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서원 2014. 4. 30. 21:27

입력 : 2014.04.17 04:00

 

아침 기차를 타고 마산으로 달렸다. 마산 어시장에서 일당 7만원의 잡부로 일하는 성윤석(48) 시인이 마산의 통술 문화를 아느냐고 도발했기 때문이다. KTX는 3시간 10분 만에 남도의 바다로 안내했고, 마산은 벚꽃의 연분홍을 지나 새순의 연두가 돋아나는 중이었다.

시집 '멍게'(문학과지성사)를 펴낸 이 자칭 '일용 잡부 시인'은 관광의 도시가 아니라 삶의 도시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마산행 결심에는 시인의 이런 편견 섞인 도발이 한몫했을 것이다. 통영이나 남해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으면서도 최근 이 관광 시·군(市·郡)의 상업화와 번잡함을 우려하는 사람이 기자만은 아닐 테니까.

 

경상남도 마산(馬山, 現 통합 창원시)

 

마산은 예로부터 합포로 불리던 중요한 항구였다. 1663년 대동법이 시행됨에 따라 낙동강 하류의 조공미를 서울로 조운하는 격납고인 조창이 설치됨으로써 공관과 민가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마산의 기반이 이루어졌다. 19세기 말부터는 근대적인 항구로 개발되었다.
2010년 7월 1일. 창원·마산·진해 3개 시가 행정구역 자율통합으로 합쳐져 5개 행정구를 산하에 둔 통합 창원시가 출범하였다. 통합 창원시의 출범으로 마산시의 북부 지역은 마산회원구로, 남부 지역은 마산합포구로 분구되었다.

 

동틀 녘의 마산 어시장. 나무 궤짝을 사이에 두고 ‘아재’와 ‘아지매’들이 분주한 새벽을 보낸다.
경매를 앞둔, 혹은 경매를 막 마친 생선과 해물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곳. 여행의 바다가 아니라 삶의 바다다.

 

제철 해산물의 보고(寶庫), 마산

 

'통술집'은 한마디로 다양한 제철 해산물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선술집. 요리별로 값을 받는 게 아니라 셈하다 지칠 만큼의 접시를 한 상 값에 차곡차곡 내놓는다. 물론 안주 푸짐한 선술집이 마산만의 자랑은 아니다. 해산물 흐뭇하기로야 통영의 '다찌'가 있고, 안주 진진하기로는 막걸리 한 주전자에 한 상 넉넉히 내놓는 전주의 술 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위부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마산 통술집 관련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마산 통술집에서 나오는 '통술'

 

하지만 시인의 야심만만한 선언처럼 마산에는 경남 지역 최대 규모의 어시장과 시인 같은 '일용 잡부'가 새벽 배달한 그 계절의 해물이 있다. 한때 전국 7대 도시의 명성을 누리던 마산은 창원과 통합되며 이제는 구(區) 수준으로 위축됐지만, 그 위축의 경험이 마산을 땀 냄새 더욱 풍성한 삶의 현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통영보다 저렴하고, 전주보다 바다 냄새 물씬한 제철 해산물의 보고(寶庫)였다.

창원시립 마산박물관 송성안 학예연구사는 마산의 통술문화를 "주인과 손님 간의 암묵의 범절"로 요약했다. 안주가 뭐 나올지도 물어보면 안 되고, 가격도 물어보면 안 되는 이 독특한 주안상 문화는 한마디로 주인과 손님 간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것. 대신 주인은 신선한 제철의 해물과 요리를 내고, 손님은 주인이 요구하는 가격을 두말 않고 지불한다. 이 지역 역사문화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송 학예사는 마산의 통술집이 1960년대 오동동 거리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고급 요정에는 갈 수 없는 서민들이 특유의 '한 상 문화'를 저렴한 가격에 즐기도록 탄생했다는 것이다.

마산 문화동의 '석민 통술'에 들어가니 주인은 마침 제철인 미더덕을 내놓았다. 우리가 해물된장찌개에서 오도독 씹던 그 미더덕이 아니었다. 마산의 사내들은 된장찌개 속의 그 생명체를 미더덕 짝퉁 오만둥이라 불렀다. 생미더덕의 향은 과장 없이 경이(驚異)였다. 더덕만큼 향기로워 미더덕이라 했다던가. 강렬한 봄바다의 향이 한입 가득 들어왔다.

