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음악감상실

비탈리 / 샤콘느

박연서원 2014. 12. 3. 09:23

Ciacona

(Chaconne for Violin & Orchestra in G minor)

비탈리 / 샤콘느

Tommas Antonio Vitali,1665-1747

렘브란트 갈릴리 해의 폭풍(The Storm on the Sea of Galilee), 캔버스에 오일, 1633.

렘브란트의 유일한 바다 그림인 이 작품은 1990년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뒤 아직까지 그 행방을 못 찾고 있다.

 

David Oistrakh, violin

Vladimir Yampolsky, piano

 

Full orchestra by Sarah Chang

 

Stepan Grytsay, violin

 

Part 1

Jascha Heifetz, violin 

 

Part 2

Jascha Heifetz, violin 

 

Part 1

Andres Segovia, guitar 

 

Part 2

Andres Segovia, guitar 

 

샤콘느는 파사칼리아(passacaglia)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변주곡 양식의 곡이다. 그중 샤콘느는 17세기에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유행한 춤곡으로, 이후 이탈리아와 독일에 들어가 기악 형식으로 발전했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바흐의 샤콘느' 와 더불어 이 양식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비탈리는 이 작품을 그 시대의 스타일을 따라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곡으로 작곡했으며, 1867년에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드(Ferdinand David)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하여 출판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로마 3부작'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가 이를 오르간 반주로 편곡했으며, 바이올리니스트 지노 프란체스카티(Zino Francescatti)는 관현악 반주로 편곡했다.

 

바로크 시대의 기악 음악은 작곡 기법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4마디 또는 8마디의 짧은 선율이나 음형을 반복하여 변주하는 오스티나토(ostinato) 기법을 도입하였다. 베이스 음형을 반복하며 그 위에 다른 성부의 선율 진행을 얹어 변화를 주는 이 오스티나토 기법의 변주곡 양식은 단순한 음형을 가지고 계속 변화를 줌으로써 단악장의 음악이면서도 악곡에 제법 긴 지속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비탈리의 샤콘은 이 오스티나토 기법을 사용하여 첫 마디의 주제가 화성적 골격을 이루면서 상성부의 바이올린 선율과 함께 조성과 리듬에 변화를 주며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단조 3/2박자 203마디의 48개 변주로 이루어진 곡이다.

 

바흐보다 22년 먼저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현악기 연주자였던 음악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반니 비탈리는 모데나의 프란체스코 공작의 궁정악단에서 첼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고, 비탈리 자신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12세부터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궁정악단에서 안토니오 마리아 파초니에게 작곡을 배운 그는 1693년 'Trio Sonata 모음곡집'을 첫 출판한 이후 작곡에 힘을 기울여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평생을 모데나의 궁정악단에서 보냈으며 장년에는 악장으로 궁정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볼로냐 아카데미아 필하모니를 창설했고 바로크 볼로냐 악파를 대표하는 작곡가인데, 많은 작품을 썼지만 바이올린 소나타와 실내악곡 몇 곡이 전해질 뿐이다.

 

'비탈리의 샤콘느'는 진위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첫째, 바로크 시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낭만적 음색과 정서가 묻어난다는 것이었다. 둘째, 자필 악보가 없다. 사후 150년이 지난 1867년, 페르디난트 다비드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해서 발표하면서 "원래 작곡자가 비탈리"라고 밝혔을 뿐 그 밖의 다른 증거가 없다. 셋째, 비탈리가 남긴 작품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진위를 가릴 자료도 부족하다. 그러나 아무튼 이 작품이 비탈리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 또한 없으니, 여전히 '비탈리의 샤콘느'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바흐의 샤콘느와 비탈리의 샤콘느

 

바흐의 샤콘느는 그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에서 제4번 파르티타  BWV 1004의 마지막 곡이다. 조성은 D단조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반주, 즉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반주없이 네줄짜리 바이올린 하나만 가지고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개의 성부를 동시에 연주하려면 상당한 기교가 요구된다. 들어보면 마치 두 세대의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하는 것처럼 들린다. 후에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부조니가 이 곡을 피아노 용으로 편곡했기 때문에 피아노로도 가끔 연주되기도 한다. 반면 비탈리의 샤콘느는 조성이 G단조이고, 바이올린 독주에 오케스트라나 오르간, 피아노 등으로 반주를 할 수 있게 후대의 많은 음악가들이 편곡을 했다.바흐의 샤콘느는 남성적이며, '영원으로의 끝없는 비상'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반면 비탈리의 샤콘느는 여성적이며 '지상에서 제일 슬픈 곡'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더욱 재미있는 비유는, 이들 두 작곡가의 샤콘느를 종종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에 비교한다는 점이다. 사실 이 두 곡을 듣고 나면 그 느낌에 큰 차이가 있는데, 이 점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정서적 차이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아폴론(아폴로)는 그리스, 로마인들에게 지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신인데 바흐의 샤콘느는 선율적인 요소보다는 화성적인 진행이 강조된 만큼, 전체적으로 내향적이고 이지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여러 성부가 겹쳐서 나타나기 때문에 복잡한 느낌도 있고해서 약간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반면에 비탈리의 샤콘느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매우 애처로우면서도 열정적인 선율을 가진 작품으로 다분히 디오니소스적인 느낌을 준다. 셋잇단 음표나 여섯잇단 음표 또 싱코페이션 같은 바흐의 것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리듬이 보이고, 스타카토라든가 스피카토, 더블 트릴같은 화려한 기교를 많이 사용해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드는 것같다.

 

Tommas Antonio Vitali, 1665-1747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비탈리(Tommaso Antonio Vitali)는 아버지,
할아버지가 모두 명성 높은 현악
기 연주자였던 유서 깊은 음악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바니 바티스타 비탈리 (Giovanni Battista Vitali 1632~1692)는 모데나 (Modena)의 프란체스코
공작의 궁정악단에서 작곡가이자 첼리스트, 바올리니스트로 활동했고, 토마스 안토니오 비탈리 역시
부친의 뒤를 이어 12세부터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다. 궁정악단에서 Antonio Maria
Pacchioni로부터 작곡을 배운 그는 1693년 Trio Sonata 모음곡집을 첫 출판한 이후 작곡에 힘을 기울여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평생을 모데나의 궁정악단에서 보냈으며,
장년에는 악장으로 궁정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흔히 비탈리의 샤콘느라 불리는 '바이올린과 통주 저음을 위한 샤콘느 G단조 (Chaconne for
Violin and basso continuo in G minor)'로 1867년 독일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드 다비드 (Ferdinand David)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연주곡집을 출판할 때
이곡을 실어 소개한 이후, 이탈리아의 작곡가 레스피기(Ottorino Respighi)가
오르간 반주로 편곡하면서 잘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곡을 들어 보면 바로크 시대의 일반적인 곡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며,
오히려 낭만주의 시대의 비극적인 느낌이 풍부하기 때문에 비탈리 곡이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그러나 그의 곡이 아니라고 단정지을만한 확실한 증거도 아직은 없다.
샤콘느 (Chaconne)는 바로크 시대의 변주 형식으로 16세기 라틴 아메리카에서 흘러온 무곡을
바탕으로 17세기 스페인에서 유행한 느린 템포의 진행을 기본으로 하는 무곡으로  
통상 3/4박자이고 조성은 장조이며 이를 기본으로 음형을 변주곡 형태로 연주하는 곡이다.
샤콘느는 스페인에서 발생해 이탈리아, 프랑스에 전해져 기악곡으로 발달했고, 파사
칼리아와 함께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 기악 변주곡으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샤콘느와 파가칼리아의 구별이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