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은 금밭이다. 아낙네들은 갯벌에 코를 박고 ‘밥’을 캔다. 낙지를 잡고, 바지락을 캔다. 미역 매생이를 딴다. 갯벌은 아직 초록밭이다. 파래가 끝물이다. 파래는 5월 햇살에 윤기가 자르르하다. 비타민 A,C가 가득하다. 담배 니코틴을 중화하고 폐 점막을 튼튼하게 한다. 애연가에게는 파래가 으뜸 보약이다. 파래무침엔 식초 몇 방울 넣어야 비릿한 냄새가 가신다. 갯벌 파래밭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전남 강진 하저어촌체험마을 주민들. 저 멀리 고깃배가 아슴아슴하다. 강진·완도=서영수 전문기자
‘알긴 뭐 알아, 네가 해안선에 대해 잘 알고 있단 말야?/해안선이란 어떻게 태어난 거고, 어떻게 존재해야 아름다운지 네 정말 안단 말야?//…바다와 육지 사이에 있고, 나와 그 아가씨 사이에 있고, 당신과 나 사이에도 있는 해안선/그런 해안선을 잘못 잡아당기거나 거칠게 다루면 얼마나 위험한 줄 네 안단 말야? 그 속에 숨어있는 폭풍과 해일도…?’
<김영남의 ‘장재도에선 해안선을 조심하자’에서>
어항(漁港·Fishing port)은 고깃배들의 보금자리다. 고깃배들은 아침에 금빛을 듬뿍 싣고 바다로 나간다. 저녁엔 고기를 가득 싣고 돌아온다. 고깃배는 보름달처럼 풍만하다. 잡은 고기는 어항에서 팔린다. 남은 것들은 어항창고에 냉동 보관된다. 고깃배는 어항에서 닻을 내리고 고단한 몸을 쉰다.
어촌(漁村·Fishing village)은 어부들이 사는 곳이다. 어항보다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어부들은 그곳에서 웃고 울며, 새끼들을 키운다. 마을 뒤쪽엔 으레 손바닥만 한 비탈 밭들이 붙어 있다. 푸성귀들이 성성하게 자란다. 어쩌다가 제법 큰 논배미도 드문드문 보인다. 바다에 나가지 못할 땐 농사일을 하며 숨을 고른다.
어촌은 굴 딱지처럼 바다를 향해 엎드려 있다. 파도는 마을을 향해 우르르 밀려왔다가, 깔깔거리며 멀어져간다. 주민들 얼굴은 하나같이 바닷물결을 닮았다. 새까만 이마에 주름이 일렁인다. 귀는 소라껍질을 닮아 파도소리 바람소리를 그리워한다.
강진 하저어촌체험마을 아주머니들이 보살 같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어항과 어촌은 해안선 위에 점으로 찍혀 있다. 해안선은 구불텅구불텅하다. 어항과 어촌은 활처럼 휜 바닷가 안쪽에 자리 잡는다. 바다에서 보면 하현달 한 가운데에 집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두 팔 벌린 모양의 해안선엔 늘 어항과 어촌이 불을 밝힌다.
어장(漁場·Fishing ground)은 고기 잡는 곳이다. 해안선의 바깥쪽에 있다. 백사장이 있는 갯벌과 거무튀튀한 개펄 그리고 그 너머 푸른 바다가 모두 어장이다. 조개나 바지락을 캐고, 낙지를 잡는다. 미역 매생이 파래 밭이 있고, 전복도 그곳에서 키운다. 돌을 쌓아 만든 독살, 대발을 쳐서 만든 ‘덤장’, 갯벌 위에 그물을 쳐놓은 ‘개메기’가 있다. 모두 밀물 때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 떼를,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잡는 방식이다. 고깃배를 타고 나가 그물이나 낚시로 잡는 거야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갯벌(sandbar)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모래톱이다. 개펄(slime)은 진흙 뻘밭이다. 개흙이 깔린 벌판이다. 발목까지 푹푹 빠진다. 논두렁이나 밭두렁처럼 뻘밭에도 길이 있다. 개펄은 바닷물이 빠지면 넓게 드러났다가, 바닷물이 들어오면 모습을 감춘다. 진흙개펄은 모래톱이 있는 갯벌보다 훨씬 넓다.
