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크라이슬러 / 작은 빈 풍의 행진곡

박연서원 2016. 3. 24. 14:19

Kleiner Wiener Marsch

크라이슬러 / 작은 빈 풍의 행진곡

Fritz Kreisler, 1875~1962

 

Gidon Kremer, violin

 

Eroica Trio

 

20세기초반 명바이올린 연주자였던 크라이슬러는 여러 바이올린 소품을 작곡했다. 그의 <작은 빈풍의 행진곡>은 1923년 작곡된 것으로 빈의 분위기가 지니고 있는 우아한 느낌을 행진곡이라는 형식에 담아낸 것이다.

 

기돈 크레머 (Gidon Kremer, 1947~   )

 

1947년 라트비아 공화국의 리가에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독일에서 활약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칼 브루크너(Karl Bruckner)였고, 양친 또한 모두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모계로는 독일, 부계로는 스웨덴 계통의 피를 어어받았다. 4세 때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의 기초를 배웠고, 1965년 모스크바음악원에 입학하여 다비트 오이스트라흐(David istrkh)에게 정식으로 바이올린을 배웠다.  1967년 퀸엘리자베스콩쿠르3위, 1969년 몬트리올콩쿠르에 출전하여  2위로 입상했고, 1969년 파가니니국제콩쿠르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듬해에는 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여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1975년에 유럽에 데뷔한 이후 1976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지휘하는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과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의 협주곡을 협연했으며, 1978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지휘하는 이스라엘필하모니관현악단과 지휘자가 작곡한 세레나데를 협연했다.  1979년에는 로린 마젤(Lorin Maazel)이 지휘하는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과 표트르 차이코프스키(Pyotr Chaikovskii)의 협주곡을 녹음하는 등 맹활약을 벌이면서 명성을 다져나가던 중 1980년 당시의 서독으로 망명했다. 1981년 서독에서 로켄하우스음악제를 창설했는데, 현대를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연주가들이 모여 실내악 페스티벌을 벌였으며, 1989년 내한공연도 가졌다. 1992년부터는 음악제의 명칭이 크레머의 이름을 딴 크레메르무지카로 바뀌었다.  1997년 발트 3국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실내악단 '크레메라타 발티카(kremerata baltica)'를 창단하였다.
그가 녹음한 음반 중 유명한 것으로 외젠 이자이(Eug ne Ysaye)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 요한 S.바흐(Johann S. Bach)의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와 《파르티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의 《바이올린소나타 1번》·《바이올린소나타 2번》 등이 있으며, 《브람스 바이올린소나타 전집》도 유명하다.  

뛰어난 기교파 바이올리니스트로 ‘파가니니의 환생’이라고도 불리며 현대 작곡가들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연주, 그리고 숨겨진 작곡가들을 소개하고 부활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라이슬러 (Kreisler, Fritz, 1875.2.2~1962.1.29)

 

크라이슬러는 187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나 1962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난 20세기 전반기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가이다. 신동이던 그는 7세의 나이로 빈음악원에 최연소 입학해 헬메스베르거에게 바이올린을, 브루크너에게 이론을 배웠다. 10세때 파리 음악원으로 옮겨 마사르에게 바이올린을, 들리브에게 작곡을 배운 그는 12세의 나이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게 되었다. 이듬해 미국 순회공연을 갖고 돌아와 그로부터 약 10년간은 의학을 공부하고, 군복무도 하느라 음악과 잠시 멀어졌다.

1898년 빈 필에 입단했고, 이듬해 니키쉬 지휘의 빈 필과 협연해 성공을 거둔 후, 50년 가까이 당대 최고의 스타 연주자의 지위를 누렸다. 제 1차 세계대전때 참전했다 부상당하기도 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조짐이 보이자 치를 떨며 미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도 교통사고와 시력과 청력이 약해지는 불행을 당했다. 하지만 1947년 카네기홀 은퇴 연주회에서 무대에서 물러날 때까지 성실히 연주에 임했다.

크라이슬러는 탁월한 기교와 서정미가 풍부한 연주로 사람들을 깊게 감동 시켰는데 <사랑의 기쁨>, <사랑의 슬픔>, < 비엔나 기상곡>, <크라이슬러의 자장가>등 많은 바이올린 소품들을 작곡해서 자신의 연주곡목을 풍부히 했다. 이 중 <사랑의 슬픔>은 <사랑의 기쁨>과 한 쌍을 이루는 유명한 곡인데 이는 비엔나의 옛 민요를 주제로 삼아 작곡한 왈츠이다. 가단조인 이 곡은 약간 어두운 느낌이면서 유려한 선율로 이루어져 있고 부주제로 된 중간부를 거쳐 다시 주부로 되풀이 되는 3부 형식이다.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을 같이 들으면 형식은 같으나 느낌이 다르므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랑의 슬픔’과 ‘사랑의 기쁨’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음악에, 그리고 이른바 "클래식 음악"에 첫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도 가장 적절한 곡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