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오즈 / 로마의 사육제 서곡
Le Carnaval Romain Overture, Op.9
베를리오즈 / 로마의 사육제 서곡
Louis Hector Berlioz, 1803~1869
베를리오즈는 바그너와 함께 낭만파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표제 음악’이라는 새로운 관현악곡의 유형을 창시했다. '근대 오케스트레이션의 아버지'라고도 불려지는 베를리오즈는 악기의 음색과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능했다. 그래서 '관현악기가 그의 손에서 다루어질 때는 갑자기 찬란하게 빛난다'는 칭송을 들었다.
이 곡은 본래 오페라「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제2막 서곡이었는데, 곡이 뛰어나게 아름다워서「로마의 사육제」라는 제목으로 독립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오페라의 제1막 마지막에서 연주되는 이탈리아의 민속무용음악, 즉 살타렐로의 테마를 가져와서 이 곡을 썼는데, 생기 발랄한 리듬의 활용과 천재적인 관현악법의 구사로 전체적으로 매우 세련되고 화려하다.
격렬한 짧은 서주에 이어 등장하는 잉글리시 호른의 선율은 오페라의 아리아 선율답게 화려하다. 전체적으로 이탈리아 스타일의 빠른 질주와 느리고 서정적인 아리아 조의 노래가 혼재하고 있고, 관현악기들의 독주와 합주가 어우러지면서 강렬한 리듬감으로 축제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Montreal Symphony Orchestra
Jukka Pekka Saraste, cond.
Kölner Philharmonie
WDR Sinfonieorchester Köln
Michael Tilson Thomas, cond.
YouTube Symphony Orchestra 2011
at the Grand Finale concert, Sydney Opera House
Yoav Talmi, cond.
San Diego Symphony Orchestra
Fuat Mansurov, cond.
the State Symphony Orchestra of Tatarstan
Herbert von Karajan, cond.
Philharmonia Orchestra
Willem Mengelberg, cond.
Concertgebouw
Roman Carnival Overture Op. 9 for 12 saxophones
Tom De Haes, cond.
Saxofoonensemble Lemmensinstituut
Roman Carnival Overture Op. 9 for Five Trombones
The U.S. Army Field Band Trombone Ensemble
From left to right:
Sergeant First Class Carmen Russo
Sergeant First Class Todd Sturniolo
Master Sergeant Aaron Kadrmas
Sergeant Major Mark Bowling
Sergeant First Class Wes Ballenger
Berlioz / 7 Overtures (베를리오즈 / 7개 서곡)
1. King Lear (리어 왕) Op.4 (1831)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리어왕은 그 극적인 삶과 정신 상태에 있어서 베를리오즈의 삶과 닮아 있다. 이 곡은 베를리오즈의 작품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표제와 해설이 없다. 하지만 리어왕과 코델리아 그리고 악한 두딸의 주제를 사용하고 있다. 서주부의 우렁찬 선율은 리어왕을, 오보에의 약주는 코델리아의 성품을 노래한다. 저음악기의 강력한 가락으로 시작되는 첫 부분부터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 없다. 곳곳에 팀파니의 활약이 눈부시고 주부로 들어가면 열정적인 현의 제시 뒤에 오보에 솔로가 코델리아의 애정과 연민을 잘 드러내고 있다. "천벌을 받을지라! 너희들은 모두 살인자고 반역자다! 난 이 아이를 살릴 수도 있었을 것을 이제는 영원히 자 버렸도다!" 코다에서는 리어왕의 광란하는 모습이 투티의 격렬함으로 눈에 보일 듯 선명하게 표현된다. 리어왕이 광야를 헤메는 적막함이 가끔 나타난다.
