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퍼셀 / 현을 위한 판타지아

박연서원 2016. 7. 1. 22:58

Fantasias for the Viols

퍼셀 / 현을 위한 판타지아

Henry Purcell, 1658 - 1695

 

Fantasia Upon one Note

 

If music be the food of love, song, Z. 379

Hespérion XX, Jordi  Savall

 

Fantasias for the Viols 1680
1. Fantasia upon one Note in F major, Z 645 (0:00)
2. Fantasia No. 1 in 3 parts in D minor, Z 732 (3:07)
3. Fantasia No. 3 in 3 parts in G minor, Z 734 (6:23)
4. Fantasia No. 2 in 3 parts in F major, Z 733 (9:03)
5. Fantasia No. 4 in 4 parts in G minor, Z 735 (10 June 1680) (12:42)
6. Fantasia No.5 in 4 parts in B-flat major, Z 736 (11 June 1680) (16:31)
7. Fantasia No.6 in 4 parts in F major, Z 737 (14 June 1680) (20:04)
8. In Nomine in 6 parts in G minor, Z 746 (24:10)
9. Fantasia No. 7 in 4 parts in C minor, Z 738 (19 June 1680) (26:01)
10. Fantasia No. 8 in 4 parts in D minor, Z 739 (22 June 1680) (30:26)
11. Fantasia No. 9 in 4 parts in A minor, Z 740 (23 June 1680) (34:27)
12. Fantasia No. 10 in 4 parts in E minor, Z 741 (30 June 1680) (39:36)
13. Fantasia No.11 in 4 parts in G major, Z 742 (18 Aug.1680) (43:41)
14. Fantasia No.12 in 4 parts in D minor, Z 743 (31 Aug.1680) (46:50)
15. In Nomine Dorian in 7 parts in G minor, Z 747 (50:25)
Hespérion XX
Jordi  Savall ​

 

Fantasias & In Nomines, Z.732-747

1. Fantasia for 3 viols in D minor, Z. 732 (00:00)
2. Fantasia for 3 viols in F major, Z. 733 (02:46)
3. Fantasia for 3 viols in G minor, Z. 734 (05:56)
4. Fantasia for 4 viols in D minor, Z. 739 (08:13)
5. Fantasia for 4 viols in A minor, Z. 740 (12:00)
6. Fantasia for 4 viols in G minor, Z. 735 (15:03)
7. Fantasia for 4 viols in E minor, Z. 741 (18:36)
8. Fantasia for 4 viols in B flat major, Z. 736 (23:10)
9. Fantasia for 4 viols in G major, Z. 742 (27:26)
10. Fantasia for 4 viols in F major, Z. 737 (31:01)
11. Fantasia for 4 viols in C minor, Z. 738 (35:15)
12. Fantasia for 4 viols in D minor, Z. 743 (39:00)
13. Fantasia upon one note, for 5 viols in F major, Z. 745 (42:43)
14. In Nomine for 6 viols in G minor, Z. 746 (45:32)
15. In Nomine for 7 viols in G minor (Dorian), Z. 747 (47:49)

Concentus Musicus Wien / Nikolaus Harnoncourt

Rec. 1965 (Vienna, Austria)

 

Fantasies POUR VIOLES (LONDRES, 1680)

1. Fantasia I à 3 en ré mineur | d minor Z. 732 (0:00)
2. Fantasia II à 3 en fa majeur | F major Z. 733 (2:49)
3. Fantasia III à 3 en sol mineur | g minor Z. 734 (5:29)
4. Fantasia IV à 4 en sol mineur | g minor Z. 735 (7:57)
5. Fantasia V à 4 en si bémol majeur | B♭ major Z. 736 (11:13)
6. Fantasia VI à 4 en fa majeur | F major Z. 737 (14:03)
7. Fantasia VII à 4 en do mineur | c minor Z. 738 (17:13)

8. Fantasia VIII à 4 en ré mineur | d minor Z. 739 (21:17)

9. Fantasia IX à 4 en la mineur | a minor Z. 740 (24:42)
10. Fantasia X à 4 en mi mineur | e minor Z. 741 (27:54)
11. Fantasia XI à 4 en sol majeur | G major Z. 742 (31:04)
12. Fantasia XII à 4 en ré mineur | d minor Z. 743 (34:00)
13. Fantasia XIII à 4 en la mineur | a minor Z. 744 (36:50)