해안선의 어항과 어촌은 늘 어장을 마주보고 있다. 고깃배도 언제든 어장을 향할 태세다. 어부는 잠잘 때조차 어장을 꿈꾼다. 어장은 어부들의 삶터이다. 밥이요 생명이다. 꿈이요 놀이터이다.
●강진
전남 강진 하저마을에서 마량까지는 해안선을 따라 가는 길(11.2km)이다. 국도 23호선 아래 마을과 마을을 잇는 조붓한 길이다. 어부들이 마실 다니는 길이다. 국도 23호는 차량통행이 많아 걷기엔 위험하다. 해안길은 두 사람이 손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지만, 때로는 보리밭둑이나 마을 고샅도 걸어야 한다. 오른쪽엔 걸쭉한 개펄과 짭조름한 바다가 연이어 펼쳐져 있다. 왼쪽 육지엔 푸른 보리밭이 바람에 머리칼을 넘실댄다. 하저마을 앞 갯벌에는 목책로가 바다로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마을에 묵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갯벌에 나가 바지락이나 꼬막을 캘 수 있다. 꼬막은 손으로만 잡는다. 호미로 잡으면 쉽게 상해 맛이 떨어진다. 갯벌에서 한 시간만 서성대다 보면, 머릿속의 쥐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 쇳덩이처럼 짓누르고 있던 명치끝 스트레스가 무뎌진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지정한 체험마을은 강진에 하저 백사 서중 3곳이 있다. 3개 마을 앞 개펄 면적만 257ha(약 77만1000평)나 된다. 백사마을에선 ‘개메기 체험’도 가능하다. 개메기는 갯벌에 그물을 설치하여 밀물 땐 고기가 들어가게 하고, 썰물 때 그물을 내려 고기가 갇히도록 하는 것이다. 물이 다 빠지면 그물 안 갯벌에서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다. 갯벌낚시도 재밌다. 물이 빠졌을 땐 망둥이 낚시를 하고, 물이 차면 선창이나 방파제에서 대나무낚시로 숭어나 전어를 잡는다.
서중마을은 개펄이 140ha(약 42만 평)로 가장 넓다. 샤워실 화장실 주방까지 갖춘 물위의 집 ‘바다 펜션’이 이름났다. 20∼30명(1인 2만 원)이 탈 수 있는 낚시 전용 펜션과 숙박 낚시 겸용 4, 6, 8평형 펜션(1박2일 10만∼18만 원)이 있다. 주로 돔 숭어 도다리 장어 등을 낚는다.
●마량
마량포구는 해안길이 끝나는 곳에 있다. 조선시대 제주 말을 싣고 와서 내린 곳이다. 제주 화북항에서 떼배로 일주일쯤 걸려 마량에 도착하면, 말들이 삐죽 마르기 마련이다. 마량에서 다시 살을 찌워 한양도성으로 보내야 했다. 한자로 ‘馬良(마량)’이라고 이름 붙인 이유다.
마량포구에는 수많은 고깃배들이 드나든다. 밤새 고기를 가득 잡은 배가 갈매기 떼를 거느리고 흥청거리며 돌아오는가 하면, 통통거리며 서둘러 바다로 나가려는 고깃배들로 분주하다. 새벽 위판장은 시끌벅적 왁자하다. 해는 한참 후에야 고금대교(마량∼완도고금도) 너머로 느릿하게 떠오른다. 5월 아침햇살이 기름지다. 연둣빛 나무 잎사귀에 비단처럼 화사하게 감긴다.
마량포구 앞바다는 ‘잔잔한 호수’다. 앞쪽은 완도 고금도와 약산도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거친 파도는 아예 원천 봉쇄된다. 포구 코앞에는 가마솥을 엎어놓은 듯한 쌍둥이 까막섬이 떠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녹나무 감탕나무 등 늘푸른넓은잎나무들이 더벅머리를 이뤘다. 까막섬은 대낮에도 어두컴컴하고 축축하다.