2. Le Corsaire (해적) Op.21 (1831)
당시 로마에 체류중 작곡된 이 곡은 3개의 주제와 한개의 에피소드로 구성 되어있다. 3개의 주제들이 차례로 나올 때마다 그것을 전개시키면서 그때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관현악법으로 새롭게 그빛깔을 더해가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관현악의 대가라고 불리던 베를리오즈답게 가장 화려한 모습의 관현악을 보여준다. 이 곡의 아름다운 균형미는 낭만적이라고 불리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확실히 느끼게 한다.
3. Le Carnaval Romain (로마의 사육제) Op.9 (1844)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와 미녀 테레자와의 사랑의 이야기를 엮은 이 작품은 초연에 실패하여 그뒤로 별로 공연되지 않았으나 서곡과 제2막 서두에서(2막 전주곡) 연주되는 부분은 1844년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관현악으로 편곡, 공연되어 절찬을 받았다. 마치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 3악장을 연상케하는 너무나 아름다운 주제 음악 때문에 현재는 <로마의 사육제>라는 이름으로 독립되어 연주되는 곡으로 드보르작의 카니발 서곡과 더불어 연주회의 단골메뉴로 오르는 곡이다.
4. Les francs-juges (비밀재판관), Op.3 (1826)
베를리오즈에게는 시를 쓰는 법학도 Humbert Ferrand 라는 친구가 있었다. 이미 칸타타 가사를 써주었던 그는 1826년에는 오페라 'Les Francs-Juges' 의 각본을 써주었지만 베를리오는 이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 오페라의 서곡은 많은 인기를 얻게되어 현재에도 음악회의 인기 레퍼터리로 연주된다.
5. Benvenuto Cellini (벤베누토 첼리니) Op.23 (1838)
벤베누토 첼리니 (1500 - 1571)는 르네쌍스 시대의 이태리 조각가이었다. 베를리오즈는 이 사람을 주제로 오페라를 만들어 1838년에 파리에서 초연하였으나 너무나 새로운 형식의 오페라였던 관계로 흥행에 실패하고 만다. 이후에도 이 오페라는 잘 흥행되지 않고 있으나, 그 서곡만은 연주회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의 레퍼터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6. Beatrice et Benedic (베아트리체와 베네딕트) (1860-1862)
베를리오즈의 오페라-코믹(opera-comique) '베아트리체와 베네딕트'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을 원작으로 한다. 이 오페라는 1862년 바덴바덴에서 초연되었다. 작곡하는 동안 베를리오즈는 잦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럼에서 불구하고 그의 음악에서는 쾌할함이 넘친다.
7. Rob Roy (1832)
스코틀랜드 고원 지방의 유명한 무법자 로브로이 맥그리그. 스코틀랜드의 로빈 후드라는 평판이 있는 인물로, 월터 스콧 경의 소설 〈로브 로이 Rob Roy〉(1818)와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몇 구절에 과장되게 나타나 있는데 이를 테마로 한다. 맥그리그는 자신의 암적색 머리칼을 가리켜 종종 자신을 로브 로이(붉은 로브)라고 알렸다.
Louis Hector Berlioz 베를리오즈 (1803.12.11~1869.3.8)
베를리오즈는 남프랑스의 라코트생앙드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변호사였으며 아버지는 의사로서 이 지방 일대의 신뢰를 모으고 있었다. 17세 때 파리의 의과대학에 진학 했으나 해부학 교실에서 시체를 보고 질겁해 뛰쳐나온 뒤로 다시는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글룩의 오페라에 매혹되어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작곡가의 길로 진로를 바꾸게 된다. 1826년 파리음악학원에 입학, 작곡법과 푸가를 공부하고 1830년 로마상 콩쿠르 대상으로 로마에 유학을 했다.
베를리오즈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프랑스에서 유일한 교향곡 작곡가로서 ‘표제음악’ 이라는 새로운 극적인 관현악곡 스타일을 창시한 데 있다. 음악과 더불어 그의 새로운 관현악법은 이후의 많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문장력에도 뛰어나 바그너와 더불어 명문장가로 명성이 높았으며, 자서전<회상록>은 음악가가 쓴 전기문학 분야에서 걸작으로 꼽힌다.