통술집의 통음 뒤 새벽에 이 '일용 잡부'의 삶의 현장으로 나갔다. 새벽 4시부터 준비하는 마산 어시장 경매 현장. 시인이 오토바이에 생선 궤짝을 싣고 달리면 "저기 예술가 간다"고 농 섞은 면박을 준다는 그의 일터다. 카메라를 들고 다가가자 1대9 가르마의 한 걸걸한 사내가 "서울에는 고기가 없는가베"라며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진다.

 

'멍게는 다 자라면 스스로 자신의 뇌를 소화시켜 버린다. 어물전에선/ 머리 따윈 필요없어. 중도매인 박 씨는 견습인 내 안경을 가리키고/ 나는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버리는 멍게의 입수공과 출수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지난 일이여. 나를 가만두지 말길. 거대한 입들이여./ 허나 지금은 조용하길. 일몰인 지금은/ 좌판에 앉아 멍게를 파는 여자가 고무장갑을 벗고 저녁노을을/ 손바닥에 가만히 받아보는 시간'

(시 '멍게' 전문)

 

경매를 앞둔 풀죽은 상어 한 마리가 자신의 나무 궤짝에서 자꾸 기어 내려온다. 흰 고무장화 신은 사내가 육두문자를 내뱉더니 달려가 머리부터 패대기를 친다. 몸으로 일하는 사내들이 있는 곳. 마산에 봄이 펄떡거리는 중이다.

 

통술집에서 어시장까지… 24시간 마산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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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대별로 추천하는 24시간 마산 기행

 

의미와 재미를 두루 갖춘 1박 2일 국내 여행은 무엇일까. '도시에서의 24시간'을 새로 시작합니다. 시간대별로 추천하는 주말매거진의 여행 체험기입니다.
첫 회는 마산. 마산 어시장에서의 삶의 활력과 바다와 섬을 연결하는 '콰이강의 다리'까지, 갯내음 물씬한 마산의 맛과 남해안의 풍경을 안내합니다.

12:30 탱수국을 아십니까

기차에서의 공복 3시간. 위장은 이미 허겁지겁이다. 남성동 우리은행 맞은편 마산 거북집(055-244-0303)에 입장한다. 마산 특유의 '생선국' 전문이다. 생선국은 말 그대로 생선을 끓인 국. 이 집은 탱수를 쓴다고 했다.

'삼식이'라는 안타까운 이름을 들어보셨는지. 수많은 사마귀모양 돌기로 덮인 이 못난이의 공식 호칭은 삼세기다. 경남에서는 탱수, 강원도에서는 삼숙이, 전라도에서는 삼식이로 불린다. 못생겼거나 말거나, 생선국 그 자체는 참으로 맑고 깔끔한 맛. 포인트는 마산 특유의 '모재기'(모자반)에 있다. 정영숙 대표는 "모자반이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하면서 생선 비린내를 잡는다"고 했다. 미나리·모자반·무 삼각 편대가 빚어내는 앙상블이 시원하다.

경상도 먹거리의 '검증'을 위해 서울부터 동행한 목포 출신 서효인 시인이 한마디를 보탠다. "재료 맛으로 승부하는군요." 탱수국 1만1000원.

15:00 '콰이강의 다리'를 건너며

 

저도(猪島) 연륙교

 

시내에 있는 거북집에서 남쪽 바닷가로 40분을 달리면, 저도(猪島) 연륙교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철제 다리. 구교와 신교가 있다. 새로 지은 신교에게는 미안하지만, 옛 다리가 미학적으로 훨씬 아름답다.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를 빼닮은 붉은 철교다.

길이 170m, 너비 3m의 좁은 다리인데, 함께 손잡고 건너는 연인은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다. 문득 드는 얄궂은 생각. 나중에 '고객 변심'으로 헤어지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 옆자리 서효인 시인이 의뭉스럽게 '덕수궁 돌담길'을 추천한다.