‘구두가 미리 알고 걸음을 멈추는 곳, 여긴 푸른 밤의 끝인 마량이야. 이곳에 이르니 그리움이 죽고 달도 반쪽으로 죽는구나. 포구는 역시 슬픈 반달이야. 그러나 정말 둥근 것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고 내 고향도 바로 여기 부근이야’
<김영남의 ‘푸른 밤의 여로-강진에서 마량까지’에서>
●완도
완도는 큰 섬이다. 아니다. 1968년 다리(완도대교)가 생긴 뒤부터는 육지다. ‘완(莞)’은 ‘빙그레 웃는다’는 뜻이다. 완도 곁에는 올망졸망한 섬들이 200여 개나 있다. 이 중 사람 사는 섬은 60개쯤 된다. 고금도 청산도 보길도 노화도 신지도 소안도 평일도 금당도…. 임촌어촌체험마을은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 뒷동네이다. 신지도는 강진에서 고금대교를 건너 고금도 상정항에서 철선을 타고 가거나, 자동차로 완도를 통해 돌아갈 수 있다. 명사십리(鳴沙十里)는 ‘모래가 십리에 걸쳐 울음을 우는 곳’이다. 북한 원산명사십리(明沙十里)와 다르다. 모래가 바람과 파도에 씻겨 이리저리 뒹굴며 운다. 밤새 뒤척이며 “스르르 스잉∼” 울기도 하고, 큰 바람이 불면 “쓰르르 싸르∼” 구슬프게 흐느낀다. 맨발로 걸어야 제 맛이다. 싸르륵 싸르륵 모래 밟는 소리가 감미롭다. 발바닥의 세포가 일제히 눈을 뜬다. 온몸의 뼈가 저릿저릿 짜릿하다.
임촌마을은 한눈에 봐도 부티가 난다. 올봄 도시에서 이곳으로 귀향한 가족이 있을 정도이다. 131가구(263명)가 오순도순 모여 산다. 환갑 넘은 주민이 60%가 넘는다. 초등학생(6명) 중고교생(6명)도 있다. 전복양식(2가구)도 하고, 주로 미역 다시마 톳 농사를 짓는다. 힘이 달리는 노인들은 논농사에 힘을 보탠다. 여름엔 해수욕객을 상대로 민박을 치는데 그 수입도 짭짤하다. 문종채 이장(60)은 “대한민국 어디 가도 우리 고향만 한 곳은 없는 거 같다.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면 연 수입 7000만∼1억 원 수입은 되기 때문에 먹고사는 데 지장 없다. 보건지소나 병원 등도 가까워 편리하다”고 말했다.
‘첫 차 타고 눈 감으니 섬들이 꿈틀댄다/잠 덜 깬 바다 속으로 물김 되어/가라앉아 저 너른 새벽 어장에 먹물 풀어 편지 쓴다//사철 내내 요란한 엔진 소리 끌고 간/아버지의 낡은 배는 걸쭉한 노래 뽑았다/그 절창 섬을 휘돌아 해를 집어 올린다.’
<박현덕의 ‘완도를 가다’에서>
완도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사는 곳(이생진 시인)’이다. 완도 바다는 깨끗하고 아름답다. 수심이 낮고 개펄이 넓다. 전복 김 미역 톳 다시마 광어 우럭 양식에 안성맞춤이다. 전복은 전국 소비량의 80%가 완도산이다. 양식전복은 6월까지는 다시마를 먹고, 그 이후부터는 미역을 먹고 큰다. 다시마는 전복껍데기를 키우고, 미역은 속을 살찌운다. 전복은 3년은 돼야 먹을 만하다.
광어는 뭍에서 바닷물을 끌어다가 키운다. 30평 한 수조에 2000∼2500여 마리가 자란다. 양식장 한 곳에 수조가 50∼100개쯤 된다. 사료는 잡어나 꽁치 고등어 등을 갈아서 만든다. 광어는 한여름이나 겨울엔 적게 먹고, 봄가을에 많이 먹는다. 매실에 청국장을 섞어 뿌려주면 항생제를 거의 쓰지 않아도 탈 없이 잘 자란다.
