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슈만 / 교향곡 2번

박연서원 2015. 2. 24. 12:37

Symphony No.2 in C major, Op.61

슈만 / 교향곡 2번 C장조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Otto Klemperer, cond.

New Philharmonia Orchestra

 

Wolfgang Sawallisch, cond.

SSD (Staatskapelle Dresden)

1972.09

 

Daniel Harding, cond.

Mahler Chamber Orchestra

BBC Proms 2013

Royal Albert Hall, London 2013.07.30

 

Leonard Bernstein, cond.

Wiener Philharmoniker

Grosser Saal, Musikverein, Wien 1985.11

 

Semyon Bychkov, cond.

WDR Sinfonieorchester Köln - Kölner Philharmonie

 

이 작품은 슈만이 남긴 네 편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독특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작곡 시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다른 세 곡은 모두 슈만의 생애에서 밝고 희망에 찬 시기에 작곡되었지만, 이 곡만은 어둡고 혼란스런 시기에 작곡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곡의 전반적인 색조는 결코 어둡지 않다. 중심 조성이 C장조인데 전체 네 개의 악장 가운데 세 악장이 이 조성을 취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지나치게 밝은 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느린 악장만은 c단조로 작곡되어 전곡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조를 대변하고 있다.

슈만이 이 교향곡을 스케치한 것은 1845년 12월 드레스덴에서였다. 당시 그는 1843년 즈음부터 고개를 들기 시작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클라라와의 결혼을 전후하여 ‘노래의 해’(1840년), ‘교향곡의 해’(1841년), ‘실내악의 해’(1842년)를 보내며 한창 인생의 절정을 구가하던 슈만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길지 않았던 행복, 고질적인 우울증

 

일단 슈만의 정신적 불안정에 태생적인 요인이 연계되어 있었다는 지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그의 아버지는 신경성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누이는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또 슈만은 이미 스물세 살 때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다. 그의 피아니스트를 향한 꿈을 좌절시킨 손가락 부상에 형수와 동생의 죽음 등 불행한 사건이 겹친 탓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는 일기장에 이런 글을 끼적였다. “나는 내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이번에는 외적인 정황을 살펴보자. 클라라와의 결혼을 통해서 얻은 행복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작곡과 평론에 의존하는 그의 수입만으로는 가계를 넉넉히 꾸려 나가기 어려웠고, 클라라는 남편이 돈 때문에 일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그녀는 첫 아이를 낳고 회복한 다음부터 순회연주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재개했고, 그에 따라 부부가 떨어져 지내는 시간도 늘어났다. 1842년 3월의 일기를 보자.

“그대를 떼어 놓은 일은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멍청이 같은 행동이었소. 이 느낌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오. 제발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볼 수 있기를. 그 사이 우리 귀여운 녀석이나 보고 있겠소. 당신과 떨어져 있으면 다시금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강렬히 느끼게 된다오. 그렇다고 나의 재능을 팽개쳐 두고 그대를 따라 순회여행에 동행해야 하겠소? 아니면 내가 신문 일이나 피아노에 매달려 있을 동안 그대의 재능을 썩혀 두어야 하겠소? 역시 지금 상태가 우리가 발견한 해결책이 아니겠소. 당신 연주 일을 돌봐줄 사람을 따로 구하고 나는 애한테로 돌아와 내 일을 하기로 말이오. 그러나 세상이 알면 뭐라고 하겠소? 그 생각만 하면 한없이 마음이 괴로워진다오.“

때로는 클라라의 연주여행에 슈만이 동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불러온 것은 아니었다. 특히 1844년 초의 러시아 연주여행에서 슈만은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심한 좌절을 맛보아야 했다. 무엇보다 음악가로서 그의 명성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점이 문제였다. 반면에 클라라는 어디를 가나 유명 여류 피아니스트로 각광을 받았기에 슈만의 가슴에는 (음악가로서) 그녀에 대한 질투심마저 일었다. 그럴수록 그는 안으로 움츠러들었고, 불면, 히스테리, 음악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면서 건강도 나날이 악화되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슈만은 깊은 절망과 우울감에 빠져 있었다.

 

어두운 시절을 극복하기 위한 분투의 과정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1844년 12월에 ‘제2의 고향’ 격인 라이프치히를 떠나 드레스덴으로 이주한 것이 바로 그런 차원의 조치였다. 라이프치히 시절 말기에 슈만은 <음악신보> 주간 일을 로렌츠에게 넘긴 상태였고, 멘델스존의 뒤를 잇고자 게반트하우스의 카펠마이스터를 지망했다가 고배를 마시는 쓰라림도 맛보았었다. 이 ‘C장조 교향곡’은 그런 어두운 시절을 딛고 다시금 일어서 광명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한 분투의 과정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지휘자 오텐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저는 반쯤 병든 상태에서 이 교향곡을 썼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쓰는 것 같았죠. 마지막 악장에서야 다시 저 자신을 느낄 수 있었고, 비로소 전곡을 좋은 상태에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슈만은 1846년 2월부터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에 들어갔지만, 우울증이 다시 도지는 바람에 그 매듭은 10월에 가서야 지을 수 있었다. 드레스덴에서 슈만은 클라라와 함께 바흐의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심신을 가다듬었는데, 대위법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이 교향곡에도 그 연구 성과가 나타나 있다.