TERMINÉ PER : Completed by Matthias Maute (Montréal)

14. Fantasia upon one note à 5 en fa majeur | F major Z. 745 (40:05)
15. In nomine à 6 en sol mineur | g minor Z. 746 (42:35)
16. In nomine à 7 en sol mineur dorien | g minor Dorian Z. 747 (44:09)
17. Dance for the Green Men :: Monkey's Dance (The Fairy Queen) (46:28)
18. Dido's Lament (Dido & Aeneas) (50:31)

 

작품개요

18,9 세에 이미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가졌던 퍼셀을 알아본 국왕 찰스 2세가 그를 궁정 예배당의 작곡가로 임명하면서 영국 음악계의 중요한 위치를 확보한 다음, 3년 후에 다시 웨스터민스터 사원의 오르간 주자로 임명되면서 그의 이름은 더욱 빛을 발했다. 직무상 퍼셀은 많은 교회 음악을 쓸 수밖에 없었고 또한 국왕을 위항 곡들도 쓰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소개하는 '현을 위한 판타지아'이다. 이 작품은 1860년에 작곡 된 것으로, 영국 폴리포니스트들의 전통을 계승해 더욱 발전시킨 치밀한 대위법의 사용으로 그가 만든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작품은 퍼셀의 생존 기간 동안에는 출판되지 않았고 1927년에 이르러서야 대영박물관에 있는 자필 악보를 바탕으로 피터 왈록이 옮김으로서 최초의 출판이 이루어졌다. 이 곡은 전곡이 짝수의 박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특징이 있고 뛰어난 화성의 사용으로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에 평온한 멜랑콜리함이 대단히 명상적인 분위기이며 용의주도한 대위법의 사용으로 그 울림이 충실하다.

 

Jordi Savall (호르디 사발, 19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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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태생의 작곡가,비올 연주가이자 지휘자.

클래식의 원전연주라 함은 옛 음악을 그 시대의 연주 양식으로 재현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정격연주  또는 시대연주 등으로 부르기도한다.

클래식음악에 있어서 당시의 연주 양식으로 접근하려는 원전연주는 20세기 중반부터 나타났으며,현재는 많은 음악가들과 연주단체들이 원전연주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당대에 어떻게 연주했느냐에 대해서는 본 적도,들은 적도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모르고 또한 정답도 없다. 그런 이유로 오히려 원전연주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접근이 가능하다.

연주자의 창의성을 제한하는 것이 클래식 음악 위기의 하나의 이유로 거론되는 만큼,암호 해독하듯 옛 악보를 풀어나가며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연주자에게도,관객에게도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호르디 사발(Jordi Savall)은 그 중에서도 한층 뚜렷한 원전연구 분야의 개척자다.

원전연주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주도했고,그 주류가 바흐나 헨델 혹은 그보다 앞선 몬테베르디를 집중 탐구한 데 반해 스페인 출신의 사발은 조국과 프랑스의 옛 음악을 더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현재 그는 중세와 르네상스,바로크 음악을 당시 연주법으로 재현하는 원전 음악 해석의 최고 권위자이다.

또한 비올라족의 바로크 악기인 베이스 비올(비올라 다 감바)의 최고 연주자로 손꼽힌다.

그리고 그는 비올라 다 감바 같은 잊혀진 악기를 복원하고 끊임없는 연구로 옛 음악을 부활시키고 있다.
1991년 그와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은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비올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생뜨 꼴롱브와 마랭 마레의 이야기를 그린 <세상의 모든 아침>의 배경음악을 작곡하고 연주해 전 세계에 바로크 음악의 아름다움과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호르디 사발은 1941년,스페인 카탈로니아의 이구알라다(Igualada, Catalonia)에서 태어났다.

