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딘 / 교향시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
보르딘 / 교향시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Alexander Borodin, 1833-1887
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Staatskapelle Dresden / Kurt Sanderling, cond.
YooSejong, cond. / Laurel wind orchestra The 4th regular concert - 2010
Dans les stepps de l'Asie Centrale
Christophe Boulier, violin / 台灣弦樂團
1880년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25년 축제를 위해 만들어진 표제적 악곡으로, 독자적인 수법을 빛낸 동양적 감각이 담긴 곡이다. 악보의 속표지에는 '멀리 바라다 보이는 망막한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 평화로운 러시아의 노래가 신비한 울림으로 전해 온다. 멀리 말과 낙타의 발굽 소리에 섞여서 동양의 가락이 울려 감돈다. 아시아의 대상(隊商)이 다가온다. 그들은 러시아병의 호위를 받으며 끝없는 사막의 길을 안전하게 나아가는 것이었다. 가까이서 이윽고 멀리 사라져 가는, 러시아인의 노래와 아시아인의 가락이 잘 어울어져 신비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그 메아리는 차츰 초원의 하늘로 사라져 간다'라고 적혀 있다.
보로딘은 음악이 여기(餘技)이고 본업은 화학자·의학자·고등학교 교사 등으로 바쁜 생애를 보낸 사람인데, 여가를 이용해 중앙 아시아 등의 음악을 연구, 이러한 명곡을 만드는 소양을 쌓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 소박한 악기의 용법으로 동양의 색채를 나타낸 훌륭함은 뛰어나다고 할수있다.
작품 해설
러시아의 국민악파 5인조의 한 사람으로 민족적 색채를 극히 농후하게 나타내고 있는 보로딘은 발라키레프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처럼 직업 음악가는 아니며 화학을 전공했다. 그 때문에 작품의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관현악곡으로는 이 작품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즉위 25주년(1880년)을 축하하기 위해, 러시아의 민족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활인화(活人畵)의 반주음악으로 작곡된 것이다. 이 곡의 악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황량한 중앙 아시아 초원의 고요속에서 한가로운 러시아 노래가 들려온다. 아득히 멀리서 말과 낙타의 말굽소리에 섞여 이국적인 노래가 들려온다. 이윽고 이 지방 사람들에 의해 편성된 대상(隊商)이 다가온다. 그들은 러시아 병사들에 호위되어 끝없는 황야를 아무런 불안도 없이 걸어간다. 일행은 눈앞을 통과하여 다시 멀리 저편으로 사라져 간다. ......러시아의 노래와 이국적인 동양의 노래가 섞여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그 메아리는 점점 작아져서 초원? ?조용한 공기 속에 꺼져 간다.”
곡은 알레그레토 콘 모토. 2/4박자. 우선 제1 바이얼린 두 사람의 솔로에 의한 높은 지속음으로 시작된다. 이 시작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광활한 초원의 기분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이윽고 클라리넷에 의해 소박한 러시아 노래가 나타난 후 호른에 연결된다. 첼로와 비올라에 의한 단조로운 피치카토는 아마도 대상들의 발소리를 그린 듯 싶다. 잠시 후에 잉글리시 호른에 의해 터키 스타일의 아름다운 선율이 나타난다. 대상들의 발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러시아의 노래가 힘찬 행진곡으로 바뀌고, 이어 동양의 노래가 바이얼린으로 부드럽게 연주된다. 마지막은 러시아의 노래와 동양의 노래가 섞이면서 점점 작아진다. 그리고 러시아의 노래가 플룻으로 낮게 연주되면서 꺼질 듯 끝난다. 레코드는 로제스트벤스키와 소비에트 국립 교향악단의 협연이 본토의 연주로서는 의외로 개운하고 담백한 표현이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선율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강한 러시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즉 단색적인 연주인데 마무리가 아주 훌륭하다. 또한 이 곡은 동양풍의 무드를 교묘히 재현하고 있어 탄복할 만하다.
앙세르메와 스! 위스 로망드의 협연은 러시아 음악으로는 다소 색채가 화려하여 사람에 따라서는 저항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앙세르메는 러시아 음악을 특히 잘 다루는 그 묘사력의 교묘함에 압도된다. 그의 이러한 표제적인 음악의 연주는 천하일품이며 오케스트라도 대단히 좋다. 클뤼탕스와 필하모니아의 협연은 그의 레퍼토리의 풍부함을 나타낸 호연이지만 러시아적인 체취는 과히 느껴지지 않으나 음악을 연주해 가는데 독특한 풍격이 있어 좋다.
Aleksandr (Porfiryevich) Borodin
1833. 11. 12(구력 10. 31) 상트페테르부르크~1887. 2. 27(구력 2. 15) 상트페테르부르크. 19세기의 대표적인 러시아 민족음악 작곡가이며 알데히드 연구로 유명한 과학자.
그루지야의 왕자와 여군의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으나, 일찍이 언어와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학생 때 피아노·플루트·첼로·작곡을 배웠다. 1850~56년 의과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며, 1858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1859~62년 서유럽 유학을 마친 후 모교의 화학조교수, 1864년에 정교수가 되었으며, 이 시기부터 중요한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향곡 1번 E 장조(1862~67)는 그가 속했던 5인조 작곡가들인 밀리 발라키레프, 니콜라이 림스키 코르사코프,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 세자르 큐이와 친교를 맺으면서 나오게 된 작품이다.
