었던 이 작품은 오늘날 더 이상 그로테스크하지 않다. 오히려 신선하고 서정적이며 매력이 넘치는 훌륭한 작품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이 협주곡에 ‘작품 발전에 네 개의 기본선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고전적인 선, 현대적 경향, 토카타와 서정적인 선이다.
그의 말대로 이 바이올린 협주곡엔 이 네 가지로 압축될 수 있는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다.
그래서 고전적이면서 현대적이고, 논리적이며 엄격한 토카타풍의 화성 진행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서정적인 선율까지 갖춘 지극히 균형잡힌 작품이다.
이 곡은 1917년에 작곡되었지만 그후 6년 동안 발표되지 않았다. 이 작품이 완성된 직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러시아는 당분간 음악이 필요없다’고 판단한 프로코피에프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처음엔 몇 달 안에 귀국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1933년까지 그는 고국을 떠나 있게 되었다.
그 사이에 이 곡은 1923년 10월 파리의 쿠세비츠키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는데, 당시 평론가들은 둘로 갈라져 이 곡을 극찬하기도, 악의 있는 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이 작품에 반한 헝가리 출신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제프 시게티가 이 곡을 세계 각지에서 연주하게 되자 사람들의 반응 또한 달라졌다. 프로코피에프는 시게티를 ‘내 협주곡의 최고의 이해자’라 했고, 이 곡을 매개로 두 사람은 돈독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Violin Concerto No2 in G minor, Op.63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Basil Cameron,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전곡 연속듣기
1. Allegro Moderato (06:21)
2. Andante assai (10:51)
3. Allegro ben marcato (09:35)
전곡 연속듣기
Janine Jansen, violin
Mark Elder, cond.
Radio Philharmonic Orchestra
1악장 (Allegro Moderato)
Basil Cameron,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Janine Jansen, violin
Mark Elder, cond.
Radio Philharmonic Orchestra
2악장 (Andante assai)
Basil Cameron,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3악장 (Allegro, ben Marcato)
Basil Cameron, cond.
London Symphony Orchestra
Alda Dizdari, violin
Ian Hobson, cond.
Albanian Radio-Television Symphony Orchestra
제2번 사장조 작품63도 풍요로운 선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제1번과 흡사한 작품이다. 1935년의 작품이며 원곡(原曲)은 바이얼린 소나타이다. 프로코피에프는 이 작품을 완성한 이듬해에 다시 조국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이 작품엔 작곡가가 겪은 격변의 시대가 반영되어 있다. '양식의 단순화'가 그것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대단히 열정적이고 로맨틱하다.
특히 제1악장과 2악장이 그런 성격인데 발레 음악인 <로미오와 줄리엣>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나 제3악장은 매우 리드미컬한 악곡이어서 근대 작곡가로서의 프로코피에프의 개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은, 1번의 날카로운 모더니즘에 비해 온화하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특히 2악장(Andante Assai)은 다른 악장에 비해 무척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른다. 반면에 3악장은 리드미컬하여, 그의 개성이 잘 나타나 있다. 오이스트라흐의 따뜻함에 비해, 코간(1924~1982)이 가진 음색은 서늘함이다. 비브라토는 순수했고 음량은 컸지만, 뜨겁다기보다는 오히려 차갑게 빛나며 은은하다.
Segey Prokofief(Sergej Sergejewitsch Prokofjew), 1891∼1953
러시아의 작곡가. 예카테리노현 손초프카(현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출생. 아버지는 유대인 대지주이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과 친숙해져 5세 때 《인도풍(風)의 갤럽》을, 9세 때 피아노반주가 딸린 오페라 《거인》을 작곡하였다.
1904년 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 입학, A.K.리아도프, A.N.체레프닌, N.A.림스키코르사코프 등에게 사사하여 작곡·음악이론·피아노·지휘 등을 배우고 1914년에 졸업하였다. 이 사이에도 《제1피아노협주곡》을 비롯하여 많은 곡을 작곡하였으며 또 1908년에는 ‘현대음악의 저녁’이라는 모임에 참여하여 이때부터 유럽 근대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런던에서 S.P.디아길레프에게 발레음악 작곡을 권유받아 귀국 후 《알라와 롤리》를 작곡하였으나 이 작품은 상연되지 않은 채 《스키타이모음곡》으로 개작되었다.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1918년 미국에 망명, 오페라 《3개의 오렌지에의 사랑》 등을 발표한 다음 유럽으로 건너가 유명한 《피아노협주곡 제3번》을 포함한 많은 곡을 작곡하였다.
1933년 소련의 여러 차례에 걸친 귀국 종용으로 조국으로 돌아가 당국의 비판을 받아가면서도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교향곡 제5번》 등을 완성하고, 스탈린의 사망과 같은 해에 죽었다. 작풍은 초기의 원시적인 격렬함에서 점차 고전적 경향으로 이행하여 감미롭고 간소한 스타일을 취하였다. 8개의 오페라, 7개의 발레, 각 10곡의 교향곡과 협주곡 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프로코피에프는 1891년에 태어난 러시아 작곡가이다. 그가 젊었던 시대는 러시아 후기 낭만파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이같은 분위기에 그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젊은 프로코피에프는 곧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았고, 거기에 충분한 힘과 개성을 갖추었다고 판단한 그는 즉각 러시아 낭만파의 전통에 날카로운 반기를 들었다.
그는 ‘무서운 아이’였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인습에 반항하는 반항아적인 면모를 보였다고 한다. 그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러시아 전위 음악인들이 모여 ‘현대 음악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역시 전위를 원하는 청중들을 위한 콘서트를 열고 있었다.
프로코피에프는 이같은 현대 예술 운동에 기꺼이 참가했다. 그리고 그의 초기의 작품들은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독특한 색채를 지니게 되었다. 정신이 번쩍 날 만큼의 날카로움, 악기의 타악기적인 쓰임. 사람을 압도하는 기교, 그리고 짜릿한 화성 표현 등 그의 작품은 당시 큰 파문을 일으킬 만했다.
20대의 프로코피에프를 두고 사람들은 그의 혁신적인 재능에 감탄하며, 스트라빈스키와 함께 앞으로 신선한 놀라움을 줄 것이라고 예감했다. 프로코피에프는 피아노에 있어서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바이올린은 한번도 정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남긴 두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두 개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들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21세기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되는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프로코피에프(Segey Prokofief)는 대단히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그의 피아노 작품들, 특히 5곡의 피아노 협주곡은 한결같이 시적(詩的) 분위기와 혁신적인 연주기교를 반영하고 있어서 20세기에 만들어진 가장 주목받는 협주곡으로 인식될 정도이다.
그런데 이에 반해서 그의 2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로맨티스트의 협주곡처럼 여전히 서정적이고 선율적인 성격이어서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물론 바이얼린 협주곡에서도 프로코피에프는 대가적인 기교를 요구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속성은 다분히 전통적인 내용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2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2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을 갖고 작곡되었다. 따라서 음악적 접근 방법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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