그는 6살 때인 1947년부터 1955년까지 고향의 어린이 합창단 단원으로 노래하면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이어 1959년 바르셀로나 음악원(Barcelona Conservatory of Music)에 입학하여 첼로를 공부하였고,1965년 졸업하였다. 곧바로 그는 비올라 다 감바를 독학하며 '아르스 무지케(Ars Musicae)'와 공동으로 고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68년 호르디 사발은 스위스 '스콜라 칸토룸 바질리엔시스(Schola Cantorum Basiliensis)'에서 스위스 출신의 비올라 감바 및 첼로 연주자인 아우구스트 벤칭거(August Wenzinger)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74년,그는 아내인 소프라노 몽세라 피구에라스(Montserrat Figueras),관악기와 퍼커션을 연주하는 로렌조 알퍼트(Lorenzo Alpert),류트 연주가 홉킨스 스미스(Hopkinson Smith)와 함께 '에스페리옹 20(Hesperion XX)'이라는 고음악 연주단체를 창단하였다.('에스페리옹20'은 21세기가 시작된 후 '에스페리옹21'로 개칭되었다.)
'에스페리옹 20'은 류트,플루트,타악기,하프시코드 등의 악기로 편성된 원전연주 전문악단으로서 1800년 이전의 스페인과 유럽음악의 풍부한 레퍼토리에 감흥을 받아,오늘날의 시각으로 고음악을 새롭게 연구하고 해석하려는 연주단체이다.

그는 이 앙상블과의 연주를 통해 함께 중세,르네상스,바로크 음악의 해석에 있어 당시의 연주법에 최대한 충실하려고 노력했으며,역사적 정확성이 돋보이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함으로 일찍이 원전음악의 선도적 연주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20년간의 스위스 생활을 마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돌아 온 호르디 사발은 1987년 원전음악 보컬 앙상블 연주단체인 '카펠라 르와이알 데 카탈루냐(La Capela Reial de Catalunya)'를 창단하였다.

이름 그대로 성악 레퍼토리를 위한 보컬 앙상블인데,'카펠라 르와이알 데 카탈루냐'의 창단을 계기로 사발은 바흐 <B단조 미사>까지 레퍼토리를 넓혔다.

1989년 마지막으로 호르디 사발은 바로크 오케스트라 '르 콩세르 드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s)'을 창단하였다.

그는 1800년 이전의 서구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처음 '에스페리옹 20'을 결성했고,10년이 지난 1987년에는 '에스페리옹 20'의 창단 목적과 마찬가지로 1800년 이전의 성악곡을 연주하기 위해 '카펠라 르와이알 데 카탈루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그의 관심 영역이 바로크 이후로 확장되면서 만든 악단이 바로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이다.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은 중세부터 1800년대 이전의 다양한 형태의 옛 음악을 당시의 연주법으로 생생히 재현하는 원전악기 오케스트라로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며 세계적인 주목과 존경을 받고 있다.
호르디 사발은 다국적 악단이라는 이유를 들어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의 명칭을 설명하지만,사실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이라는 이름은 루이 14세의 음악가이자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었던 프랑수와 쿠프랭(Francois Couperin)의 작품인 ‘여러 나라 사람들(Les Nations, 1726)’에서 따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악단을 데리고 이름 그대로 다양한 나라의 바로크 음악들을 완성시켰다.

스페인과 프랑스 음악에 국한되어 있던 그의 음악 영역을 독일과 영국까지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 악단의 힘이었다. 그리고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의 창단으로 단순한 비올라 다 감바 주자였던 사발은 이후 지휘자로서도 성공을 거두는 계기가 되었다. 

 

1991년 호르디 사발은 프랑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음악을 맡아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생소했던 베이스 비올(비올라 다 감바)이라는 악기의 깊은 아름다움과 감성의 세계를 소개했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은 17세기 비올 연주가이자 작곡가였던 마랭 마레(Marin Marais)와 그의 스승 생뜨 꼴롱브(Sainte Colombe)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바로크 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는 륄리(Jean Baptiste Lully)와 생뜨 꼴롱브,프랑수와 쿠프랭과 마렝 마레의 아름다운 바로크 선율이 영화의 구석 구석을 수놓았는데,이 음악을 연주한 것이 바로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이다.

이 영화 개봉 이후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은 빠른 속도로 그 명성을 높여 갔고,호르디 사발은 "세계 최고의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라는 명성과  "정격 연주의 정상급 지휘자"라는 또 다른 영예를 얻게 됐다.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비올라 다 감바의 최고 연주자인 동시에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의 연주자이자 지휘자로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연주회를 갖고 있다.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은 바로크 시대에서 낭만주의 시대의 오케스트라와 교향곡 레퍼토리를 중점으로 삼고 있으며,호르디 사발의 레이블인 알리아 복스(Alia Vox)에서 헨델의 <수상음악>,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하이든의 <십자가상의 칠언>,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등 다양한 작품들을 내놓으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전세계를 순회하면서 일년에 평균 100여회의 연주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으며,유럽과 미국,라틴 아메리카,중동,극동,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25개국의 주요 옛음악 페스티발에서 연주하고 있다.

