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ciatemi morire (Lamento d'Arianna)
몬테베르디 / 죽게 하소서 (슬픔의 아리아)
Claudio Monteverdi 1567-1643

Lamento d'Arianna, for voice & continuo
Lasciatemi morire.
Lasciatemi morire.
E che volete
Che mi conforte
In cosi dura sorte,
In cosi gran martire?
Lasciatemi morire.
Lasciatemi morire.
E che volete
Che mi conforte
In cosi dura sorte,
In cosi gran martire?
Lasciatemi morire.
Lasciatemi morire.
Leave me to die.
Leave me to die.
And who do you think
Can comfort me
In such a hard (harsh) state,
In such great suffering?
Leave me to die.
Leave me to die.
And who do you think
Can comfort me
In such a hard (harsh) state,
In such great suffering?
Leave me to die.
Leave me to die.
Roberta Mameli, soprano
Takashi Tsunoda, chitarrone
Anna Caterina Antonacci, soprano
Amsterdam, 2007
고향으로 떠난 Theseus를 그리며 만약 그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기를 원하는 Arianna의 아리아이다. 고대 희랍 신화의 테세우스(Theseus)를 소재로 하는 Monteverdi의 Arianna는 악보가 소실되어 이 Lasciatemi morire를 남길 뿐이다.
몬테베르디의 첫번째 오페라 L'orfeo에 이어 두번째로 지은 오페라인 D'arianna는 1608년 작곡되어 만토바 궁전에서 초연되었으며, 당시 이탈리아의 유행음악이었던 마드리갈의 곡조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오페라의 내용은 그리스신화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를 소재로 하는 오페라로써 특히 이 곡은 낙소스섬에 있는 아테네의 공주를 구하기 위해 떠난 테세우스를 그리워하며 크레타의 아리아드네(Ariadne)가 부르는 아리아이다.(오페라의 악보가 소실되어 이 Lasciatemi morire만 있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Claudio Monteverdi] 1567∼1643, 이탈리아
올바른 의미에서의 오페라는 몬테베르디에 의해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는 후에 베네치아로 옮겨 가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여 성 마르코 성당의 악장으로서 교회음악에도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오페라의 확립에 커다란 공헌을 한 작곡가로서, 특히 극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당시 비길 데 없는 대가였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소년 시대부터 청년 시대에 걸쳐 고향 크레모나(Cremona)에서 대위법·작곡법·비올 주법을 배우고 마드리걸을 주로 한 초기의 작품을 간행했다.
1590년(23세) 만토바로 옮겨 빈첸초(Vincenzo) 1세를 섬기고 이후 20년간의 궁정 음악가로서의 활동을 개시한다. 당시는 오페라의 창시기에 해당하여 이탈리아의 주요한 도시에서는 음악의 혁신적인 기운이 싹트고 있었으며, 몬테베르디도 궁정을 중심으로 해서 진보적인 음악가들과 교제하고 커다란 자극을 받았다. 그 자신도 고전적인 대위법의 규칙에 구애받지 않는, 극적인 표현을 가진 마드리걸을 다수 발표하고 보수적인 대가 아르투시(Giovanni Maria Artusi, 1540?∼1613)와 유명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자기의 입장을 튼튼하게 했다.
궁정 음악가로서의 지위는 순조로이 승진하여 1603년(36세)에는 악장에 임명되고, 1607년의 명작 「오르페오」(오페라), 이듬해의 「아리안나 L'Arianna」에 의해 오페라사상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그의 생활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여 1607년에는 아내 클라우디아(Claudia)가 두 아들을 남기고 타계했으며, 그 자신도 과로 때문에 두통의 지병을 갖게 되었다. 그 위에 1612년(45세)에는 빈첸초 1세가 타계하고, 후계자 프란체스코는 까닭도 없이 몬테베르디를 파면하고 말았다
이보다 앞서 1610년에 쓴 미사곡은 진기하게 엄격 대위법에 의하고 있었는데, 이 미사곡의 성공이 계기가 되어 1613년부터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카펠라의 악장에 취임, 새로운 활동기를 맞이한다. 산 마르코에서의 사명은 근래 현저하게 낮아진 카펠라의 연주 능력을 회복하는 데 있었는데, 그는 단기간에 이 사명을 다하고 시당국으로부터도 감사를 받았다. 창작 면에서는 직업상 고전적인 폴리포니의 작품을 쓸 기회가 많았지만, 극음악에 대한 의욕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당시 극음악의 상연 장소는 궁정으로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또다시 만토바 궁정과의 접촉을 회복함과 동시에 각지의 궁정과도 연락을 취해 많은 오페라·무용극·인테르메초를 창작해 갔다.
1637년에는 몬테베르디(이탈리아)의 70세 탄생을 기념하여 베네치아에 세계 최초는 공개 오페라극장이 설립되고, 이것을 필두로 각지에 많은 극장이 건설되어 갔다. 이들 극장을 중심으로 몬테베르디(이탈리아)의 마지막 활동이 전개되고, 1642년(75세)에 완성한 「포페아의 대관L'incoronazione di Poppea」을 최종작으로 하는 여러 오페라를 써서 남겼다. 「오르페오」(오페라)에서 「포페아의 대관」에 이르기까지의 35년간 그는 항상 이탈리아의 극음악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었는데, 그 작품의 대부분은 독일 황제군에 의한 만토바 공략 때문에 상실되고 말았으며 앞으로의 재발견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음악 > 음악감상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베토벤 / 교향곡 2번 (0) | 2014.09.15 |
|---|---|
| 몬테베르디 /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숲 (0) | 2014.09.11 |
| 몬테베르디 / 성모 마리아를 위한 저녁기도 (0) | 2014.09.05 |
| 레하르 / 오페라타 '주디타'중 '금과 은의 왈츠', '너무나 뜨겁게 입맞춤하는 내 입술' (0) | 2014.09.03 |
| 모슈코프스키 / 불꽃 (0) | 2014.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