1869년 교향곡 2번 B단조의 작곡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에 걸작 오페라 〈이고르 공 Prince Igor〉(미완, 사후 림스키코르사코프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에 의해 완성됨)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고르 공〉 2막에는 자주 연주되는 '폴로비치안 춤'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현악 4중주 2곡과 다수의 가곡, 미완성 교향곡 3번 A단조, 교향시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 In the Steppes of Central Asia〉도 작곡했다. 보로딘에게 음악활동은 학문 연구에서 오는 긴장을 푸는 여가활동에 지나지 않았으며 1872년 여성을 위한 의학강좌 개설을 돕기도 했다. 1880년대에는 과중한 업무와 나빠진 건강 때문에 작곡할 시간적 여유가 거의 없었으며 무도회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보로딘의 작품은 그를 러시아 작곡가들 가운데 선두에 서게 했다. 그의 음악은 강한 서정성을 지녔으면서 영웅적 주제를 다루는 데도 뛰어났고 그는 흔치 않은 섬세한 리듬 감각을 지녔으며, 관현악 음색과 이국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낭만주의 시대의 걸작들로 평가되고 있는 그의 교향곡과 현악 4중주에서 처음 등장하는 하나의 동기에서부터 전체 악장을 전개하는 공식적인 구조를 발전시켰다. 그의 선율은 러시아 민요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으며, 19세기 다른 러시아 민족음악 작곡가들처럼 서구 음악에 없는 파격적인 화성을 사용했다.
러시아 5인조의 구성
러시아 5인조에는, 세자르 큐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알렉산드르 보르딘 등이 있는데 발라키레프는 대지주의 아들로 이 그룹의 리더로 활약했고, 큐이는 축성학의 교수이며 평론가였다. 무소르그스키는 앞에서 언급되었고 림스키-코르사코프 역시 너무나도 유명한 음악가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음악원 교수였다. 보르딘은 러시아 귀족의 사생아로 의사, 화학자로 이들의 공통점은 당시 러시아의 귀족출신의 유망한 젊은이들로 형성되었으며 음악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후에 이들의 모임을 편견과 맹신이 없으며, 음악에 있어서 학교교육을 신뢰하지 않았고, 국민주의를 신봉했으며, 동양적인 요소에 관심을 보였고, 표제음악을 지지했다고 평가한 스타소프는 이 모임의 정신적이며, 이론적인 지주였다.
러시아 5인조의 결성 배경
러시아 5인조가 결성된 가장 기본 되는 요소는 역시 역사적 배경을 근간으로 한다. 1812년 나폴레옹을 물리친 러시아는 유럽의 대제국으로 성장하면서도 서구문화와 대립하며 슬라브민족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그렇더라도 19세기 러시아인들은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서구유럽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 유일한 지름길이었다.
러시아 국민악파의 조상인 글린카 역시 이탈리아에서 유학했기에 초기 작품들은 완전히 이탈리아음악 그 자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1840년대까지도 러시아에는 러시아교회음악이나 민요 외에 러시아다운 클래식음악이 존재하지 았었다.
한편, 1861년에 일어난 농노해방운동으로 당시 지배계층이었던 상당수의 지주들이 몰락하게 되었고 농노출신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 졌는데 이와 같은 사회현상은 음악가들에게도 신선한 반향을 불러와 러시아다운 음악만들기의 갈구와 함께 1860년대에 들어와 비로소 러시아 5인조가 결성되었던 것이다.당시 러시아에는 5인조 그룹 외에도 러시아음악을 향상, 발전시킨 인물들 중에 안톤 루빈스타인을간과할 수 없다. 그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보아왔던 음악원을 러시아에도 설립했는데 5인조의 리더였던 발라키레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무료음악학교를 열어 루빈스타인과 경쟁했다.
더욱이 발라키레프는 1867년 음악협회의 수석지휘자로 발탁되며 그의 진보적 성향과 함께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급진성을 이해하지 못한 청중들은 그를 외면했다. 결국 실의에 빠진 그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떠나 엉뚱하게도 바르샤바철도회사에 취직하며 5인조를 탈퇴하게 된다. 또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경우, 루빈스타인의 초청으로 상트 페테르부르크음악원 교수로 위촉받고 5인조를 빠져나갔다. 보로딘은 본업만으로도 사적인 시간을 갖기에 어려웠는데 더하여 여성해방운동에도 앞장서는 등 바쁜 일정으로 사실상 5인조에 합류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평론가로 활동한 큐이는 5인조에서는 가장 지명도가 낮은 작곡가로 작품숫자는 많았으나 걸작을 남기지는 못했는데 무소르그스키와는 상반되는 의견으로 편치 않은 관계였다. 무소르그스키는 알콜중독자로 생명까지 잃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다.
러시아 5인조의 교훈
러시아 5인조는 확실한 악파로 자리매김을 한 것도 아니었고 결속력이 대단했던 모임도 아니었다. 단지 시대가 요구한 사회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음악사상 그들이 남긴 흔적은 지대하다. 러시아적인 그들의 음악은 서구유럽으로 뻗어갔고 인상주의 음악으로 계승, 발전되어 왔다. 5인조 모임이 불과 7-8년의 단명으로 끝났음에도 오늘날 이 모임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남긴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 5인조의 작품
발라키레프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환상곡, 교향곡 <타마라>, 피아노를 위한 환상 <이스라메이> 등 무소르그스키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호반시치나>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 피아노모음곡 <전람회의 그림> 등 보로딘 오페라 <이고르공>, 교향시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 교향곡 제2번, 현악4중주곡 제3번 등 림스키-코르사코프 관현악곡 <스페인 기상곡>, 관현악모음곡 <세헤라자드>, 15곡의 오페라 등 큐이오페라 10곡, 300곡 이상의 살롱용 가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만화경> 중 제9번 “오리엔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