원전음악계의 최고의 연주자 사발은 또한 같은 세대의 음악가 가운데서도 활동분야가 가장 다양한 예술가로 꼽힌다.
그는 비올 연주가이면서 그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는 지휘자이며,제작자,교육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학자로서 음악학 연구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는 옛음악을 재평가하고 부활시키는 금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추앙 받고 있다.

 

호르디 사발은 현재까지 160개가 넘는 CD를 녹음했다.

특히 세자르상 7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 matins du Monde)>의 음악으로 전세계적으로 50만장 이상의 음반판매를 올려 좀더 넓은 계층에 그 감동을 전하였다.

지금까지 약 160여개의 음반을 내어 많은 수상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1998년  알리아 복스(Alia Vox) 레이블을 직접 설립하여 자신의 음반의 판권을 확보하였고,이후 30개가 넘는 음반을 자신의 레이블로 녹음하여 음악을 알리고 있다.
1988년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최고 영예의 훈장인 “Offic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를 받았으며,1990년 카탈로니아 총독으로부터 “Sant Jordi Cross” 를,1992년에는 르 몽드지로부터 "올해의 음악가"상을,1993년에는 <음악의 승리>지로부터 “Soloist of the Year” 로 선정되었고,1998년에는 스페인 문화부로부터 “Gold Medal for Fine Arts”를 받았다.
1999년 비엔나 콘체르트하우스의 명예회원이 되었으며,벨기에 루뱅대학의 명예 음악박사로 추대되었다.

2003년 <음악의 승리>지는 또 한번 그의 업적을 인정하였으며, 같은 해 카탈로니아 의회가 수여하는 Gold Medal을 받았다.

2003년  독일 음반 비평가 상을 수상하는 등 유럽 전역에서 그의 선구자적인 업적을 높이 기리고 있다.

 

Nikolaus Harnoncourt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1929-2016)

 

귀족 집안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첼리스트이자 지휘자로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고음악 전문가.
오스트리아 출신 세계적인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가 지난 5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86세.
아르농쿠르의 가족은 6일 오스트리아의 APA 통신사를 통해 “아르농쿠르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아르농쿠르는 앞서 지난해 12월 6월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건강 문제 때문에 은퇴한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친필 서한에서 “체력적인 문제로 연주 일정을 취소하는 게 불가피해졌다”면서 “관객 여러분과 깊은 유대 관계를 통해 행복한 선구자적 공동체를 이뤘다”고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했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방계 귀족 출신인 그는 1929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줄곧 성장했다. 빈 국립음대를 졸업한 후 1952년 카라얀이 이끌던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1969년까지 첼로 주자로 활동했다.
대학 시절부터 고음악에 흥미를 가졌던 그는 1953년 아내 알리스 아르농쿠르, 친구인 레온하르트 멜쿠스 등과 함께 고음악 연주단체인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을 창단했다. 그리고 바흐부터 모차르트에 이르는 수많은 레퍼토리를 연주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또한 연주와 병행에 <바로크음악은 ‘말'한다(원제 ‘언어로서의 음악’)> 등 고음악에 대한 저서들도 다수 집필했다. 그의 이름은 고음악 연주의 대명사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젊은 시절엔 원전연주 이외엔 비판적을 입장을 보였지만 점차 절충주의적 입장을 취하게 됐다. 그래서 자신을 ‘정격연주’로 분류하는 것을 싫어했다. 고음악에 대한 단순한 복원이 아닌 당대 정신을 복원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재해석을 내어 놓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점차 지휘자로서 명성을 얻은 그는 베를린필과 빈필 등 현대 오케스트라를 자주 지휘했으며 현대음악을 녹음하기도 했다. 지휘할 때 맨손으로 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맨손의 지휘자’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음악의 내적인 능력과 감정적인 표현을 이성적인 예술로 표현하려는 열정이 결합되면서 귀족계급과 중산층 모두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가장 알맞은 바이올린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고 건반악기 쳄발로(cembalo)도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맨 위 성부를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으며 아래성부가 약해지기 마련이었다. 바로크 시대에는 곡의 화성적 기반인 통주저음(basso continuo)위에 내성을 단순히 숫자나 기호로만 표시하는 숫자저음(figured bass)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사용된 양식이 ‘통주저음’ 곧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와 같은 낮은 음 현악기나 쳄발로 등으로 저음 성부를 받쳐주는 것이었다. ‘통주’란 독주 파트가 쉴 때도 저음은 연주를 계속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었다. ‘통주저음’은 바로크만의 독자적인 음악 형식이었다.
특히 바로크 음악의 악보에는 연주에 대한 지시(운지법, 다이내믹, 프레이징, 템포, 아티큘레이션 등)가 부족한 관계로 다른 시대에 비해 각 출판사마다 서로 다양하고 다른 해석들을 내어 놓고 있다.
바로크 음악에 대한 수많은 원전 연구와 해석은 바로크 음악의 즉흥성과 작곡가들의 필사본으로 인한 자연발생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주자의 능력과 기호에 따라 선율에 풍요로운 장식도 허용한 점은 바로크 음악이 현대 재즈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재즈의 즉흥성 바로크 음악의 계속저음으로 인한 반주의 즉흥성과 장식음 처리 등은 비슷한 면이 있다.
작곡가는 자신이 백지에 까만 오선을 긋고 음표를 완성하여 내어 놓는 동시에 더 이상 자기 것이 될 수 없음을 상기할 것이다. 즉 그 어떤 연주자도 작곡가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소리를 재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서 컴퓨터 음악은 제외될 것이다)
아르농쿠르는 이러한 고음악에 대한 해석을 통한 ‘재창조’를 위해 의식적으로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자리를 회피하였다고 한다. 그는 지휘봉을 잡지 않는 맨손 지휘자로서 악장과 악장 사이에 의도적으로 긴 휴지를 두어 고요한 정적상태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아르농쿠르는 연주와 병행하여 옛 음악과 옛 음악 연주에 관한 음악 철학적 저서들도 집필했다.