프랑스의 작곡가. 남프랑스의 라코트생앙드레 출생. 17세 때까지 가정에서 일반교육을 받고, 그 후 파리에서 글루크의 오페라에 매혹되어 작곡가가 되고자, 르 쉬르에게 사사하였다. 1826년 파리음악원에 입학, 작곡법과 푸가를 공부하고 30년 로마상 콩쿠르의 대상으로 로마에 유학하였다. 그 사이 파리를 방문한 영국 셰익스피어극단의 여배우 해리에트 스미드슨을 짝사랑하여 《환상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1830)을 작곡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고, 리스트, 쇼팽, 힐러, 넬바르, 뒤마(부친) 등과 교유하는 한편, 34년부터는 자작의 연주회와 작곡 등으로 정력 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시기의 작품에는 독주 비올라에 이탈리아의 추억을 상기시킨 교향곡 《이탈리아의 해롤드:Harold en Italie》(34) 《레퀴엠:Requiem》(37), 오페라 《벤베누 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38), 그리고 독창과 합창이 곁든 극적 교향곡 《로미오와 줄리 엣:Romeo et Juliette》(39) 등이 있다. 그러나 38년 《벤베누토 첼리니》의 상연 실패로 후반 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남기게 되었다.
파리에서 자작의 활동무대를 잃은 그는, 42년부터 국외로 나가 연주여행을 하게 되었다. 곧 1842~43년에는 독일 각지에서 연주를 하면서, 서곡 《로마의 사육제 Le Carnaval romain》(43)를 작곡하였으며, 《근대의 악기법과 관현악법》(44)이라 는 저서를 출판하였다. 그러다가 1845~46년의 프라하·부다페스트에서의 연주여행이 성공하자, 이에 힘입어 귀국 후 《파우스트의 겁벌(劫罰) La Damnation de Faust》(46)을 완성, 초연하였으나 이 역시 성공하지 못하였다. 18 47년 러시아와 영국에서 장기 체류할 예정으로 건너갔으나 이듬해 일어난 프랑스혁명(2월혁명)이 걱정되어 귀국하였으며 그의 《회상록》은 이 무렵 영국에서 착수되었다.
50년에는 ‘필하모닉협회’를 결성하여 혁명 후의 파리에서 적극적인 연주활 동을 추진하였지만, 이 역시 이듬해에 좌절되어 다시 국외 연주여행을 떠났다. 1854년 3부작 오 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L’Enfance du Christ》이 비로소 파리에서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49년에는 완성 이후 연주장소를 얻지 못하였던 대작 《테 데움:Te Deum》이 만국박 람회 개막을 축하하여 연주되었으며, 56년에는 프랑스 아카데미회원으로 선출됨으로써 마침내 그는 생활의 안정을 얻었다.
만년에는 2부작 오페라 《트로이 사람:Les Troyens》의 작곡에 열중하였으나, 이 작품을 상연할 기회는 좀처럼 얻을 수 없었으며, 63년 제2부 《카르타고의 트로이 사람:Les Troyens a Carthage》만이 상연되었다. 이 시기의 작품으로는 희극 《베아 트리스와 베네딕트:B럂trice et B럑럅ict》(62)가 있다. 다년간에 걸친 연주여행은1867∼68년의 러시아 연주회를 끝으로 종지부를 찍고, 지병의 악화로 69년 3월 8일 파리에서 고뇌에 찼던 일 생을 마쳤다.
베를리오즈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프랑스에서 유일한 교향 곡 작곡가이었으며 ‘표제음악’이라는 새로운 극적인 관현악곡 스타일을 창시한 데 있다. 그리고 이 음악과 더불어 그의 새로운 ‘관현악법’은 이후의 많은 작곡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또한 문장에도 뛰어나 바그너와 더불어 명문가로 명성이 높으며, 자서전 《회상록》은 음악가가 쓴 전기문학 분야에서 걸작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