 

1악장: 소스테누토 아사이 –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Sostenuto assai - Allegro ma non troppo)


Eliahu Inbal, cond.
New Philharmonia Orchestra

 

Konstantin Iliev, cond.

Sofia Philharmonic Orchestra

 

서주가 붙은 소나타 형식으로, ‘눈부신 햇살 아래서의 투쟁’을 연상시키는 정열적인 음악이다. 느린 서주가 시작되면 금관에서 흘러나오는 동기가 특히 중요한데, 이 동기는 이 악장의 말미에서 크게 울려 퍼질 뿐 아니라 다음 악장의 코다와 마지막 악장에서도 다시 등장하는 등 전곡의 모토(motto)로서 기능한다.

 

2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 (Scherzo: Allegro vivace)

Eliahu Inbal, cond.
New Philharmonia Orchestra

 

Konstantin Iliev, cond.

Sofia Philharmonic Orchestra

 

슈만이 쓴 가장 흥미진진한 스케르초 악장이라 할 수 있다. 멘델스존 풍의 활달한 패시지가 이어지는 가운데 신랄함과 익살스러움이 교차하며 거칠게 질주하는 스케르초들 사이에 두 개의 트리오가 놓여 있다. G장조의 첫 번째 트리오에서는 관악기로 연주되는 셋잇단음 악구가 두드러지고, 두 번째 트리오에서는 4분음표 중심의 안정적인 선율에 8분음표로 이루어진 또 다른 선율이 대위를 이룬다.

 

3악장: 아다지오 에스프레시보 (Adagio espressivo)


Eliahu Inbal, cond.
New Philharmonia Orchestra

 

Konstantin Iliev, cond.

Sofia Philharmonic Orchestra

 

론도(A-B-A-C-A-B-A) 식으로 구성된 환상곡 풍의 느린 악장이다. 작곡 당시 슈만의 고달픈 심경이 투영된 듯, 다채로운 흐름 위로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아련한 환영을 좇는 듯한 느낌과 애틋한 갈망의 기분이 교차한다.

 

4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Allegro molto vivace)


Eliahu Inbal, cond.
New Philharmonia Orchestra

 

Konstantin Iliev, cond.

Sofia Philharmonic Orchestra

 

이 피날레 악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앞선 악장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힘찬 행진곡이 펼쳐지는데, 그 주요 주제의 리듬과 부주제의 음형은 슈만이 찬탄해마지 않았던 슈베르트의 ‘그레이트 심포니’(교향곡 9번 C장조)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또 부주제는 앞선 악장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새로운 주제로 시작되는 후반부는 첫 악장의 소재들까지 곁들여져 전곡에 대한 종결부 역할을 하는 종합적인 것으로 더욱 장대하며, 팀파니의 강렬한 연타와 힘찬 C장조 화음으로 찬란하게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 후반부에 새롭게 등장하는 주제는 베토벤의 연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의 마지막 곡에 흐르는 선율과 매우 유사하다. 그 마지막 절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러면 이 노래들이 우리를 갈라 놓으려는 힘을 극복할 것이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은 바라던 것을 얻게 되리니.”

 

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

 

출생과 환경

1810년 독일 작센 근교에서 출생.

 

교육과 작품 활동

7세에 교회 오르가니스트에게 피아노 배웠는데 음악적 진보가 놀라워 11-12세 무렵부터 피아노곡이나 합창곡, 관현악곡 등을 작곡 중학교 졸업 무렵부터 슈만은 낭만주의 문학에 깊이 심취하고 칸트. 피히테등 관념 철학을 탐구 20세에 파가니니의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은 후 음악가의 길을 결심 프리드리히에게 피아노를 도른에게는 작곡을 배움 작곡과 문학의 길을 걷기로 하여 작품1에서 23에 이르는 수많은 피아노곡을 작곡.
1834년 음악 신보를 창간하여 음악 비평에 착수
1840년 비크의 딸 클라라와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성공 현악 4중주곡. 피아노 5중주곡. 피아노 4중주곡 창작
1843년 멘델스존의 음악학교에서 강사
1850년까지 드레스덴에 머물면서 개인 교수와 창작
1847년 리더타펠의 지휘자 역임
1850년 뒤셀도르프 관현악단 합창단의 지휘자
1854년 정신적인 병세가 악화되어 46세로 생애를 마감

 

작품의 특징

슈만은 아버지에게 문학적 관심을 어머니에게는 민감한 성격과 교양을 물려받았다. 슈만의 예민한 성격과 우울증 등의 유전적 영향이 그의 정신 세계를 지배했으며 때로는 그의 정신 분열 상태가 음악 속에서 드러날 때도 있었다. 슈만의 작품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렵다. 그의 작품은 음의 울림, 음과 음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긴장과 이완 그리고 유기적으로 발전하는 모티브 이러한 소재를 추상화하기보다 구체화하는데 흥미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의 구성보다는 어느 한 점을 포착하여 그것을 확대. 해체해가는 데 전념하였다. 그러나 그의 즉흥적인 음들은 단순히 공상과 정열에만 멈추지 않고 깊은 지성을 바탕으로 개인적 자유주의 속에서 무한한 감동을 전달해주는 낭만주의 환상적인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슈만의 작품은 매우 아름답다. 단지 아름다운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안, 절망, 고뇌, 기쁨, 감동 등을 성숙한 이미지로 전환시켜 무한한 감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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