 

Henry Purcell (헨리 퍼셀, 1658 ~ 1695) 

 

영국의 작곡가. 상대적으로 다른 타이틀에 비해 우리에게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영국의 음악가 Purcell은 왕정음악가 집안에서 나고 자라 일찍이 음악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하지만 이른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맞고 흑사병 파동 등의 시련 또한 겪게 되고. 변성기가 되어 합창단을 떠나야 했던 그는 왕실 오르간주자였던 대부를 통해 음악을 계속 배울 수 있었다. 험브리와 블로우의 제자인 퍼셀은 1679년 블로우의 뒤를 이어 런던의 웨스터민스터(Westeminster) 사원의 오르가니스트가 된다. 찰스2세 이후 제임스 2세의 등극과 함께 1685년 왕실 음악가가 되어 윌리엄 3세와 메리 여왕까지 네 사람의 왕에게 봉사한다. 궁정음악가로서 퍼셀은 교회음악과 더불어 왕실의 각종 행사에 필요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왕실 음악가가 된후 당시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작곡했던 퍼셀은 이어서 부수 음악과 음악극의 작곡을 시작하는데, 그의 대부분의 가면극(Msque)은 퍼셀의 작곡활동 시기 중 후반기에 작곡되었다. '디오와 에네아스'(Dido and Aeneas/1689), '아서왕'(King Arthur/1691), '요정의 여왕'(The Fairy Queen/1692), '인도의 여왕'(The Indian Queen/1695), '템페스트'(The Tempest/1695)등의 주요 음악극이 있다. 이 중에서 디도와 에네아스만 일반 대중을 위한 음악극이며, 음악적 완성도와 구성이 가장 뛰어나다. 50여 개의 연극에 부친 부수음악과 더 많은 독창곡을 작곡한 퍼셀은 특별히 그의 성악곡 에서 영국 성악음악의 시금석이 되는 작곡가 이다. 사후에 출판된 '오르페우스 브리탄니쿠스'(Orpheus Britannicus, 대영제국의 오르페오)는 그의 독창곡, 음악극의 아리아, 그리고 파트송(Part song)이라 불리는 합창곡이 수록 되어있다. 그 자신이 카운터 테너였던 퍼셀은 영어의 뉘앙스가 갖는 아름다움을 자연스럽게 살리는 선율을 풍부한 화성적, 구조적 뒷받침으로 우아하게 재창조하는데 성공한 작곡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