우리 사랑 변치 말자며 달아놓은 연인들의 자물쇠가 철교 난간마다 매달렸다. 사랑을 기원하는 염원의 문장이 빼곡하다. 요령부득의 글도 보인다."오빠 미안해. 환생이란 게 있으면 그때 잘할게."(○○) 철제 자물쇠와 난간 아래로 마산의 바다를 굽어본다. 절경이다.

18:30 통술로 통음

 

안주가 가득 찬 상과 함께 얼음 사이사이
소주와 맥주가 박힌 플라스틱 버킷을 들고 온다.

 

신마산 통술거리 석민 통술(055-243-5155)을 찾는다. 거리 초입에는 개울이 흐르고, 벚꽃잎이 난분분 자유낙하하는 중이다. 일제강점기 이 동네의 이름은 사쿠라마치(벚나무 동네). 마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 거리였다고 했다. 통술집의 콘셉트는 언제나 제철 해물이다.

쏙(갯가재)과 가리비를 시작으로, 숭어 사촌이라는 밀치회, 갈매기조개가 순서대로 등장한다. 그다음 순서는 바다향 가득한 생미더덕. 중독을 부르는 맛이다. 굴, 해삼, 멍게 접시가 잇따르며 몇 번째 안주인지 셈하던 노력을 포기했다. 김연순 사장은 "차가운 요리부터 따뜻한 요리 순으로 낸다"고 했다. 다음 순서는 갖은 양념으로 조리한 감성돔, 꽃돔, 갈치구이. 훈제연어와, 막 부친 파전, 조개탕도 입맛을 돋운다. 소주잔은 끊임없이 돌아가고, 객들은 배를 두드린다. 함포고복(含哺鼓腹)이 따로 없다.

이 집은 4인 한 상 6만원. 두 사람이 가도 6만원, 한 사람이 가도 6만원이다. 술값은 소주 5000원, 맥주 4000원. 통술 거리 일대에만 통술집이 10여 곳 있다.

05:00 마산 어시장의 새벽 활력

 

경남권 최대 어시장인 마산 어시장.

 

"애써서 잡은 고기, 잘 다루어 제값 받자." 마산 어시장 곳곳에 생활력 가득한 표어가 붙어 있다. 경매 30분 전. 쇠수레를 밀고 가는 잡부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나무 궤짝 가득한 쏙(갯가재), 막 들어온 고기잡이 배 수조에서 건져 올리는 도다리·털게·아구 등속….

오전 5시 30분이 되자 한 사내가 1분 넘게 종을 친다. 3단 스탠드에 똑같은 모자를 쓴 중매인들이 질서정연하게 자기 자리를 찾는다. 선주들의 이름이 붙은 생선 궤짝들은 이제 새 주인을 찾아가는 중이다. 암호 같은 전문용어와 손짓이 난무 중이다. 경남권 최대라는 마산 어시장은 1914년 현재의 남성동 우체국 일대 1만1000평을 시작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매주 첫째 셋째 일요일은 휴무. 6시 무렵 이날의 경매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서자 온 세상이 훤하다. 부지런한 식당 주인과 동네 할머니들이 장을 보고 있다. 하루가 시작됐다.

06:30 복국과 거리 산책

 

칼칼하면서도 담백한 광포 복집 복국.

 

전날의 통음과 무리한 새벽 기상을 복국으로 달랜다. 오동동 복집골목의 광포 복집(055-242-3308)이다. 미나리와 모자반으로 국물 맛을 낸 생선국과 달리, 복국은 콩나물이 맛을 낸다. 중국산 은복(8000원), 국내산 참복(2만원) 등 다양한데, 성 시인의 추천으로 중간치인 동해 밀복(1만2000원)을 주문한다. 동해에서만 잡힌다는 밀복 한 마리가 푸짐하게 들어있다. 칼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다.

아침을 먹고 구마산 거리 산책에 나선다. 이 지역의 구도심 복원 프로젝트로 꾸민 창동예술촌 거리를 걷는다. 시인 천상병, 작곡가 반야월, 조각가 문신의 고장. 마산의 예술가와 상인들이 융화하는 테마 예술거리가 목표라고 했다. 시가 지원했다는 통일된 디자인의 간판과 개별 가게의 이기심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간판들이 계통 없이 어울렸다.

10:30 임항선 시간 여행

 

임항선(臨港線) 그린웨이.
지금은 산책로로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