강진·완도=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완도 곳곳에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 기념관도 있어▼
완도는 장보고(?∼846)의 나라이다. 그는 완도에서 태어나, 완도에서 그의 뜻을 펼쳤고, 결국 완도에서 암살당해 죽었다. 그는 성씨조차 없는 밑바닥 신분이었다. 다만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천하장사여서 무예에 능했다. 어릴 적부터 활을 잘 쏴서 ‘활보’ ‘활바’로 불렸다. 활보는 ‘활 잘 쏘는 아이’라는 뜻. 장보고를 한자로 ‘궁복(弓福), 궁파(弓巴)’로 부른 것도 같은 이유다.
당나라 군인으로 출세한(1000여 명 거느린 군중소장) 것도 그의 무예실력과 물길을 아는 능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張(장)’씨가 된 것은 활 ‘궁(弓)’자와 비슷해서 선택했으리라고 추측된다. 그는 동북아시아 해상권을 장악한 ‘해상왕’이었다.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중계무역은 물론 저 멀리 아라비아까지 교역을 넓혔다.
완도엔 장보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청해진 사령부가 있었던 장도, 당나라와 일본상인 그리고 두 나라 승려들이 오가며 머물렀던 법화사 옛터 등이 그렇다. 장보고기념관에 가면 그의 활동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완도는 해물천지다. 어디 가서든 펄펄 뛰는 회를 먹을 수 있다. 완도읍 학림회센터 1층에 가면 갓 잡은 생선들이 입을 끔뻑이며 기다리고 있다. 숭어 광어 농어 갑오징어 세발낙지 멍게 해삼 개불…. 붉은 고무함지박에 가득가득하다. 값도 싸고 싱싱하다. 횟감을 사다가 2층 횟집에 가면 양념값만 받고 회를 떠준다. 수협위판장의 경매 장면도 볼만하다. 경매인들의 호루라기 소리와 도매상들의 손가락 사인이 어지럽다.
완도 학림회센타 해산물시장.
| ▽어촌체험마을 △하저어촌체험마을(061-432-7967) 꼬막 바지락 캐기, 갯벌낚시, 어선 타기, 독살체험 △서중어촌체험마을(010-5220-8525) 선상낚시, 바지락 캐기, 개메기 체험 △백사어촌체험마을(061-433-2040) 어선타기, 은어잡기, 바지락 꼬막 캐기, 갯벌낚시 개메기 체험 △완도신지도 임촌어촌체험마을(011-626-7586) 명사십리해수욕장 모래찜질과 맨발걷기, 톳 다시마양식장 체험
▽교통 △승용차=서해안고속도로∼목포∼강진방향 국도 2호선∼목리 나들목∼마량방향 해안선 따라 직진∼약 12.8km 지나 오른쪽 하저어촌체험마을 △고속버스=서울강남고속터미널∼강진. 강진버스터미널에서 마량행 버스(약 20분 소요)나 택시 이용
▽먹을거리 △마량포구=정든횟집(061-432-0606), 완도횟집(061-432-2066) △강진읍=한정식 명동식당(061-433-2147) 해태식당(061-434-2486), 짱뚱어탕 동해회관(061-433-1180) △완도 장보고 횟집(061-552-9300), 미원횟집(061-554-2506), 청실횟집(061-552-4559), 장어구이 동백횟집(061-553-7079)
▽특산물
마량포구 미항건어물(061-432-2572)
완도수협직판장(061-554-2583)
▼절반값에 어촌서 1박2일 여행을▼
‘아름다운 어촌 찾아가기’ 참가자를 모집한다.
한국어촌어항협회는 5월부터 10월까지 1박2일 코스로 전국 20개 어촌에서 체험행사를 벌인다. 체험 내용은 바다낚시, 오징어경매, 자전거하이킹, 바지락캐기, 독살고기잡기 등 다양하다. 매회 선착순 80명까지 모집하며, 참가비 50% 이상을 지원해준다. 신청은 바다여행 홈페이지(www.seantour.com)로 하면 된다. 02-6098-08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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